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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는 여행중 Aug 08. 2023

새하얀 우유니에서 온종일 보낸 하루

나 홀로 남미여행- 7일 차

    '풀데이 투어'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시피 우유니 소금사막을 온종일 누비며 하루를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우유니에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기본적으로 하루를 이 투어를 위해 할애하는데, 내가 전날 했던 선셋-스타라이트와 비교하자면 풀데이 투어는 노을을 마지막으로 일정이 끝난다는 점이다. 삼만 원 조금 넘는 가격으로 점심까지 포함한 차량 투어를 한다는 게 따지고 보면 가성비가 굉장히 좋은 투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새로운 분들이었는데 총 여섯 명이었다.


    어제처럼 아리엘 투어사 앞에서 우리를 태운 차량은 오전 열 시 반에 맞춰 출발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기차무덤. 더 이상 이용되지 않아 망가져 고철이 된 기차가 사막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우리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외로운 기차들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별다른 특별함이 느껴지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내 최애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의 영상에 나온 적이 있었기에 한번쯤 가보고 싶었다.


    기차무덤에서 사진을 찍은 뒤 본격적으로 소금 사막에 들어가기 전 가이드는 우리를 시장 비슷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길거리의 상점에서는 쭉 우유니와 관련된 다양한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여행지마다 꼭 기념품을 수집하는 편은 아닌데, 우유니가 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목적지임을 알았기에 마음에 드는 자석을 하나 구매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가격 흥정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차량에 탑승했고 슬슬 소금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 다가갔다. 가이드는 군데군데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포토 스팟에서 차를 멈췄다. 그리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열정적으로 포즈를 취하며 관광객으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기차무덤/볼리비아 깃발/천국의 계단

  슬슬 배가 고파오던 즈음, 가이드는 차를 사막 한가운데에 세우더니 혼자서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를 세팅한 다음 트렁크에 있던 밥을 가져왔다. 오늘 우리가 일용할 양식은 닭고기와 조금 눅눅해진 감자튀김, 그리고 각종 야채. 나는 다시 카메라를 잠시 켰다. 내가 우유니에서 와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바로 고기에 우유니 소금을 찍어 먹는 것이었다. 최대한 깨끗해 보이는 소금 부분을 찾아서 손으로 한 꼬집 집어 닭에 뿌렸다. 한입 베어 물었다. 짭짤한 소금의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이드님의 본격적인 사진촬영 쇼가 시작되었다. 블로그나 카페에서 많이 보던 원근법을 이용한 사진을 찍었다. 수도 없이 찍었다. 나름 재밌었는데, 정오가 막 지난 때여서 그런지 날씨가 굉장히 덥고 해가 쨍쨍했다. 우유니 사막은 하얗기 때문에 눈이 많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출발 전 마트에서 동행 아저씨의 충고에 떠밀려 싸구려 선글라스 하나를 구매했는데 안 샀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그리고 선크림도 반드시 발라야 한다.

    이후에 우리는 차를 타고 소금 호텔에 갔다. 소금 호텔의 벽이나 내부 테이블은 모두 소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도 호텔 바로 앞에 펄럭이는 만국기는 괜찮은 포토스팟이었다. 잠시 태극기를 바라보며 이유 없는 애국심을 느꼈다.


    이곳을 벗어나기 전 우리는 모두 장화로 갈아 신었다. 어제처럼 물이 찬 소금사막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조금씩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왔었지만 물이 찬 소금사막에 다시 들어오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신이 나는 게 마치 아기가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느끼는 기쁨도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가이드님은 갑자기 다시 한번 테이블을 설치하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인잔과 와인을 세팅했다. 노을을 바라보며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시는 와인. 정말 감성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와인의 맛은 없었다. 내가 와인을 잘 알지 못해도 이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와인의 맛이 아무리 식초와 같다 한들 천국과 같은 공간의 분위기는 깰 수 없었다.

    근데 오늘은 바람이 좀 많이 불었다. 바람이 많이 불면 물결도 많이 생기기 때문에 거울처럼 완벽히 반영되는 사진이 나오기 어렵다. 어제만 못한 날씨였지만 그래도 우유니에 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들떴고 믿기지 않았다. 하루차이였지만 어제는 발견하지 못한 보랏빛 색의 노을도 보았다. 노을을 조금 더 만끽하다 대략 7시 반 정도가 되면 풀데이 투어는 마무리된다. 풀데이 투어는 물이 찬 사막에서 그리 오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쪽 지역에서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앞부분의 일정을 빨리빨리 넘어가자고 가이드에게 부탁하면 된다.

    투어가 끝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오늘 함께했던 동행분들과 저녁을 먹었다. 고깃집이었는데 식당 밖의 불판에서 고기를 구우며 피워내는 냄새로 손님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번역기에 돌려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부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소고기를 주문했다. 채소는 직접 가져다 먹을 수 있었고 고기는 감자나 밥과 함께 나왔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기의 맛은 상당히 좋았고 양도 굉장히 많았다. 4명이서 배부르게 먹고 이만 오천원정도 나왔는데, 뉴욕에서 이만큼 먹었으면 이 가격의 열 배 정도는 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첫날의 감동이 워낙 컸던지라 오늘은 한계 효용을 체감했지만 그래도 역시나 아름다운 우유니였다. 드디어 이번 내 버킷리스트 여행 목표 2가지가 모두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남미의 우여곡절 끝에서 무사히, 성공적으로 꿈의 장소들을 방문할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이제는 무사히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내일 하루는 우유니에서 쉬다가 밤에 야간버스를 타고 라파즈로 돌아간다. 그리고 라파즈에서 리마, 리마에서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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