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 따라서 문법이나 어법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여 교정을 하면 글쓴이의 색깔을 없애버리게 된다. 저자들은 국어책이나 국어사전을 출간하는 게 아니므로,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감동스럽게 전달할지 고민을 해야 한다. 표현 방식이나 낱말 선택 등 한 문장 한 문장 섬세하게 다루면서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완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글쓰기에서는 문법이나 어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장이 어법이나 문법에서 벗어나 있으면 글의 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글쓰기를 잘하는 최고 비결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독서가 풍부한 사람은 그가 쓴 글에서도 귀티가 난다.
출판사나 잡지사에서 일하며, 그리고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20년 이상 수없는 원고들을 살펴왔다. 출판사로 투고된 원고를 보면, 프로에서 아마추어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아마추어 실력이라 해도,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예전과 달리 누구나 출간하기 쉬워진 세상이지만, 아무나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글을 써온 체험을 바탕으로, 그동안 출간 작업을 하며 느낀 다양한 저자들의 공통적인 글쓰기 약점을 중심으로 13가지를 추려봤다.
1. 어떤 글도 구성을 갖춰라.
뼈대를 먼저 세우고 살을 붙여가는 과정이 글쓰기이다. 모든 글의 핵심은 구성이다. 주제를 잡아놓고 무조건 써내려가는 습관은 아주 나쁜 습관이다. 반드시 글을 쓰기 전 구성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구성은 서론, 본론, 결론 형식이지만 서론과 결론은 순서가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 서두에서 결론 부분을 먼저 던져 놓고 차분하게 글을 풀어가는 구성도 바람직한 글쓰기이다. 이는 에세이나 시, 소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려면 글의 첫 문장이나 첫 단락이 아주 중요하다. 한마디로 첫 문장이나 첫 단락에서 강한 흡입력을 발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흡입력이 강해야 독자를 끝까지 붙들어 둘 수 있다. 서두가 지루하거나 밋밋하면 독자는 금세 싫증을 일으킨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먼저 구성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떤 형태로 구성해서 독자에게 전할 것인지는, 글쓰기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글을 쓰려면 서두에서 충분히 붓방아를 찧자.
2. 인칭 변화를 주거나 제3자적 관점에서 글을 쓰면 글의 분위기가 다르다
1) 다음 글은 어머니를 여자로 지칭한 예.
[문득, 여자의 등에서 연탄가스 냄새가 흘러나옵니다. 새벽이면 눈을 비비고 일어난 그 여자가 집게로 연탄을 갈고 있었지요. 내가 일어날라치면, 피곤할 틴디 더 자야, 꿈결처럼 들려오던 그 여자의 목소리가 지금도 아른거립니다. 여자가 몸을 돌려 눕자 처진 젖가슴이 살짝 드러납니다. 내가 하도 많이 만져서 내 것인 줄 알았던 젖가슴입니다.](강대선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2) 다음은 나를 소년으로 지칭한 글.
[꿈속에서도 소년은 두부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잠은 여전히 배고픈 꿈이어서 젖을 빨 듯 두부를 빨아서 먹었다. 몇 가닥의 젖줄이 소년의 입으로 흘러들어오자 두부는 엄마의 가슴처럼 포근하고 아늑했다. 두부는 그저 묵묵히 손을 먹고 묵언수행을 이어갔다. 그 묵언수행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소년의 손을 먹고 난 아침이면 죽음 같은 쉰내를 쏟아냈다.](강대선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3. 시제 선택을 잘하라.
‘자신 없으면 과거형을 써라’, ‘시제는 항상 통일성 있게’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발생한 시간이 과거일 때 이를 현재형으로 서술해도 된다. 과거의 사건이나 사실을 현재형으로 쓰면 세련미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현재형을 잘못 부리면 몹시 어색한 서술이 된다.
