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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이 Nov 29. 2016

아버지 이야기#12 걷기

2016년 11월 29일 걷는 것도 닮은 부자 이야기

우리 아버지는 걷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등산도 꽤나 많이 하셨는데 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동행은 내 나이 세살, 아버지 연세 47세에 한라산 등반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아버지가 나를 목마 태우고

백록담까지 걸어 올라가셨다고 한다.

백록담 사진 (출처:네이버)

내 기억에 7살때부터 매일 동네 뒷산을 올랐고 주말에는 격주로 서울근교의 산과 지방명산들을 올랐다. 하지만 국민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등산이라는 것은 별로...

그러나 제일 친한 사람인 아버지와 제일 친절한 사람인 어머니가 동행하기에 말 없이 따라나섰고 추가로 산속에서 밥을 해먹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 특히 돼지고기를 돌판에 구워먹으면 표현 불가능한 궁극의 맛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 우리 아버지
돌판구이 (출처:네이버)

렇게 건강하셨던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아버지 연세 56세),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그래도 아버지의 걷기는 멈춰지지 않았는데 그때도 아버지 옆에는 내가 있었다. 아버지는 쓰러지신 후 일어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셨고 일어나신 후에는 걷기위하여 그후에는 병을 완전히 이기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셨다. 이를 위하여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을 것(라면, 물, 냄비 등)을 짊어지고 아버지와 뒷산에 올랐다. 그곳에는 아버지 같이 아픈 분들 그리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올라오셨는데 함께 나무도 하고 불도  피우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국민학생 또는 중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세상사는 이야기였으나 듣다보면 재미났고 지금 내  생각의 틀의 절반 이상이 그때 만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항상 아버지 옆에서 걷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관악산 연주대 (동네뒷산 다음으로 많이 찾은 산)
관악산 입구의 개천 (30년 전에는 다른 모습이었는데)

 왜냐하면 나도 잘 살아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라는 것을 해야했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이후 꽤나 열심히 공부하면서 아버지와 걷기의 빈도가 줄어갔고 육사라는 곳에 입학하고 군생활을 하면서는 거의 같이 못 걸은 것 같다.

북한산(혼자 종주하면서 사진찍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와 마지막 걷기는 휴가받은 어느 봄날 강화도였다.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봄햇살과 사진도 찍었다. 휠체어에 탄 아버지와 그옆에 있는 어머니를 사진 찍는데 지난 세월에 너무 속상했고 같이 못 걸어드려서 너무 죄송했다. 감추고 참으려해도 결코 속일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그런 아들을 본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웃음은 사라지고 애처로움만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그것이라도 할 수 있는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난 시무룩한 그 사진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볼때마다 진실로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진실의 사진 (보면 눈물 쬐끔으로 내 마음을 씻어주는)

아버지는 올해초에 돌아가셨다. 이제는 같이 걷지 못 한다.

그런데 아내가 날 보고 이런 소리를 한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왜 그렇게 천천히 걷는지 몰랐어! 그런데 아버님 뵈었을 때 그 이유를 알았어!아버님 속도를 맞춰 걷더라고 걷는 폼도 똑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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