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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음날 Mar 03. 2023

08. 배달어플을 지우다.

편리함에는 비용이 청구된다.

나는 식당을 3년간 운영하다가 대차게 말아먹은 경험이 있다. 

당찬 포부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개업한 식당은 모든 것이 서툴고 삐걱거린 채 닻을 올리고 말았다. 

나는 백종원 아저씨가 하지 말라는 건 모조리 다 하고 말았다. 

망한 식당의 원인을 글로 써보니 책 한 권이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가 읽기도 지루하고 짜증스러워 서랍 속에 던져두었다. 


1. 식당일을 한 번도 안 해보고 식당을 차렸다. 

2. 레시피의 확립 없이 1년 가까이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3. 메뉴 또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쌀국수는 꾸준히 팔았지만 중간에 분짜, 메밀냉면, 돈가스, 곱창떡볶이까지 정체불명의 다국적 김밥천국이 될 기세였다. 

4. 주변 지인과 먼 친척에 초등학교 동창들까지 모조리 불러 모아 시식을 진행했다.

5. 식당을 열고 정말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신장에 병을 얻어 쓰러지고 말았다. 5일간 입원을 하고 돌아오니 가게는 이미 망한 기운이 감돌았다. 

6. 개업 3개월 후에 코로나가 터졌다. 


배달 어플에 등록된 우리 식당의 쌀국수 사진


3년 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식당을 폐업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배달어플을 지우는 일이었다. 

식당을 3년간 운영해 본 입장에서 배달어플은 나에게 생계이며 바쁜 일상에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수단이었다. 

반대로 나의 식당을 망하게 한 장본인 중 하나이며 나의 인생에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이 매우 컸다.

더 적나라한 표현과 실상에 대한 고발도 가능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아니기에 다음을 기약한다. 

배달 어플은 편리함을 내세워 음식점과 고객 사이의 불편을 해소해 주는 아주 좋은 어플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편리함에는 늘 그렇듯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 

플랫폼 업체라는 말을 누가 지어낸 건지 몰라도 핵심을 명확하게 찌른 단어 선정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기차 플랫폼처럼 한번 지어놓은 시설처럼 모든 음식점과 고객이 플랫폼을 이용하게끔 해둔 것이다. 

플랫폼에는 많은 비용이 모이고 플랫폼의 탐욕은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독점이 쉽기 때문이다. 


플랫폼 이용 수수료와 배달비는 고스란히 점주와 고객에게 전가된다. 

이러한 수익의 구조로는 도저히 좋은 음식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식당을 해본 입장에서 너무나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플랫폼 업체를 비난할 일은 절대 아니다. 

나 역시 배달플랫폼을 잘 이용했었고 세상에 꼭 필요한 서비스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배달 어플을 지운이유는 다음과 같다.


음식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소요한 비용 대비 결코 양질의 음식을 얻을 수 없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배달어플을 지우고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배달어플을 지우는 일은 터치 몇 번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아주 큰 불편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습관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에게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습관은 크게 나누어 보자면 나에게 적용시켜 장착해야 하는 습관과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행동을 떼어버려야 할 습관으로 나뉜다. 

나의 성향이나 환경이 새롭고 좋은 습관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가 나쁜 습관을 하지 않는 것에 더 익숙한가를 알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 vs 배달어플을 지운다. 는 2개의 습관은 다른 듯 하지만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 

배달어플이 없어지고 배달을 시켜 먹지 않는다면 당연히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 빈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식이라는 선택지가 있기에 당장의 실행 난이도를 보자면 배달어플을 지우는 쪽이 선택이 용이하긴 하다.

선택만 용이할 뿐 사실 직접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분은 상당히 난도가 높은 부분이라 일반화는 어렵다. 

요리를 못하거나 도저히 요리할 시간이 안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성향도 한몫할 것이다.  

나는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라 뭔가를 실행하는 것에 반사적으로 체력적인 부담감을 갖는다. 

아침을 먹는 것보다는 안 먹는 것을 더 선호한다.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것보다는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에 더 큰 수월함을 느낀다. 

혹자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탄산을 끊을 수 있다고? 차라리 비타민을 챙겨 먹는 게 훨씬 편한 습관 아닌가? 하는 반문이 들 수도 있다.

지나치게 게으른 습성을 가진 사람은 때때로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편리함을 추구하곤 한다. 

자신에게 쉽고 단순한 것을 가장 먼저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듯 개인의 기호가 충분히 반영된 탓일까.

나의 경우는 배달 어플을 지우는 것이 꽤나 수월한 편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어플을 지운 지 6개월이 되었지만 배달음식을 시킨 경우는 정확히 3회에 그쳤다.

