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 필경재와 간도의 영혼 이중하 선생, 광평대군파

by 해드림 hd books

수서 필경재와 간도의 영혼 이중하 선생,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강남 수서에 있는 궁중요리 전문점 [필경재]에서 어제(12월 14일) 점심을 하였다. 필경재 이병무 대표님 초대로, 선배인 강남신문사 유상용 대표님과 정권수 목사님, 그리고 간도의 영혼 이중하 선생의 증손자 이규청 선생님이 함께한 자리였다.

[필경재]는 세종 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증손인 정안부정 이천수(李千壽)가 성종 때인 15세기에 건립하였다. 따라서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종가집으로 약 500년이 된 종택(宗宅)이다. 1999년부터 궁중음식 전문점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운영해오는데 주요한 외국 손님들이 비공식 만찬 장소로 이용하는 곳이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과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도 다녀갔다는데 우리가 점심을 먹은 자리는 중국 시진핑 주석이 만찬을 가졌던 방이라고 하였다.


필경재란 ‘반드시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자세를 지니고 살라’는 뜻이란다.

현재 필경재 이병무 대표는 광평대군의 21대손으로 종가의 종손이다.

어느 날 강남신문사 유상용 대표가 허름한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이중하는 살아있다’라는 이 책을 살펴보니 정식 출판물이 아닌 가제본한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에서 50여 년 거주한 정권수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이 출판비를 부담할 처지는 아니었다. 우리 출판사 역시 지극히 어려운 출판시장에서 판매량을 장담할 수 없는 원고를 선뜻 출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다. 하지만 ‘간도와 이중하 선생’의 역사적 의미는 돈으로 따질 가치가 아니었다. 출판비가 고스란히 출판사 빚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또한 내용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라도 ‘간도와 이중하 선생’을 재인식시키는 데는 출간만큼 좋은 방법도 없는 것이어서 출간을 감행한 것이다. 저자가 50여 년 외국에서 살았던 분이라 손이 가야 하는 내용이 수두룩한 원고였지만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은 2쇄, 3쇄 때 보완하자는 심정이었다. 책을 살려두는 일이 간도와 이중하 선생을 살려두는 일이어서, 어떻게든 최소한 3쇄 정도는 밀고 나가 초판보다는 좀 더 완전한 [간도의 영혼, 이중하는 살아있다]로 남겨야겠다는 결심도 한 것이다.


경기도 양평 창대리에서 출생한 이중하(1846~1917) 선생은 광평대군의 5대손이다.


이중하 선생은 1882년 (고종1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 교리가 되었다. 1885년 공조참의에 올라 안번 부사가 되었다가 토문감계사로서 청국측 대표 덕목, 가원계, 진영 등과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지계를 심사하였다.

국경문제를 놓고 담판을 벌였으나 견해차가 심한 데다 청국 측이 강압적 태도로 나와 회담은 실패했다. 1886년 덕원 항감리가 되었다가 1887년 다시 토문감계사가 되어 회담을 재개하였는데 청국 측이 조선 측의 주장을 거절, 위협하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며 끝내 양보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외교의 영혼 같은 인물이다.


필경재 이병무 대표님이 필경재에서 점심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저자인 정권수 목사님과 [간도의 영혼 이중하는 살아있다]를 출간한 해드림출판사 및 이 책 홍보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강남신문사 유상용 대표님에게 광명대군파 종가의 종손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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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가 포함된 대한민국 지도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 현재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대한민국의 북방영토, 왜 우리는 이 영토를 빼앗겼는가.

이번에 출간한 [간도의 영혼, 이중하는 살아있다]가 이중하 선생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북방영토를 되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해 온 ‘간도되찾기운동본부’와 ‘간도신문’ 에 우리 국민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으는 데 일조하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

우리 땅 간도를 팔아버린 일본은 여전히 집요하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현실이 자꾸만 우리 국민성과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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