[소 먹이러 나가면서 새끼줄로 만든 꼴망태를 메고 간다.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 내던지고 달려간다. 물속에서 한참을 놀다가 더위가 가시면 밖에 나와 자치기도 하고 공기놀이도 한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내일 아침 소에게 먹일 양식으로 부드러운 풀을 베어 망태에 가득 채운다. 땅거미가 몰려와 어둑어둑해지면 배가 불룩한 소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문장은 글쓴이의 유년 시절 한 때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문장을 현재형으로 서술하고 있어 어딘가 어색하다. 과거 사실을 마치 현재 일어난 일처럼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과거형으로 서술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메고 갔다. 달려갔다. 놀이도 했다. 가득 채웠다. 집으로 돌아왔다.)
과거 시제로 이끌어가는 글이라도, 어떤 사물의 묘사나 서술, 설명에는 현재형을 써도 된다. 다음 문단에서 ‘은어는…달려든다.’까지가 그것이다.
[여름철에는 낚시꾼이 은어를 잡으려고 강가나 여울에서 낚싯줄을 들어 올리곤 하였다. 은어는 깨끗한 물에서 살며 돌에 낀 이끼를 주로 먹는다. 자라면서 자신의 먹이 영역을 정한다. 거기에 다른 은어가 들어오면 쫓아내려고 격렬하게 달려든다. 낚시꾼은 이런 습성을 이용해서 은어를 미끼로 다른 은어를 낚았다.]
4. ‘있다’, ‘했다’만 줄여도 문장이 깔끔하다
요즘 원고에서 보면 서술형‘있다’, ‘했다’가 지나치게 반복된다. 이러면 문장의 격을 떨어뜨린다. ‘있다’는 글쓴이가 행위나 상태를 은연중 강조하다 보니 반복되는 것이고, ‘했다’의 반복은 문장 기술이 약해서 나온다. 서술어를 쓸 때 동사 ‘하다’를 붙여 문장을 마무리하기보다는, 동작을 서술형(동사)으로 마무리하면 문장이 훨씬 깔끔하다.
[있다]
.창밖만 내려다보고 있었다-창밖만 내려다보았다.
.대지의 속살을 간질이며 꼬물거리고 있었다.-대지의 속살을 간질이며 꼬물거렸다.
.혈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혈관으로 들어가는
.짓고 있다는 증거다-짓는다는 증거다
.전 세계가 같은 시간을 인내하고 있다-전 세계가 같은 시간을 인내한다.
.아주 미끈한 나무도 있지만, 겉이 뒤틀려 있는 것도 있다.
-아주 미끈한 나무도 있지만, 겉이 뒤틀려 있기도 하다.
.저편 끝자락엔 소멸이 기다리고 있다-저편 끝자락엔 소멸이 기다린다
.꽃들이 피다 시들어 있고, 나지막하게 수군거리는 잡풀들이 퇴색되어 초라하게 뒹굴고 있다.-꽃들이 피다 시들고, 나지막하게 수군거리는 잡풀들이 퇴색되어 초라하게 뒹군다.
.묘사에 있어서의-묘사에서
.살고 있는-사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선행되어야 한다.
[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곧잘 말다툼이 일곤 했다-곧잘 말다툼이 일었다.
.사랑이 가득했다-사랑이 가득 찼다.
.불만스럽게 한마디 했다-불만스럽게 한마디 뱉었다.
.그 친구를 항상 부러워했다-그 친구가 항상 부러웠다.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마중을 나갔다.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탐탁지 않았다.
.헤어지던 날도 그러했다-헤어지던 날도 그랬다.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했다-때로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구수하게 느껴지는 냄새가 어우러져 침을 흘리게 했다-구수한 냄새가 어우러져 침을 흘렸다.
.으쓱대기도 했다-으쓱댔다.
.시선이 그리로 쏠리곤 했다-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언행을 가볍게 했다가는-언행이 가벼웠다가는
.그 음식점에서 식사했다-그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줄줄 읽기도 했다-줄줄 읽었다.
.몇 번이나 파마를 해 주곤 했다-몇 번이나 파마를 해 주었다.
