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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Aug 24. 2016

당신은 몇 가지나 해당되나요?

 _미신

며칠 전부터 속이 좀 안 좋다. 약간 어지럼증도 있고 왠지...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 듯하다.

혹시, 임신? 임신테스트기를 하기엔 너무 이르고. 인터넷에 ‘임신초기증상’을 검색해 봤다. 

1. 소화불량 ☑   

2. 피로감 ☑  

3. 잦은 소변 ☑  

4. 변비 ☑  

5. 하복부 통증 ☑ 


어? 다 해당되네? 진짜 임신? 아 그러고 보니, 그래서 그랬구나. 늘 미루다가 몇 년째 못 뺀 사랑니가 있다. 평소엔 잇몸 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어딘가 몸이 허할 때만 말썽이다. 그 잊고 있던 사랑니가 욱신욱신 통증이 시작된 거다. 다수의 증상을 통해 난 임신이라고 거의 확신하게 됐다. 마음이 그쪽으로 기우니 진통제도 먹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임신이 아닐 수도 있으니 진통제를 먹자고 권했지만 괜히 찝찝했다. 밤새 아파서 끙끙 앓았다. 


그날 밤 난 꿈을 꿨다. 어느 아름다운 바닷가 펜션에 도착한 난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방 안에 돌고래가 떡하니 누워있는 게 아닌가? 다른 방도, 또 다른 방도, 방문을 열 때마다 돌고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건 태몽이다! 어디 물어봐도 이거는 태몽이란다. 혈액검사가 가장 정확하다니까 병원에 다녀오자. 주삿바늘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내가 스스로 병원에 걸어 들어가 팔을 걷어붙였다. 결과는 내일 아침에 나온단다.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당뇨 자가진단’이란 걸 봤다. 괜히 궁금해서 클릭해봤다. 

1. 나른하고 피곤할 때가 많다. ☑

2. 소변을 자주보고 갈증이 난다. ☑

3. 쉽게 배가 고프고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

4. 체중이 늘었다. ☑

5. 밤에 다리가 저리고 쥐가 나는 느낌이 있다. ☑

6. 부모 중 당뇨환자가 있다. ☐

7. 외식할 때 채식보다는 육식을 선택한다. ☑

8. 신경질이 자주 난다. ☐


6번은 확실히 아니고, 8번에선 잠깐 망설였다. 나는 당뇨가 아닌데도 6가지나 해당됐다. 

희한하게 의학적 자가진단 표에서 난 뭔가를 떠올렸다. 혈액형별 성격이나 별자리 운세 같은 것 말이다. 

읽는 순간 ‘이건 나네~’ 라는 생각이 팍 오는 그런 거.

친구한테 6번 항목만 빼고 보내줘 봤다. 바로 답이 왔다. 

“이거 뭐야? 다 해당되는데. 나 무슨 병이냐?” 

아니. ‘넌 너무 건강한 대한민국 표준’이라고 말해주었다. 친구 말에 따르면 특히 3번, 4번, 7번은 두 번 체크할 만큼 딱 들어맞는단다. 말해 뭐해. 이 친구 별명은 ‘밥 마시는 귀신’이다. 


이쯤 되자 ‘비둘기 미신’이 생각났다. 비둘기에게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먹이를 준다. 어떤  비둘기는 날갯짓을 할 때, 또 어떤 비둘기는 고개를 까딱일 때 먹이가 떨어졌을 것이다. 먹이가 떨어지는 시간 간격은 정해져 있고, 비둘기의 특정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비둘기들은 이것이 먹이의 제공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즉, ‘아! 내가 지금 날개를 파닥거려서 먹이가 나왔구나.’ 하고 생각한 듯, 다음부터는 그 행동을 집중적으로 열심히 했다. 짜식들, 머리 좀 쓰네?

나 또한 비둘기처럼, 미신을 믿는다. 종교처럼 ‘믿는다’기 보단 즐기고 좋아한다. 며칠 전 친한 동생이 아기를 낳았다. 남편이 이름을 지어서 출생신고를 했다. 너무도 기다렸던 아이였기에, 남편이 신나서 구청에 날아갔다 왔나보다. 그런데 부모님이 작명소에 가져가 물어보니 웬걸. 그 이름은 일찍 죽을 이름이라는 거다. 이미 해버린 출생신고는 취소가 안돼서 개명을 해야 한다며 동생이 말했다. 

“언니, 이런 거 다 미신인데... 너무 유난떠는 거 같지?” 그 동생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괜히 찔렸나보다. 난 이렇게 말해줬다. 

“아니. 어차피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인데 이왕이면 좋은 게 좋지!” 

아이에 관해 깊은 상처가 있는 동생이었다. 작명소에서 이름 지은 것 정도는 하나님도 용서하실 거다. 다만, 남편 성이 ‘나’씨 이니, ‘훈아’ 말고는 다 좋을 것 같다고 말해줬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미신에 지배된 사람도 있긴 있다. 그는 살면서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내 사주가 그렇대’, 혹은 ‘이건 어차피 안 될 일이었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안타깝다. 이건 아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진짜 인간의 사주라는 게 정해져있다 해도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할 거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의사가 입을 떼기도 전에 말했다. “네, 알아요. 임신 아닌 거. 감사합니다.” 실은, 

병원에서 피를 뽑고 오자마자 생리가 시작됐다. 골치 아픈 사랑니나 확 뽑아버려야겠다. 그런데 문득... 

그럼 돌고래 꿈은 뭐지? 곧 남편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로또 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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