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Jeju noodle bar]
맛있는 음식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후,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다름 아닌 ‘미슐랭 가이드’였다. 언론이나 sns에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혹은 ’미슐랭 출신 셰프‘ 같은 문구를 자주 접했었는데, 가본 적도 아는 것도 없지만 미슐랭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맛있음을 인정받은 하나의 증표로 인식되고 있었다.
때는 지난 5월, 나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촌 형집에서 며칠간 머물게 되었다. 가볼 만한 식당을 검색해 보다 뉴욕에서 라면으로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멘도 아니고 한국의 라면으로? 너무 궁금했지만 예약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상황. 찾아보니 워크인 입장도 보통 잘 안 받아주는 편이라더라.
일요일 오후 3시, 맨해튼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하며 마음을 비운 채 오픈시간에 맞춰 식당을 찾아갔다. 시간도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형과 함께 가본 것이었다. 다행히 바로 들어와도 된다고 하셔서 놀랍게도 대기 없이 입장!
Jeju noodle bar. Jeju가 제주도를 지칭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소질이나 기술의 의미인 ‘재주’를 뜻한다고 한다. 내부는 세련된 분위기였다. 테이블이 있고 바로 되어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재주 누들 바를 뉴욕에서 미슐랭 원 스타 레스토랑의 음식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물론 라면만 먹으면 그렇다. (사실 라면도 평균 $20~30. 한화로 대략 삼사만원 꼴.) 그러나 여기에 ‘애피타이저‘를 곁들이게 되면 웬만한 스테이크하우스 이상의 가격이 나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느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애피타이저를 지나치긴 아쉽고, 토로 쌈밥과 재주 프라이드치킨을 시켰다. 큼지막한 치킨 두 조각이 어니언 파우더가 들어간 소스, 캐비어와 함께 나오는데… 우선 바삭한 건 둘째치고 이 무슨 사치라는 생각에 먹으면서도 자꾸 실소가 터졌다. 나는 캐비어를 치킨과 먹게 될 줄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치킨은 맛있었다. 소스와도 잘 어울리고 애초에 맛없기가 더 어려우니까. 그렇지만 캐비어를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나는, 솔직히 캐비어의 특별함을 잘 느끼진 못했다. 좀 더 내공을 쌓아야 하는 걸까…
토로 쌈밥은 다진 참치, 캐비어 등을 올린 덮밥에 김을 싸 먹는 요리였는데, 여기에 우니까지 과감하게 추가했다.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는 조합. 한입 먹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
이제 메인. 고추라면이다. 고추장 베이스 국물 같았는데 꽤나 깊은 맛이 났다. 목이버섯부터 삼겹살까지 재료가 굉장히 풍부했다. 근데 반숙 계란 추가가 오천 원 실화? 이게 뉴욕의 물가인가…
와규라면. A5 등급 와규가 들어갔다고 한다. 처음 보는 비주얼의 라면이었다. 국물을 한입 먹고 딱 든 생각은, ’ 이거 사리곰탕인데?‘. 면 자체가 사실 크게 인상 깊진 않았는데 꼬불꼬불한 게 확실히 라멘보다 라면에 조금 더 가깝다고 느껴졌다.
두 라면 모두 기본적으로 맛있었다. 퀄리티적으로도 평소에 먹는 라면보다 하나의 요리 같은 느낌이 컸다. 하지만 라면이라는 메뉴로 한국인들에게 높은 평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라면은 언제나 맛있는데 재료가 어떠한들 감탄할 정도로맛있기는 무척 어려울 테니까. 그래도 세계적 무대에서 한식 바탕의 요리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멋있게 느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라면의 맛은 상황적 요인에 가장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라면은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시험기간에 사감선생님 몰래 끓여 먹은 까르보 불닭볶음면과 육개장 사발면, 혼자서 제주도 자전거 종주 중 바다를 바라보며 먹은 해물라면, 그리고 페루에서 고산병을 단번에 가시게 해 준 쿠스코 한식당의 라면이었다. 잊지 못할 추억과 엮여있는 라면의 맛은 극대화되는 것 같다.
인생라면 순위 리스트에 변동이 있진 않았지만 뉴욕에서의 재미있는 한 끼 식사였다. 처음으로 가본 미슐랭 원스타 식당에서의 좋은 경험. 근데 애피타이저로 먹은 치킨이 자꾸 생각난다. 돈 많이 벌어야겠다.
평점: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