5. 문장부호도 낱말이다.
출판사로 투고된 원고를 읽다 보면 문장부호를 남발하는 글을 종종 보게 된다. 문장부호 남발은 독서의 흐름을 끊게 되어 가독율을 떨어트린다. 쉼 없이 쉼표를 찍어대거나 겹겹이 느낌표를 쓰거나 온점과 느낌표를 같이 쓰거나 하면 문장이 투명하지 못하다. 문장부호도 하나의 낱말이라고 보면 된다.
물음표, 느낌표, 온점은 모두 마침표이다. 따라서 온점은 물론이고, 느낌표나 물음표가 찍히면 거기서 한 문장이 끝났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물음표나 느낌표를 찍은 채 계속 문장을 이어가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하면서 걸었다.]는 한 문장이 아니라 두 문장이다. 물음표가 마침표이기 때문이다. 물음표 대신 쉼표를 찍거나 물음표를 없애거나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하면서 걸었다.]처럼 따옴표를 찍어야 한 문장이 된다.
특히 기간이나 거리 또는 범위를 나타낼 때 쓰는(예: 26일~27일) 물결표를 긴소리 표시로 써서는 안 된다. 이는 비문이 된다.
6. 은유나 비유에 익숙해져라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결국 은유와 비유를 능숙하게 다루고, 묘사의 귀재가 되는 것이다. 묘사는 별도로 이야기하고, 은유와 비유를 짚어보자.
우선 비유의 귀재는 누구일까. 바로 예수님이다. 무엇을 어떻게 비유하며 글을 쓸지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신약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통독해 보면 적어도 비유는 통달하게 된다.
은유의 달인은 인디언들이다. 인디언들이 은유를 잘하는 이유는 자연과의 혼연일체 된 삶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인디언들의 은유는 그들이 표현하는 1년 열두 달의 이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명수필이라 할 수 있는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은, 1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시대적 괴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팔팔한 생명력을 지닌 글인데, 이 글에서도 은유와 비유가 윤슬처럼 빛난다.
인디언 시애틀 추장 연설문은 명수필
은유나 비유는 주로 묘사를 통해 나온다. 우리나라 작가 가운데 은유와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탁월한 묘사를 보여주는 작품은 최명희의 ‘혼불’이 아닌가 싶다. 이 혼불에서 문장의 미학을 철저하게 천착한 부분을 별도로 정리해 올렸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최명희 혼불 중에서 묘사 발췌
7. 묘사의 귀재가 되라
묘사는 글쓰기의 꽃이요, 글씨기 능력은 묘사로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묘사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묘사에 관해 예문을 충분히 들어가 아주 잘 설명한 글이 있어 별도 링크를 걸어둔다.
글쓰기 잘하는 데는 묘사가 생명이다
8. 풍부한 어휘력을 갖추고 문장 짓는 훈련을 자주 하라
우리 국어사전에는 품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시어 같은 낱말이 수두룩하다.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우리 낱말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음에도 숨을 얻지 못하여 죽은 듯 묻혀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국어사전은 꽃밭이다. 이름 없는 꽃은 없다지만,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시들어 있는 꽃이 널브러졌다. 국어사전에서 예쁜 낱말을 찾는 일은 풀숲을 뒤져 숨어 있는 예쁜 꽃을 찾는 일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국어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 아름다운 꽃을 찾아 자신의 꽃밭으로 옮겨 심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춘수 시인의 ‘꽃’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시인이 노래한 ‘꽃’은 바로 ‘아름다운 우리 낱말’과 비유된다. 한글은 우리 호흡과 같다. 우리 국민에게는 죽은 듯 묻혀 있는 낱말의 이름을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게’ 불러, 그 낱말이 우리에게 와서 또 다른 꽃이 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글을 잘 쓰고자 하는 사람은 어휘력이 풍부해야 한다. 적절한 낱말을 잘 부리다 보면 문장의 격이 달라진다.
