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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Aug 10. 2023

파워 J 초보 여행가의 쉬어가는 하루

나 홀로 남미여행 - 8일 차

  남미에서 숙소를 결정할 때 위치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잘 나오는지의 유무이다. 그런 기준에서 내가 이틀간 머문 호텔 후마리(Jumari)는 미래에 우유니에 방문할 여행자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방도 널찍하면서 뜨끈한 샤워가 투어를 하며 방전된 내 몸을 충전시켜 주었고, 편의점과 시계탑이 근처에 있어 위치적으로도 매우 만족했다. 전날 함께 투어 한 분들도 모두 이곳에서 머물고 계셨다.


  이제 남은 일정은 쉬면서 무사히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다. 열 시쯤 일어나 체크아웃을 했다. 느긋하게 우유니 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교복 입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길거리에서 주스를 팔고 있는 상인들을 지나쳤다. 작지만 평화로운 동네였다.

우유니 길거리

  평소의 나와 다르게 오늘은 지도 어플을 열지 않았다. 그냥 문을 연 식당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닭고기와 밥, 그리고 감자튀김. 조각되어있지 않은 채로 노릇하게 구워진 닭 반마리의 기름 좔좔 육즙은 흩날리는 밥과 튀겨졌지만 쫄깃한 감자튀김과 잘 어울렸다. 순간 나의 밥 먹는 모습을 찍어 먹방 유튜버로서 데뷔를 해볼까도 생각했으나,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에 핸드폰 카메라를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고 먹는 데에 집중했다.

흡입했다

  나는 파워 J다. 공부할 때나 약속을 잡을 때 계획이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여행을 떠날 때에는 이동 수단과 잠잘 곳을 비롯해 어떤 식당에서 무슨 메뉴를 먹을지까지 미리 생각해 두는 편이다. 물론 음식이 나의 삶에 아주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점들이 너무 빡빡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내 미래를 그려본 뒤, 그것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에서 뭔지 모를 성취감과 희열을 느낀다. 근데 계획이나 일정이 틀어졌을 때 오는 실망감은? 나도 안다. 내가 세운 계획이 당연히 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내 운명과 내 의지가 벌이는 사투를 자체를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로 아무것도 할 일 없는 날이었다. 계획적인 하루를 보내지 않아 보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맛의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사 들이키고 우유니 마을을 다시 한 바퀴 걸었다. 현지 미용실이 보였다. 잠시 유튜브에서 봤던 수많은 현지 미용실 체험기 영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아직 나 스스로 도전해 볼 정도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그마한 호텔 로비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쉬었다. 노래도 듣고, 유튜브 영상도 보다가 눈을 잠깐 붙였다. 인상 좋은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담요를 내어주셨다.

호텔 로비

 졸다가 눈을 뜨니 전날 투어를 함께한 분들이 로비로 내려와 계셨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여행과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1년 간 해외여행 중이신 부부께서 허락을 맡고 로비 식당에서 짜파게티를 끓이셨는데, 풍겨오는 냄새에 도저히 한 입 할 거냐는 제안을 사양할 수 없었다. 감동의 맛이었다.


  라파즈로 돌아가는 버스에 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호텔에서 나왔다. 터미널은 호텔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우유니 버스 캔슬 사태 때 함께 캔슬 통보를 받은 영국 커플을 만나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은 라파즈로 가는 버스 안이다. 갑자기 다시 학교 가면 곧 치를 중간고사에 대한 부담감이 밀려온다. 남은 한 달여 시간 동안 빡세게 공부해야지 다짐한다. 일단은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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