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순조로울 수만은 없는 법, 베이커 스트릿에 오고나서부터 어째 폰이 안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됐다 안됐다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먹통이 되어 패닉에 빠졌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종이 지도만을 가지고 여행을 했을 텐데 어떻게 한 걸까 새삼 옛날 사람들이 더 대단했구나 싶었다.
근데 어째보니 5g가 잡히고 난 다음부터 그런 것 같아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커피도 그다지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역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 시켜놓고 와이파이 연결하고 검색을 시작했다. 다행히 방법을 금방 알아내서 LTE에 연결하고 폰이 무사히 작동했다.
일이 해결되었으니 가뿐한 마음이겠다 이참에 쉬어가는 거지 라는 생각으로 커피도 마저 마시고 셜록홈스 기념품샵에서 산 키링도 한번 다시 보고 나름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한고비 넘으면 한고비라고, 배터리를 보니 꽤 많이 닳아있어서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하고자 하니 배터리는 있는데 충전케이블이 없었다.
그제야 알아챘는데 케이블을 딱 하나만 가지고 와서 전날 밤에 충전하느라고 숙소에 놓고 온 것이었다.
또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버티고 싶었으나 휴대전화로 구글맵 찾아야지 사진 찍어야지 메신저도 가끔 이용해야지 등등 용도가 너무 다양해서 줄어만 가는 배터리를 멈출 수 없었다.
케이블 뭐 얼마 안 하겠지 하나 사자라고 마음먹고 슈퍼마켓인 테스코로 나섰다.
그렇게 겨우 찾아간 테스코 익스프레스는 너무 규모가 작아서 느낌에 딱 봐도 없을 것 같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점원에게 물어봤는데 역시나 팔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
절망하려던 찰나 옆에 손님으로 온 어떤 분이 '레이먼'을 가라고 저쪽 방향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와 이게 웬 행운인가, 감사인사를 하고 일단 가게를 나섰다.
그렇게 한껏 들떠서 가게를 나섰는데 이게 웬걸? 왜 그 '레이먼'라는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살짝 당황할 무렵 제2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아까 테스코에서 가게 알려주신 분 말고 뒤쪽에 있던 분인데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심지어 나랑 가는 방향이 같았는지 뒤에서 걷다가 허둥대는 나를 발견하고 '레이먼'가는 거지? 저기로 가면 된다고 저기 보이네! 이렇게 알려 주시고 또 쿨하게 갈길 가셨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은 여행객을 흔쾌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건 오지랖보다 친절함과 따뜻함 아닐까 그리고 용기.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도와줄 수 있을까?
기회가 오면 언젠가는 나도 손을 내미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소소하면서 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는 게 여행인 거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고 그 두 분에게 너무 감사했다.
이제 휴대전화 관련 용무는 다 끝냈으니 다음 목적지인 피카딜리로 가보기로 했다.
이번엔 도보가 아닌 underground를 이용하기로 했다.
영국전철은 진짜 이용하기 편한데 그냥 목적지가 어떤 라인인지 확인하고 그 라인을 따라가면 된다.
타기 전 벽에 붙어있는 안내판을 보고 내릴 역에 맞는 방향만 잘 맞춰서 타면 된다.
목적지의 날씨는 어째 더 좋아졌다.
근데 어느 구역 가면 덥고 또 어느 구역 가면 추워지고... 날씨가 참 변덕이었다.
그래도 이번 유럽여행하면서 런던이 그나마 제일 포근했다.
해외 나가서 보는 한국 물건은 왜 이렇게 자랑스럽고 또 신기해 보이는지.
이번 런던에서는 LG 전광판을 크게 봤다.
명품 매장들이 즐비한 거리여서 그런지 건물도 참 고풍스러웠다.
엄마가 이번에 영국에 간다 하니 버버리 스카프를 원하는 듯했었는데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셨는지 갑자기 됐다고 마음을 바꾸셨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다가 내가 언제 영국을 또 오겠나, 그래도 생신선물겸 가지고 싶으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마침 눈앞에 매장이 보이길래 구경삼아 한번 들어가 봤다.
원래 쇼핑에 큰 관심이 없어서 구경도 열심히 안 하는지라 이번에 처음 버버리 매장에 들어와 봤다.
소호거리에 있는 버버리 본점으로 극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하여 그런지 매장이 규모가 꽤 크고 특히나 천장이 높았다.
직원들은 친절해서 입구에서부터 웃으며 맞아줬다. 괜히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나 보다.