품위 있는 낱말을 찾아 문장을 지어보는 일은 실용적인 측면도 있다.
우선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뇌세포와 감성을 애써 움직여야 한다. 요즘 무언가 자꾸 까먹는 이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문장을 짓다 보면 문장에 맞는 지난 상황이나 현재 주변 상황을 기억해 내려 애쓴다.
흡족한 문장이 지어졌을 때의 만족감은 마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지은 듯 행복하고 일상의 번뇌를 치유한다.
문장을 잘 다루는 훈련은 좋은 글을 창작하는 데 기본이 된다.
짧은 한 문장을 쓰는 것이니 짧은 시간에 부담 없이 즐긴다.
한 번 썼던 문장도 좀 더 나은 문장으로 계속 고쳐가며 ‘수련’ 할 수 있다.
9 생각의 근육을 키워라
언제부턴가 우리 영혼은 스마트폰에 사로잡혀 있다. 좀비라는 말조차 나온다. 스마트폰 안식일 또는 디지털 금식일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유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이다. 식사하면서도, 심지어 산책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가뜩이나 독서율 저조한 우리 국민의 ‘생각의 근육’은 허약해졌다. 생각의 근육이 허약하면 울뚝벨을 잘 부리고, 즉흥적, 우발적 성격이 된다. 사실 우발범죄라는 것도 생각하는 힘이 허약한 데서 비롯된다. 아무리 격한 감정이 일어도,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생각의 힘이요, 그 힘이 커질수록 근육이 붙는 법이다.
모르긴 해도 어떤 사물을 주제로 글 한 편 써오라 하면, 마냥 붓방아를 찧고 있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글을 쓰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데 생각의 힘이 부치면 글의 깊이가 사라진다. 사물을 관조하며 거기서 투영되는 사유나 심상을 끝까지 천착해 보는 습관을 들일 때,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나만의 발견’이 나오며, 그러한 것이 글에서 나타나야 독자는 감동하게 된다.
글을 쓸 때 생각의 힘이 부족하면 오류를 범하기도 쉽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해는 항상 마을 앞산에서 떠올라 뒷산으로 기울었다.’라는 문장의 오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뒷산에서 해가 뜨는 마을이 있다는 사실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가 뜨는 방향이 동쪽이고, 해가 지는 방향이 서쪽이다.’까지만 아는 사람은, 동쪽과 서쪽은 사계절 변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을 수 있다. 노을을 자주 관찰해야, 노을은 가장 뜨거운 때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되듯 스마트폰 대신 사물을 관조하는 시간을 늘려야 생각하는 힘이 늘어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게 된다.
10. 감정조절을 잘하라
글은 항상 담담하게 써야 한다. 글쓴이의 내면에서는 감정이 격할지라도 글을 쓸 때는 절제된 표현을 하여야 한다. 절제가 안 되면 문장에서 형용사 등의 남발이나 중복이 나타나게 된다. 자신이 겪은 슬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마치 타인의 슬픔을 그려내듯 담담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담담하게 써내려갈 때 글이 담백해진다.
환상적이면서 섬세한 필치로 20세기 초 프랑스 예술계를 흔들었던 고혹적인 여인 마리 로랑생, ‘몽마르트르 연인’으로 불렸던 그녀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고 만다. 아폴리네르는 떠나간 사랑에 대한 아픔을 <미라보 다리>라는 유명한 시에다 담았는데 명품은 감정의 절제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그 시대 이별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아픔을 가져왔겠지만, 아폴리네르의 절제된 마음이 처연하게 다가오는 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 우리들 사랑도 흐르네 /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자 / 우리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 흐르는 동안 /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 우리들 사랑은 오지 않는데 /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_<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낮 동안 쓸쓸히 병실을 지켰던 어머니와 형수는, 내가 병실로 들어서자마자 형의 식사 상태부터 복된 소식처럼 알려주신다. 비록 미음이지만 오늘은 점심도 저녁도 반 그릇씩을 먹었다는 것이다. 기력이 움돋이라도 하듯 금세 나는 기쁨으로 상기된다. 형의 기운이 이만 같아도 침대 곁을 서성대는 우리 영혼은 스르르 풀어 내린다. 이슬 젖은 나비의 날갯짓보다 못한 기운인 것을…. 그래서 살얼음처럼 간사한 마음을 우리는 스스로 안다. 오늘 먹은 식사가 형을 일으키기라도 할듯 호들갑떨던 마음도 잠시 뿐,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고르지 못한 형을 보면서 곧장 두려움의 늪으로 빠진다. 중고(重苦)를 안추르며 흘리는 신음소리가 애처롭다. 그의 몸 곳곳에 성호경을 그으며 내 영혼은 또 당신을 찾아 헤맨다.]
