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카이가 눈의 여왕에게 납치되어 사라져 버리다니..
마을 사람들은 슬퍼하며 다들 카이가 죽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믿을 수가 없어..
게르다는 깊은 슬픔에 잠겨 하염없이 울었어요.
사실 카이는 아름다운 눈의 여왕을 따라갔어요.
어느 날 눈과 심장에 작은 거울 조각이 박혀서 마음이 비뚤어진 카이가 서투른 어른 흉내를 내며 마을의 광장에서 썰매를 탈 때였어요.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 썰매에 놀이처럼 자신의 썰매를 묶고 따라가던 카이는 눈폭풍이 휘몰아치는 하늘 속으로 높이 딸려 올라갔어요. 바람처럼 빠르게 썰매를 몰던 사람이 뒤돌아 보았을 때 그가 여자였고 눈의 여왕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지난겨울 유리창 너머로 눈의 여왕을 처음 보았을 때, 커다란 눈꽃송이가 순식간에 커져서 젊은 여자가 되었는데 옷은 얇디얇은 하얀 비단 같았지만 사실은 별처럼 빛나는 눈송이 몇백만 개로 이루어져 있었지요.
온몸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얼음이었고 눈동자는 별처럼 환히 빛났지만 평화롭고 따스한 느낌은 없었죠.
여자가 창문 쪽을 보고 고개를 까닥이며 손짓을 했을 때 카이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고 말았거든요.
작은 썰매 안에서 겁에 질려있던 카이를 보고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 인사를 하는 눈의 여왕은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온몸이 새하얗게 빛이 났고 정말 아름다웠어요.
꽤 멀리까지 달려왔구나. 아니, 떨고 있잖니? 내 곰 털가죽 안으로 들어오렴.
눈의 여왕은 카이를 자기 썰매에 태워 털가죽을 덮어 주었어요.
카이는 눈의 여왕이 더없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였고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아직도 춥니?
그러고는 카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어요.
아, 차가워! 얼음보다 차가운 입맞춤이 반쯤 얼어붙은 카이의 심장에 곧바로 스며들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고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죠.
눈의 여왕이 카이에게 한 번 더 입을 맞추자 카이는 게르다 생각도 할머니와 가족 생각도 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이제는 입 맞추지 않을 거야. 한 번만 더 입을 맞추면 너는 죽어 버릴 테니까.
눈의 여왕은 카이를 데리고 높디높은 먹구름 속을 끝도 없이 날아서 라플란드 북쪽, 눈의 나라로 갔던 거예요.
게르다는 아껴 두었던 빨간 신발을 신고 카이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어요.
강을 건너고 눈폭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산을 넘어가는 무섭고도 험난한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게르다의 순수함에 감동받아 도움을 준 덕분에 마침내 눈의 여왕이 사는 눈 덮인 핀마르크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게르다는 몹시 지친 데다가 장갑과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지만 두려울 때마다 기도문을 외우며 용기를 내어 카이가 갇혀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갔어요.
눈의 여왕이 사는 성은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방이 백개도 넘었는데 제일 큰 방의 크기는 몇 킬로미터나 되었지요. 그 춥고 텅 빈 커다란 방에서 카이는 얼음장처럼 변한 모습으로 혼자 얼음 조각 퍼즐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게르다는 달려가 카이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어요.
카이! 그리운 카이! 아, 드디어 널 찾았어.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떨어져 심장으로 스며들자 얼음덩이를 녹이고 작은 거울 조각을 삼켜 버렸죠.
게르다의 음성을 들은 카이는 왈칵 눈물을 쏟았고 그러자 조그만 거울 조각도 함께 흘러나오는 순간 게르다를 알아보고 기쁨에 겨워 소리쳤어요.
아, 게르다! 사랑하는 게르다! 이렇게 너를 다시 보니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와.
게르다가 뺨에 입 맞추어 주자 카이의 뺨에 발그레한 빛이 감돌았고, 눈에 입 맞추자 생기가 돌았고, 손과 발에 입 맞추자 완전히 기운을 차리고 건강해졌어요.
