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어머니 이야기를 누가 읽기나 한다고 책까지 냈을까. 어머니 구순 생신 선물로 그동안 써온 어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 후 떠올린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의식해 출간한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게 들은, 어머니에게 느낀 어머니의 자취소리 하나하나는 내게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출판사로 투고된 원고 가운데 어머니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에 내가 출간한 [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에도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지만, 그 구절을 읽으면서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찾아간 사위에게 음식 대접을 못 해 미안해하십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써 온 밥그릇들, 수저들, 찌개 냄비 등 속들이 어디로 가버린 건지 알 수가 없어 속을 태우십니다. 사위에게 밥과 찌개를 끓여내야 하는데. 도대체 이것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지 하며 안절부절못하십니다. 당신을 떠나 버린 것은 사실은 삶의 기억들인데, 그 기억들의 도움이 없이는 늘 하던 밥과 찌개조차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어디로 가버렸다고 야속해하는 그것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데, 그 물건들은 또 어머니가 저들을 버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다고 지들끼리 서운한 맘을 나눌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삶이 이렇게까지 가슴 아프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더 맘껏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걸 그랬습니다(심00).”
내 어머니 이야기가 아니라서, 너무 흔한 어머니 이야기라서 식상할지라도 때로는 누군가의 어머니 이야기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지혜가 된다. 남의 어머니 이야기를 누가 읽기나 할까 하면서도, [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를 출간한 이유는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과 죄스러운 마음을 글로써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를 둔 분들, 특별히 어머니에게 애틋한 분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과 어머니의 정서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떤 이의 어머니 이야기에서 인터넷 장보기 이야기를 읽은 적 있다. 멀리 시골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매번 인터넷으로 장을 봐서 어머니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나는 매번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먹을 만한 반찬이 있느냐며 묻기만 하였을 뿐, 내가 직접 보내드릴 생각은 못 하였다. 이후로는 나도 종종 인터넷에서 먹거리를 골라 어머니에게 보내드리곤 한다.
어머니 구순 생신이 돌아온다.
동생이 주말을 타고 순천 어머니집으로 내려갔다. 함께 내려가려고 하였지만, 사무실 잔일이 밀려 동생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머니 구순 생신 날, 돌이 채 안 지난 증손자들까지 모여 서울에서 조촐하게 식사할 자리를 잡아 두어 어머니를 모셔 와야 하고, 시골집 감나무 감도 따야 해서 동생이 내려간 것이다.
해거리를 하는 시골집 감나무는, 마치 올해만 존재하듯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며 가시들이 찢어지도록 감을 키워냈다. 해거리 없이 매년 적당히 감을 맺는 감나무의 한살이와 해거리를 하면서 한 번씩 쏟아내듯 감을 맺는 한살이 가운데 아무래도 자연의 순리는 후자와 가깝지 싶다. 다 이유가 있으니 자연은 감나무의 안식년을 두었을 것이다. 해거리에는 절제와 겸손, 기다림, 여유, 비움, 묵언, 안거수행 등의 가치가 스며있는 듯하다.
단감나무는 한 그루지만, 몇 상자씩 감이 열린다. 어머니는 수확한 감을 자식들이며 결혼한 손녀들에게 고루고루 보내신다. 어머니는 때로 자식보다 어린 시절 당신 손에서 자란 손녀딸을 먼저 챙긴다. 아빠나 엄마를 일찍 여읜 손녀딸들이 가정을 이루어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늘 대견해 하신다. 어느 부모인 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에게 무언가를 챙겨 보내줄 때 가장 흐뭇하지 않을까.
시골에서 자란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감나무의 정서를 듬뿍 받았다. 수북히 떨어지는 감꽃이며 감 똘기, 눈동자를 마비시킬 듯한 연둣빛깔의 윤기나는 이파리들, 정결하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과 붉고 노란 번짐의 화려하지만 절제된 단풍이 수십년이 흘러도 우리 가슴속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열흘 남짓 머무를 것이다. 어머니는 내 집보다 동생 집에 머무르는 것을 더 편해하신다. 편해하기보다 내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만큼 나는 모자라게 세상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가까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오는 동생 차량에는 고향 논에서 난 쌀이며 찬거리 등등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손주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생선도 챙겼을 것이다. 고향 논에서 수확하는 쌀은 일종의 간척지 쌀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향 마을 앞은 대부분 염전이거나 개펄 땅이었다. 지금 논이 된 이곳에서 나는 쌀은 일 년이 지나도 밥에서 윤기가 흐른다. 어머니 말씀이 간척지 쌀로 지은 밥을 석 달만 먹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한다고 하셨다. 쌀이 좋아 살이 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먹는 밥과 고향 집에서 먹는 밥은 확실한 차이를 느낀다.
겨울이 다가온다. 생각 같아서는 겨울에는 어머니가 서울에서 지냈으면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각뿐이다. 겨울 햇살도, 기온의 따스함도 서울보다는 순천 시골집이 훨씬 낫지만, 겨울이 겨울인지라 90세 어머니가 혼자 시골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게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다. 어머니의 고집은 60대가 된 아들도 꺾지 못하는 터라 말도 못 붙일 때가 있다. 때로는 어머니의 강한 자존심이 자식에게 불편하기도 하다. 자식들이 무언가 하자 하면 말없이 따라주셔도 좋을 텐데, 90세가 되어도 당신 성에 안 차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신다. 적어도 당신과 관련한 모든 판단은 당신 뜻대로 하시는 편이다. 이번 구순 가족 모임도 한사코 간소하게 하라, 간소하게 하라 노래 부르듯 하셨다.
시골로 내려가 뵌 지 얼마 안 됐을지라도 어머니가 올라오신다니, 어릴 적 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자식에게 모정이란 영원한 모양이다. 어머니란 존재가 참 크다. 그런 거 보면 어머니라는 존재가 바로 신이요, 우주인가 싶다.(2022. 11.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