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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Sep 21. 2023

라파즈에서의 마지막 날

나 홀로 남미여행 - 9일 차

  깊게 잠이 들진 못했지만 눈을 뜨니 라파즈 버스터미널이었다. 아직 새벽 5시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원래는 바로 달의 계곡에 가려고 했는데, 달의 계곡은 9시에 문을 열고, 핸드폰 배터리는 없고, 이 추운 곳에 앉아서 4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 일단 공항으로 향했다.


  터미널 앞 택시를 잡고 공항으로 갔다. 아직 어두운 이 시간에 공항으로 간 이유는 바로 캡슐호텔 때문이었다. 작은 공항이었지만 놀랍게도 구석 한편에 캡슐호텔이 있었다. 웹사이트에서 평점은 좀 낮았지만 다음날 긴 비행을 해야 했기에 좀 편하게 쉬다 가고자 체크인을 했다. 좁고 답답한 방. 그래도 맘 편히 짐을 두고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게 어디냐. 나는 우선 잠을 좀 더 잤다.

라파즈 공항 캡슐호텔

  눈떠보니 열두 시 정도. 공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도심 쪽으로 나섰다. 나는 라파즈 기념품을 하나 사고 싶기도 했고 식당과도 가까운 마녀시장으로 내렸다. 첫날 왔던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며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에게 인상 좋은 가게 아주머니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감사한 마음 반 어차피 기념품이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 이유 반, 나는 우연히 들어오게 된 이곳에서 자석을 사기로 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자석들을 보며 선택장애 현상을 겪었지만 쏟아지는 비 덕분에 자연스럽게 천천히 고를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몇 개를 집어 가격협상을 해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결국 자석 3개에 20 볼로 합의. 결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아주머니께서 행복을 상징한다 하시며 고대석상 느낌의 아주 작은 돌을 주셨다. 때마침 내리던 비가 그쳤다.

마녀시장과 행복을 상징하는 돌

  배가 고파왔다. 나에게 선택권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볼리비아에서의 첫 끼로 먹었던 그 라면 혹은 한국인 관광객 후기에서 본 스테이크였다. 이 둘 중 더 끌리는 건 솔직히 라면이었다. 하지만 곧 내 기숙사 방에 돌아가 직접 끓여 먹을 라면의 맛을 극대화하자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스테이크를 선택했다. 마녀시장 근처에 있는 ‘더 스테이크 하우스’. 메뉴판을 보고 나는 잭다니엘 스테이크에 콜라를 시켰다. 한국돈으로 2만 원 정도 하는, 스테이크 치고 저렴한 가격. 그러나 이곳에서는 굉장히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스테이크 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웨이터가 들고 오면서 불쇼를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차분히 핸드폰에 영상을 남기고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뭔가 투박(?)해보이는 스테이크

  라파즈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이제 우버를 불러서 달의 계곡으로. 나도 안다. 앞서 우유니 투어 할 때는 10 볼이라도 더 아껴보려고 애를 쓰던 애가 지금은 계속 택시를 타고 우버를 부른다니 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인가. 변명을 좀 하자면 도저히 현지 버스인 콜렉티보를 어디서 어떻게 타야 할지 감이 안 잡혔고 알아보기도 너무 피곤했다. 어쨌든 달의 계곡 도착.


  표를 사고 혼자서 한 바퀴 쭉 걸으면 40분도 안 걸려서다 둘러볼 수 있다. 오후 두세 시경이어서 그런지 햇빛은 굉장히 쨍쨍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터키인데, 카파도키아의 예습정도로 생각하며 걸었다. 라파즈의 지형은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 같다. 옆에 한국인 단체 관광객분들이 투어 중이었는데, 일본에서는 항상 한국인 없는 현지 맛집을 찾았지만 남미에서는 한국어가 들리면 너무 반가웠다.

달의 계곡과 독주회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공항으로 돌아가기 위한 택시를 탔다. 차에 오르기 전 기사님에게 택시 값을 물었다. 그리고 정확히 얼마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기사님께서 제시하신 가격의 절반정도를 외쳤다. 기사님 일초정도 머뭇거리시더니 바로 오케이 하셨다. 뭔가 성공했는데 동시에 속은 기분이었다. 깎았는데 바로 승낙하면 뭔가 진 느낌이다. 차 안에서 라파즈의 풍경을 진짜 마지막으로 감상했다. 같이 동행한 아저씨께서 한국의 70년대가 떠오른다고 하셨었는데 이 말이 맞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엄청난 발전을 이뤄낸 것 같다.


  시간은 오후 4시 반. 다시 공항 캡슐호텔로 돌아왔다. 새벽에 리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까지 조금 피로를 풀었다. 남미를 여행하다 보니 스페인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스페인어 숫자와 여행 기본회화를 찾아보았다. 그러다 곧 있을 중간고사나 어서 공부해야 지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이제 무사히 내가 출발했던 세인트루이스까지 도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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