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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Jan 11. 2017

아버지 이야기#13 고기

2016년 1월 11일 닭과 돼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우리 아버지도 자주 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가족은 좀 먹어본 집안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에는 할머니, 아버지, 엄마, 누나 다섯, 나까지 9명이 살았다.

사진출처 : 네이버

동네에서 돼지를 잡으면 아버지는 뒷다리(엉덩이 부분을 포함한) 하나를 갖고 오셨고 이는 우리 집 한 끼 식사였다. 그때는 삼겹살보다는 로스구이라는 말을 썼는데 주로 프라이팬에서 구웠고 가끔은 스레트에서 굽기도 했다. 당시 어른들은 스레트에서 구우면 기름이 빠져서 맛난다고 하셨다.(발암물질이니 바람직하지 않음)

사진출처 : 네이버

가끔은 닭을 튀겨서 식사를 대신했는데 큰 닭 12마리를 해치운다. 그때 닭집은 살아있는 닭을 잡고 털을 뽑고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겨내는데 12마리의 닭을 준비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정말 행복한 기다림이었고 그 기다림의 끝은 먹방+결투이다.

1인 1 닭 이상의 풍요로움 속에서 맛난 부위 쟁탈 전이 벌어지는데 1순위는 닭똥집이다. 이 하트 모양의 튀김을 섭취하기 위해 한 마리씩 포장을 뜯을 때마다 매의 눈으로 탐색하였고 빠른 손놀림으로 확보해야만 했다. 주로 누나들의 완승이고 나는 엄마의 비호 속에 어쩌다 하나 정도 먹었다. 이렇게 치열하면 권모술수도 있는 법인데 이 부분은 주로 아버지가 담당했다. 닭은 껍질과 목이 맛있다는 말로 나를 현혹시키셨다. 그 결과 불혹의 나는 아직도 닭목을 매우 좋아한다.

사진출처 : 네이버

아버지는 고기 먹는 속도가 매우 느렸다. 왜냐하면 두꺼비를 같이 드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슬과 같이 먹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고기와 술을 드셨고 밥은 나중에 따로 드셨다. 그러면서 양반은 전주후반(前酒後飯) 이라고 하셨고 이에 덩달아 나와 누나들은 고기 먹은 뒤 밥을 먹었다.(전육후반:前肉後飯)


이렇게 우리들에게 고기를 먹일 때면 아버지의 눈은 포만감에 젖어있었다. 그 눈빛은 약간 누런빛으로 피곤해 보였으나 매우 행복한 느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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