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뭐랄까요. 과거로 다녀온 이 기분. 손을 맞잡고 다녀왔어요. 결코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했던 내가 아니었습니다.
친과 다시 이야기하게 된 것은 7년 만이었어요. 죽은 혼이었지요. 아니, 그녀는 살아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당신이 믿어줄지 의문입니다. 아아... 그럼.
비가 오던 그날에 내가 안나를 만났다고 했지요. 일단 그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비가 오던 날 만난 안나는 작은 벌레 요정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니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밖에 설명을 못하겠군요. 비는 퍼붓듯 쏟아지고 아득한 안갯속에서 정신을 잃었을 때, 어디론가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몽롱하고도 낯선 이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지요.
이제 안나의 형체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나가 말했죠. "이것을 찾고 있나요?" 안나는 나에게 무언가 내밀었지만 나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곤 번개를 맞은 듯 두 눈을 뜨게 되었죠. 난 너무 놀라 주위를 둘러봤어요. 다시 내 침대 위더군요. 비바람은 세차게 불어와 창문을 깨트리려고 했고 나의 몸은 흥건하게 젖어 무거웠습니다. 그 일이 꿈이냐고요? 아니에요 전혀.
그 일이 있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시골로 이사를 온 뒤, 시간이 많아진 나는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려했을까.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떠나 연락을 끊어버리고 이곳으로 오겠다 결정을 내린 건 나였습니다. 이곳에선 아무도 나를 몰랐으니까요. 뭐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 반대이기도 했지요. 새롭게 시작하기엔 이미 수많은 일들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장소일 뿐 나는 여전히 예전의 나에 불과했지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에요. 이후로 또 안나를 만나고 싶어 내가 뛰쳐나갔던 그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날은 맑은 날이었어요. 그래서 그랬던 걸까요? 안나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한 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작은 숲길을 헤쳐나갔죠.
이곳은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지만, 차를 타고 나가면 또 금방 북적거리는 시장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완전히 떠나온 사람 같지만 아닌 사람도 같았죠. 어정쩡한 기분은 늘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비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안나를 만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