이 문단은 형이 말기암 선고를 받고 끝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사투를 벌이던 때, 형을 간호하며 적었던 글 중 일부이다. 눈물과 한숨, 슬픔과 고통, 절망으로 점철된, 한마디로 극단적 상황이지만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담담하게 표현하려고 애썼다.
[로또 1등 나는 이렇게 당첨되었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은 ‘로또리치’에서 번호를 받아 1등 당첨된 사람들 가운데 81명만 선정하여 당첨 후기를 묶은 책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 그 기분을 표현하자니 감정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감정조절을 잘하여 당첨의 기쁨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이들이 적잖았다. 하물며 글쟁이는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61억 당첨금 찾아왔어요. 얼떨떨하네요. 월요일에 당첨금 잘 찾아왔어요.^^ 갑자기 많은 돈이 생겨서 아직 얼떨떨해요. 지금까지 넉넉하지 않아서 항상 생활이 불안했는데 통장에 거액의 돈이 입금되니까 안도감이 들고 내 꺼구나 실감도 나고 좋습니다. 안 그래도 아기 낳으면 좀 쉬고 싶었는데… 산후조리 충분히 못하고 일할 생각 하니 불안하고 걱정됐었거든요 1등에 당첨되고 저와 아이에게 좋은 쪽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이 글은 로또 891회차 1등 61억 당첨자 후기이다. 갑자기 61억이 생겼는데, ‘어떨떨하다’라는 표현을 거푸 두 번이나 하고(흥분), ‘정말 너무 좋은 거 같아요’처럼 감정이 날것으로 표출되긴 하였으나 이 정도 차분하게 써내려간다는 게 놀랍다.
다음은 짧은 두 문장을 한 번 보자.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부엌을 드나들며 분주히 출근 준비에 바쁘게 움직인다.]
이 두 문장만 봐도 글쓴이는 감정을 앞세워 글을 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형용사나 부사를 반복해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부엌을 드나들며 출근 준비로 바쁘다.]로, 형용사나 부사를 줄여도 된다. 대상 사물에게 애정이나 분노나 슬픔이 넘칠 때 형용사나 부사가 자신도 모르게 중복해서 끼어들게 된다. 은연 중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글쓴이를 내세우려다 보면 이런 우를 범하게 된다.
11. 설명과 대화는 구분해라
교정을 보다 보면 의외로 설명과 대화가 이어지면서 서술을 없애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이런 경우이다.
영식이의 설명을 들은 교장선생님이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박 양만 괜찮다면…,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디.”
그러자, 음악선생님과 영식이가 발 벗고 나섰다.
절대 안 된다던 싹심이가 부모님도 허락하였다는 말을 전하자.
“부모님께서 허락하셨어도 무대에 선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요.”
싹심이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위 두 문장은 설명문과 대화체가 한 문장처럼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이어져야 한다.
영식이의 설명을 들은 교장선생님이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입을 열었다.
“박 양만 괜찮다면…,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디.”
그러자, 음악선생님과 영식이가 발 벗고 나섰다.
절대 안 된다던 싹심이에게 부모님도 허락하였다는 말을 전했다.
“부모님께서 허락하셨어도 무대에 선다는 것은 자신이 없어요.”