두 사람이 끌어안고 행복해하는 동안에 함께 빙글빙글 춤을 추던 얼음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맞추어져서 글자로 나타났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얼음 조각들로 만들어진 '영원'이라는 낱말을 본 카이는 깜짝 놀라며 말했어요.
앗! 퍼즐이 맞춰졌어! 게르다!
퍼즐을 맞추면 눈의 여왕이 선물을 준다고 했던 바로 그 낱말이야!
언젠가 끝이 뾰족한 얼음 조각들을 이리저리 짜 맞추며 노는 카이에게 눈의 여왕이 말했지요.
만약 그 모양을 짜 맞출 수 있다면, 그때는 너를 자유롭게 놓아주겠다. 그리고 이 세상과 새 스케이트도 주마.
그러고는 따뜻한 남쪽 나라들을 한 바퀴 돌아보러 날아갔어요.
카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얼음 조각의 낱말과 게르다를 번갈아 보며 웃으며 말했어요.
눈의 여왕이 보면 깜짝 놀라겠지? 게르다 네가 와서 정말 다행이야. 나 혼자였으면 못했을 거야.
카이는 눈의 여왕에게 퍼즐을 맞춘 걸 자랑하고 싶었어요. 물론 게르다가 와서 가능한 일이었지만요.
그렇지만 게르다는 카이를 납치했던 눈의 여왕이 무서웠어요.
카이! 눈의 여왕이 오기 전에 우린 이 성을 나가야 해!
카이는 눈의 여왕이 자기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게르다에게 다 이야기했어요.
눈의 여왕은 카이가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상냥하게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의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거든요. 카이는 그런 눈의 여왕을 바라보며 이보다 더 지혜롭고 많이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여왕의 발치에서 잠이 들곤 했었지요.
그때 갑자기 폭풍 소리가 윙윙 나더니 하얀 눈꽃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눈의 여왕이 날아서 들어왔어요.
눈의 여왕은 카이와 게르다를 보고 또 반짝이는 얼음 조각의 낱말도 보았어요.
그러고는 넓은 계단 위에 뾰족한 얼음으로 장식한 여왕의 의자 위로 올라가 앉았어요.
카이가 여왕의 발치에 서서 게르다와 맞춰진 얼음 조각들에 대해 말하자 여왕은 상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게르다에게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물었어요.
게르다가 자기가 겪었던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 이야기하자 눈의 여왕은 순수한 마음과 용기를 칭찬하며 아직도 맨발로 서 있던 게르다를 무릎 위에 앉혔어요.
게르다는 더 이상 눈의 여왕이 무섭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몹시 아름답고 친절한 여왕이라고 생각했어요.
눈의 여왕이 말했어요.
자, 둘이 함께 퍼즐을 맞췄으니 약속했던 대로 자유와 새 스케이트를, 그리고 이 세상을 선물로 너희에게 주마.
카이와 게르다가 아직 어린 우리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자,
너의 마음 안에 있는 순수함과 용기를 믿으렴.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할 때가 오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알게 될 거야. 라고 여왕이 말했어요.
카이와 게르다는 눈의 여왕이 준 새 스케이트를 신고 할머니가 계신 집으로 돌아왔어요.
새 스케이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마치 하늘을 나는 듯이 씽씽 달려왔지요.
계절은 어느덧 아름다운 봄빛으로 변해 다락방 창문 아래에는 예쁜 장미꽃이 활짝 피었고, 두 사람은 예전처럼 자기 의자에 앉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웃었어요. 아래층에서 나지막한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하늘 저 높이 구름속에서 눈의 여왕이 썰매를 타고 또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었구요.
두 사람은 마음속에 순수함과 용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어른이 되어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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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을 주인공으로 하여 아름답고 신비한 매력을 강조하기 위해 게르다의 모험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게르다가 만난 눈의 여왕을 통해서, 진실은 들려오는 소문들과 상반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순수한 마음에 따라 행동할 용기가 있다면 나이와 경험과 무관하게 이 세상에 선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끝맺었습니다.
시공주니어의 안데르센 동화집을 참고하였고, 특히 눈의 여왕의 묘사는 원작의 아름다운 표현을 그대로 살려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