스카프를 찾는다고 하니 안내받아 스카프 코너로 왔다.
수많은 종류의 스카프 중에 직원의 도움으로 나름 합리적인 가격대의 스카프를 찾아 구매했다.
처음으로 버버리 제품 구매하면서 졸지에 버버리 회원가입도 하고 재미난 경험이었다.
직원도 친절하게 응대해 줘서 좋은 후기를 남겨줬다.
Shaftesbury Memorial Fountation
공휴일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사람이 정말 많기는 했다. 나도 여행객이지만 세상이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영국에서 전화박스를 놓칠 수 없지! 특히 빨간색. 파란색이었으면 타디스 같았을까.
패딩턴 역에서 아쉽게 못 찾은 패딩턴은 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니 버스가 이렇게 귀여울 일인가.
그렇게 또 거리를 걷고 걸어 좀만 더 가면 런던아이가 보일 것 같아 일단 걸었다.
반대편에 보이는 런던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앞 쪽은 공사 중이라 시야를 가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으니 빅벤이 보였다.
원래 저 다리 건너 반대편에서 찍어야 정말 잘 나오는데 인파가 어마어마해서 그냥 걷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다리에서는 지난번에 찍었고 이런 정면에서 보는 빅벤도 만족스러워서 여기까지 하고 일단 뭐 좀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교통, 관광지는 미리 철저하게 조사하는 편인데 음식은 그냥 되는대로 먹는 편이라 여기서도 막상 찾으려니 눈에 잘 안 들어왔다. 그나마 한 군데 봐 놓은 곳은 이미 만석이라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지쳐서 터덜터덜 걷는데 어느 식당에서 모객을 하고 있었다.
피자 한판하면 한판을 더 준다는 홍보였는데 누가 봐도 혼자였다.
나 다 못 먹을 것 같은데라고 지나치려다가 그나마 자리가 있다면 이제 체력의 한계라 좀 앉고 싶었다.
뭐라도 있겠지 하고 일단 입장을 했다.
그리하여 늦은 점심으로 샐러드랑 맥주를 먹었다.
샐러드는 은근 푸짐하고 맛있었고 맥주는 피곤하니까 한잔해줬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타워브리지! 꼭 가보고 싶었다. 저 멀리서 보였다.
실제로 마주하니 진짜 웅장했다. 1894년에 완성되었다는데 역사가 긴데도 불구하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야경도 유명한 듯 하지만 야경까지는 너무 시간이 남아서 이렇게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빼곡한 인파에 휩쓸리듯 걸어 다리를 통과했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가볼까 싶었던 곳은 어지간히 다 가봤는데 아직 해는 중천이고 날도 이렇게 좋아 미련이 좀 남았다.
하지만 이제 여행 시작이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그냥 주변만 살짝 둘러보고 숙소 근처로 돌아가기로 했다.
전철 타고 다시 노팅힐 근처로 행했다.
숙소 근처로 가니 좀 안심이 돼서 그런가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아직 너무 밝은데.
쉬고는 싶어도 아직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Caffee Nero에 잠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카페 네로는 아일랜드에서 지낼 때도 만만하게 가던 카페인데 아마 유럽 전역에 있나 보다.
일찍 닫는 로컬 카페랑은 다르게 꽤 늦게 닫기도 한다(지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물어봐야 하지만)
잉글리시 브랙퍼스트티 한잔 시키고 오늘 뭐 했나 정리했다.
나름 많이 한 것 같으면서 별거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카페에서 쉬엄쉬엄 정리하고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정리하고 숙소로 복귀했다.
그날 저녁 다리가 너무 욱신대고 얼얼해서 오늘 몇 걸음 걸었나 확인해 보니 25,000보를 걸었다.
평소에 만보 정도는 일상적으로 걷는데 이만 보를 넘어가니 이건 좀 힘들었나 보다.
나답지는 않지만 일찌감치 씻고 다음 여정을 위해 휴식을 취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 런던을 떠올려도 활기차고 고풍스럽고 또 친절한, 기분 좋은 도시였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사실 제일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런던이기도 하다. 풍부한 문화생활과 볼거리 무엇보다 영어권 국가고 스위트한 경험들까지... 다시 가고 싶어 진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 동기부여가 되는 거니까.
어쨌든 주어진 시간에 나는 최선으로 런던을 여행했고 2023 유럽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 런던, 굉장히 만족스럽고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