싹심이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대화체를 다른 문장과 계속해서 이어 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짧은 대화체라도 대화 문장은 줄바꿈을 하여 정리하는 게 바람직한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희수랑 시내 나가셨다면서요? 저녁은 드셨어요?”라고 묻자 어머니는 ”그래. 시내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희수가 저녁을 사줘서 잘 먹었다. 매번 희수에게 신세를 져서 어쩐다니.“ 하였다. 나는 ”잘하셨어요, 어머니. 기회 되면 제가 희수에게 보답할게요. “ 하며 전화를 끊었다. 희수가 새삼 고마웠다.
이 문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대화체는 별도로 정리하는 게 깔끔하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다.
“ 오늘 희수랑 시내 나가셨다면서요? 저녁은 드셨어요?”
”그래. 시내 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희수가 저녁을 사줘서 잘 먹었다.
매번 희수에게 신세를 져서 어쩐다니.“
”잘하셨어요, 어머니. 기회 되면 제가 희수에게 보답할게요.“
전화를 끊고 나니 희수가 새삼 고마웠다.
이와 관련하여 꼭 하나 알아둘 게 있다. 대화체 다음, 예컨대 [”저녁은 드셨어요?”라고]처럼, -라고, -라니, -라는 등 ‘-ㄹ접미사’는 대화체와 붙여 쓰고, [“보답할게요.“ 하며]처럼 –하고, -하니, -하라고, -하더니 등은 대화체와 띄어 쓴다.
12. 수필집을 다독해라
우리나라 수필가들 가운데는 글쓰기 숨은 고수들이 상당하다. 다만 우리나라 독자가 수필을 멀리하다 보니 이들이 빛을 못 볼 뿐이다. 지금까지 수천 종의 다양한 책을 만들어 왔지만, 수필가들만큼 글을 잘 쓴 원고는 보기 힘들었다. 비록 수필이 외면당할지라도 수필가들은 기본적인 문법, 어법부터 평가와 토의 등 나름대로 글 쓰는 훈련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 적잖다.
7~80대 수필가들의 수필집도 나이 든 작가들이라 하여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들 수필에서는 살아온 날만큼의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아름다운 철학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조의 깊이, 사물에 대한 탐구(천착)력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게 최고이다. 출판사로 들어온 원고들을 살피다 보면 글쓴이의 독서량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독서량이 풍부한 사람의 글은 어딘지 절제되고, 지성적인 멋이 비낀다. 수필집도 마찬가지다. 독서를 도외시하면서 자신의 글 쓰는 데만 집착하면 절대 최고의 글쟁이가 될 수 없다.
사실 자신의 진솔한 삶도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이다. 수필집을 자주 읽다 보면 자신도 그만 수필가가 되고 만다. 수필을 쓰면 자신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해드림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힘들 때나 우울할 때 나는 수필을 쓰거나 수필집을 읽는다. 그러면 잠시라도 정신적 질곡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는다. 한 권의 좋은 시집이나 수필집은 열 명의 친구보다 낫다.
13. 단편적이지만 잘못된 글쓰기 습관에서 비롯된 것들
1)적절히 접속사를 사용해야 글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지나치게 접속사를 생략해버리면 나뭇잎을 다 떨어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 같은 글이 된다.
2)접속사에서 줄바꿈이 문단을 나누지 마라.
요즘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니 여백을 주기 위해 쓸데없이 줄바꿈이나 문단을 나눈다. 특히 접속사는 앞 문장과 이어진다는 뜻이므로 이를 별개 문장이나 문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문단도 문단을 나누어야 하는 의미를 잘 헤아려 나누어야 한다. 네다섯 문장 이어놓고 무조건 문단을 나누는 이들도 있다.
3)일부러 사투리나 비문을 쓸 때는, 일부러 그리 썼다는 뜻으로 해당 부분을 따옴표로 표시하라.
4)물결표(~)는 음을 길게 하는 의성어가 아니다.
5)의조사 ‘의’를 남발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