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화 Aug 22. 2016

저, 몇 살로 보여요?

 _동안

늦은 오후, 집에 들른 할아버지의 표정이 우울하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게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 늙어 보여?”

응?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당황했다. 할아버지의 연세는 올해 89세. 할아버지는 ‘노인’이고,

老人은 풀이하면 늙은 사람. 심지어 영어로도 너무 솔직하게 old man.

그런 할아버지가 자신이 늙어 보이냐고 묻는 말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이럴 땐 의문형이 제일이다.

“왜요, 갑자기?”


발랄한 할아버지를 우울하게 한 사건이 터진 곳은 친구들 모임에서였다. 매일매일 만나 점심을 함께하는 친구들 모임에 오늘 ‘뉴 페이스’가 떴다. 낯도 안 가리고 말이 많더라는 그 할머니가 초면에 우리할아버지를 콕 집어 던진 말이 바로 “이 할아버지는 동안이시네~”란다. “할아버지! 그건 칭찬이에요.” 내가 말하자 할아버지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야. 그 뒤에 뭐라고 했는지 알어?”

할아버지가 ‘90’살 정도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단다. 내가 계산해 본 결과 친구모임의 평균 연령은 ‘90.6’세.

89세 우리할아버지가 막내다. 음, 기분은 나쁠 수 있지만 이렇게까지 우울할 일인가? 여든 아홉 살이나 아흔 살이나. 고작 한 살 차이인데. 할아버지가 가장 많이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도찐개찐’이랄까. 하지만 생각해보자. 간신히 20대의 끝을 잡고 있던 스물아홉 시절에 누가 나더러 “서른 정도로밖에 안 보여요~” 했다면....... 아!

잘못했네. “할아버지! 그 할머니 우리할아버지한테 큰 잘못했네!”


이제 내년이면 죽을 거라며 벌써 10년째 보청기 구입을 미루고 있는 할아버지도. 이왕이면 동안인 게 좋긴 좋은가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늙어 보인다는 말보다야 ‘참 동안이에요~’하는 말이 당연히 좋다.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고 싶어 열심히 운동하고 가꾸며 노력하는 모습. 외면이고 내면이고 간에 그냥 더 근사해보이고 싶은,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는 귀여운 심리 아닐까? 어제까지만 해도 얼굴에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를 중년여성을 보며 ‘외모 지상주의가 싫다!’ 피를 토하던 나였다. 그러나 꿀 생강차를 마시며 기분 전환을 시도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당신은 외모 지상주의자예요!”라며 비판하고 나설 순 없었다. 사실은

뜻밖에도 할아버지의 이런 모습이 더 멋져 보인 거다. 더 많이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이 안다고 믿는, 뻔한 어른이 아니어서. 그래서 89세의 멋진 남편, 웃긴 아빠, 귀여운 할아버지인데, 거기다 동안이고 싶은 욕망까지 갖춘 할아버지가 참 좋았다. 한창 인기였던 꽃 같은 할매, 할배들이 나오는 TV프로그램도 정작 할아버지는 안 봤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만 찾아본다.

그래. 살아온 세월이 선물한 그들의 중후함에는 젊은 사람들이 열광해 주는 걸로!

잘생긴 사람이 자기가 잘생긴 줄 모르면 더 매력적인 것처럼, 우리할아버지 나이듦의 매력이 터지는 오늘.

어제의 그 ‘성형人’ 아주머니도 젊어지고 싶은 그 마음만큼은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아니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자리가 있었다. 한참 대화를 하다가 호칭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 왔다. 오 제발.

그 아가씨는 돌연 귀여운 표정으로, 또 은근 기대에 찬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더니 천천히 말하는 것이었다. “저, 몇 살로 보여요?” 이 질문, 난처하다. 아가씨에게 할아버지가 느낀 실망을 안겨드릴 순 없지. “제가 그런 쪽으로는 좀 둔해서 잘 못 알아맞히는데...” 그러자 그 아가씨가 말했다. “서른둘이에요. 저 나이 많죠?” 나는 최대한 그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진짜 그렇게 안 보여요. 완전 동안이에요!”

이제 난, 어디서 동안이란 말을 듣더라도 절대 믿지 말아야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