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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Aug 23. 2016

지금 문 앞에 봐봐

 _선물

‘지금 문 앞에 봐봐.’

메시지를 보고 급히 문을 열어보니, 그릇이 놓여있다. 정성스럽게 싼 김밥과 방금 삶은 옥수수.

그릇을 집어 들자 느껴지는 따끈따끈한 온기에 순간 울컥했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너무너무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내니 이렇게 답이 온다.

‘김밥은 내 맘대로 싼 거니 맛있게 먹어주면 고맙고, 옥수수는 삶은 것뿐~ 고마울 거 없어’


수고로움이 들어간 선물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물론 비싼 선물도 좋기야 하다. 그런데

‘수고’가 들어간 선물은 진짜, 뭔가가 있는 느낌이랄까.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가 부랴부랴 만들어서 싸주는 반찬들, 언니가 정성으로 만들어준 베개며 쿠션, 작은 파우치들을 볼 때마다 괜히 맘이 짠해진다. 친구나 이모가 그려준 그림은 볼 때마다 새롭다. 아기 먹이라고 직접 담은 피클이나, 한 끼 먹일 국을 담아서 챙겨주는 친구가 너무 정겹다. 꼭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보이는 것만이 선물도 아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해주는 ‘지금 갈게’라는 말, 접시에 한가득 뱉어놓은 자두씨를 말없이 비닐봉지에 꼭 싸서

버려주는 남편의 애정 어린 배려. 나의 결혼식 날 쑥스러움 무릅쓰고 축가를 불러준 수고로움. 심지어 그 중 2명은 주목받는 게 싫어서 대학 강의실에서도 늘 맨 뒤에서 세 번째 정도에 자리 잡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조용히 묻혀있고 싶어’라고 이야기하던 깜찍한 친구들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런 게 바로 ‘재능기부’구 싶다. 요리 솜씨를, 손재주를, 의리를, 배려를, 다름 아닌 나에게 기부해주어서. 정말 감사하다. 이렇게 기부를 많이 받다보니 나도 기부할 게 없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난, 그냥 돈을 주고 사는 선물에도 수고가 들어가야 함을 알았다.


“아오! 이런 것도 선물이라고 사왔냐!” 핸드폰 너머로 친구가 소리 소리를 질러댄다. 혼자 여행을 다녀온 남자친구가 사온 선물에 기가 차다는 반응이다. 그는 친구가 일에 지쳐 힘들어하는 시점에서 혼자 신나게 홍콩여행을 갔다. 가뜩이나 맘에 안 들어 하루에도 백번씩 헤어짐을 생각하는 남자친구다. “뭘 사왔는데?” 선물은 재료가 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썩은 촛대’라고 했다. 썩은 촛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선물은 친구의 화를 돋웠다. 난 “음, 네가 몰라서 그렇지 고가의 빈티지 제품일지 몰라”라고 말은 했지만. 인테리어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친구에게 썩은 나무로 만든 촛대라니.......

“무슨 저어기 네팔 같은데 가서 사왔다면 내가 이해가가. 홍콩에 사올 게 얼마나 많은데! 대체 홍콩의 어느 구석에서 이런 게 파냐?”

본인은 가보지도 못했고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네팔’에게 의문의 1패를 남기면서까지 열변을 토해낸다.

문제는 싸구려 선물을 사 와서가 아니라, 선물의 의도가 틀려서다. 진심이 느껴진다면 연필 한 자루에도 감동받을 친구다. 친구의 말마따나 그 ‘썩은 촛대’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산 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무얼 좋아할까, 고민하며 산 것이 아니라 아무거나 눈에 들어온 것을 집어온 것이 뻔하다. 결국 얼마 안 가

그 커플은 끝을 봤다.

오늘은 나도 따스한 온기가 한참동안 스밀, 그런 수고로운 선물을 준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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