60대 이상에서 글쓰기 열풍이 일어나는 이유

by 해드림 hd books

예전에는 2~30대가 글쓰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에도 문인은 항상 배가 고팠지만 사회가 급격히 산업화 되면서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시대의 종언을 고하게 된 셈이다. 물론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그래서 글이 밥벌이가 되는 전업작가가 있지만, 현재 문단에서 활동하는 문인들 숫자로 비교하면 1%도 안 되는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무리 문학의 꿈이 충만해도 젊은 날부터 글쓰기 작업에만 전념하였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인 세상이 된 것이다.

요즘은 60대가 되어서야 문인의 길로 들어선 이들이 상당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대세인지 모른다. 젊은 날에는 먹고 살기 위해 꿈을 접었다가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날 나이 즈음, 젊은 날 품었던 문학의 열정이 폭발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문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작금의 문단 제도가 글쟁이들을 수없이 양산해 온다. 일정 부분 부정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글쓰기를 함으로써 형성되는 정서를 생각하면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글쓰기는 국가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글쓰기의 가장 빛나는 장점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성찰을 하게 되며,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미학을 추구하게 되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함으로써 자신을 정서적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다. 그런 형질이 활짝 핀 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내공 쌓이듯 쌓여 자신의 삶이 질적으로 성장해 가는 내적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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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인들을 보면 7-80대가 넘어서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는 이들이 적잖다. 작품집 출간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물론, 정기적으로 모여 글쓰기 토의도 이어간다. 이들의 글쓰기가 금세 향상되는 이유는, 온갖 세파를 거쳐온 삶의 연륜이 있기 때문이다. 깊은 연륜이 밑절미가 되는 곳에서 이들 글을 더욱 빛난다. 아무리 글쓰기를 잘해도 체험과 연륜이 없으면 사물의 이면을 그려낼 수 없는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안정혜 선생의 수필집 [베짱이와 일벌의 금혼식]이 박현경 선생의 수필집 [하얀 동백꽃] 등을 읽어보면, 세상을 살아오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삶의 모습이 가슴 시리도록 다가오기도 한다. 지구상의 모든 예술의 알파와 오메가는 인간의 삶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연륜 있는 작가들의 글은 독자에게 그만한 지혜와 감동을 준다.


며칠 전 여든을 훌쩍 넘은 정영철 선생이 장편소설 [싹심이]를 출간하였다. 이분도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싹심이] 분량이 무려 450쪽에 이른다. 애초 500쪽이 넘는 분량이었으나 퇴고 과정에서 450쪽 정도로 줄어들었다. 특히 소설의 경우는 엄청난 에너지와 호흡이 필요한 장르이다. 문학적 평가는 뒤로하더라도, 이 정도 분량의 소설을 써내기란 젊은 사람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원고 100매의 단편소설 하나 쓰려고 해도 여기에 매달려야 하는 시간이 만만찮다. 원고 15매 분량의 수필 여러 편을 쓰기는 수월할지라도, 단편소설은 하나의 소재로 구성과 스토리를 이어가는 일이어서 수필 쓰기와는 또 다르다. 사정이 이러할 진데, 소설 [싹심이]는 원고 1500매 이상이니, 어쩌면 80대 나이로 괴력을 발휘한 셈이다.

장편소설 [싹심이]를 출간하면서 정영철 선생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펴내는 글’은, 글쓰기를 시작한 이들에게 자극도 되고 참고할 만해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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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글쓰기 시작

정영철


내가 글을 쓸 줄은 정말 몰랐다. 상상도 하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었고 꿈속에서나 있는 이야기이며 ‘극한 직업’ 같은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500여 쪽이 되는 장편소설을 써내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당연히 글다운 글을 써 본 적도 없었다. 글이란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반복되는 우연적 사건에 대한 결론 없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중·고교 시절 학교 문예지에 시나 수필을 실었던 기억과 밤새워 연애편지를 썼다 찢었다 했던 기억,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에게 보낼 편지를 써 달라고 해서 연애편지를 써 준 적도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암 진단을 받은 이후 낙서하듯 글을 쓰게 된 것은 글을 쓰고 있는 그 시간에는 육체적 고통을 잊을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었다.

매일 조금씩,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리는 늦깎이 나이에 글을 쓴다는 그것이 그냥 긁적여 보는 한 줄의 낙서라 할지라도 쉽지 않았다. 지금도 컴퓨터를 켤 때마다 ‘내가 무엇을 쓰려고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욕심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필력 때문일 것이다. 아름답고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겠다는 욕심 뒤로 가슴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쳐났지만. 막상 글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내 삶의 어떤 곳을 가리킬지 내 삶을 어떻게 표현할지 마냥 두렵고 망설여졌다. 어쩌면 쓰레기통 속으로 직행할지도 모르는 글을 미련스럽게 그만두지 않고 계속 쓰고 있다. 아마도, 어쩌면 죽는 날까지가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이 사라져 가는 것이라면 살아있는 동안 무엇에 나를 의탁해야 하는가. 삶의 시간이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라는 단어는 그저 생소하기만 하다. 낙서처럼 긁적여 보는 글에 ‘옳고 그름’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에 어느 것 하나 정해진 답은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이유라면 별게 없다. 웃음이든 울음이든 우리 모두의 가슴에 조금이라도 뭔가를 남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 줄의 글로, 한 줄의 문장으로, 한 마디의 말로 당신 가슴에 ‘내 이름이’ 새겨지면 족하지 않을까?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작가에게는 문학이란 ‘마음을 닦는 기도이고, 아픈 상처를 깁는 치유제’이자 ‘영혼의 지향점에 의문’을 던지는 ‘보랏빛 실루엣’이다. 그리고 ‘잃었던 미소를 회복’할 수 있게 해준 삶의 유일한 동반자로 ‘눅눅한 삶을 지탱하는 회초리’라고도 했다.

고래도 칭찬에는 춤춘다고 했다. ‘상(賞)’이란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지만, 학창 시절을 제외하면 받아본 기억이 없다. ‘노력상’, ‘감투상’, 아니, ‘찌지리 못난이 상’ 조차도 나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졸필이기에 아예 그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정화요. 글을 읽는다는 것 또한 자기 닦음이라고 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인생의 전환점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 그것은 전환점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거역하고 살아서 암 병동을 걸어 나왔다. 10여 년 전 살기를 포기하고 저승사자를 따라갔더라면 이런 글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어느덧 망구(望九)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요즈음 나는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평화롭다.

오늘도 글을 쓴다. 글 속에서 ‘나’를 발견하여 삶을 찾고 친구를 찾고 생활의 변화를 찾아보려고 노력해 본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고는 한다.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마냥 좋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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