부득이하게 야외에서 일을 하는 경우 내가 호스트가 되어 비용을 지불해야 할 자리가 있었다. 

친구집에 놀러 가서 음식이 모자라 아이들의 음식을 배달시키기도 했다. 

먹고 싶은 피자 브랜드가 있어 포장을 하려 했으나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배달을 시킨 경우였다.


배달을 시킬 때마다 어플을 다시 깔고 주소를 입력하고 카드를 등록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안 시켜 먹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려주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곤 했다.

무지막지하게 큰 게으름은 사소한 게으름을 이기는 법이라며 뿌듯해하는 나를 아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사람은 누구나 귀찮을걸 싫어한다. 

우리의 뇌는 큰 귀찮음과 작은 귀찮음으로 경중을 놓고 따지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후 식탁을 닦는 귀찮음과 1년에 한 번 있는 연말 정산 서류를 정리해야 하는 것 둘 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다.

순서에 상관없이 일의 정도에 따라 더 귀찮고 덜 귀찮을 수 있는 건 우리의 판단일 뿐이다. 

뇌는 그저 둘 다 하기 싫고 미루고 싶은 일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둘 중 무엇이라도 하나를 해나가면 언젠가는 둘 다 해결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격하게 일을 미루는 건지도 모른다. 

미루고 있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이 편안함의 상태를 벗어나기 싫기 때문이다. 


배달 어플을 지우고 나서 생긴 습관의 도미노는 야식을 먹지 않는 습관이었다.

우리 부부는 거의 매일 늦은 저녁 야식과 맥주를 달고 살았었다. 

매콤한 닭발에 주먹밥, 골뱅이 무침과 소면, 족발, 닭똥집, 양장피, 등갈비, 치킨, 햄버거, 피자 세상에는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보통은 12시 즈음까지 이어지는 저녁을 빙자한 술자리는 부부의 건강을 크게 위협했다. 

소화가 되지 않은 채 술에 취해 노곤하게 잠에 드는 경우가 많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9월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대화를 통해 합의를 했고 둘 다 큰 거부감 없이 야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무난하게 합의를 해버렸다. 

겉으로는 쉽게 결정이 난 듯 보였지만 내적 갈등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시원한 맥주 한잔과 매콤한 닭발에 주먹밥과 고소한 계란찜의 조화를 하루아침에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은 맥주안주로 닭염통구이를 집었을때 자석처럼 혹은 토르의 망치 묠니르처럼 끌려오던 맥주가 그립기도 했다. 

맥주 없는 염통구이의 맛은 공허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우리가 선택한 일인 것을.


굉장히 어려울 것만 같고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배달어플 5개를 지웠는데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아이들과 저녁 식사 이후에는 정말 어지간한 허기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장을 볼 때마다 습관적으로 집어 들던 6개들이 맥주팩을 집어 들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니 아이들도 늦잠을 잘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가급적 저녁을 아이들과 건강하게 먹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오랜 자취 생활덕에 요리를 곧잘 하기도 했고 관심이 많아 대부분의 요리는 직접 해오던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달 음식의 편리한 세계를 만난 이후 줄곧 시켜 먹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비용은 높고 음식의 질은 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아빠가 해주는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한다는 당위성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피자, 햄버거 등은 직접 매장을 가서 먹거나 포장을 해오곤 했다. 

전과 비해선 확실히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빈도가 줄게 되니 아이들도 그다지 예전처럼 피자, 햄버거, 치킨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단지 배달 어플을 하나 지웠을 뿐이다. 

습관의 도미노 효과가 발동되며 야식을 먹지 않는 습관이 뒤따라 왔다.

연이어 맥주를 마시지 않는 습관이 생성되었으며 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당연히 장을 볼 때 맥주를 구매하지 않게 되었고 이는 다시금 건강한 식단에 재투자되었다.

부부의 건강도 개선되었고 가족의 식습관이 건강해졌다.  

배달음식을 주문하지 않고 맥주도 마시지 않으니 식비가 줄어들었다.

가족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퀄리티가 상당히 올라갔다. 

줄인 비용으로 아내는 필라테스를 다니고 나는 러닝을 하거나 조기 축구회에 가입해 운동을 하고 있다.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편안해진 위장과 아침에 부대끼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점이다. 


배달음식은 편리하고 시간을 절약해 주었지만 나와 가족에게 장기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는 습관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배달을 시키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배달 주문을 귀찮게 만들 허들을 만들기 위해 배달 어플을 지웠다.

한 번의 시도로 좋은 습관이 줄줄이 따라 나오고 나쁜 습관은 도미노처럼 쓰러져 나의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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