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즈 큐레이션 (19)
1년 전 커리어리 코멘트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 중 하나인 <뮬란>의 개봉일이 3월로 확정되었다. 1998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뮬란'을 22년 만에 실사영화로 선보이는 것.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디즈니가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실사영화'가 디즈니가 보유한 수많은 지적재산권(IP)의 활용 가능성을 입증하며 주요 성장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뮬란'처럼 여성 감독이 만드는 여성 히어로물이 더 많이 등장하는 2020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① 2020년은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의 중간기점?
디즈니는 2014년 이후 꾸준히 자사의 애니메이션 명작들을 리메이크한 실사 영화를 만들어왔다. 나열하자면 말레피센트 (2014) - 신데렐라 (2015) - 정글북 (2016) - 미녀와 야수 (2017) - 곰돌이 푸 (2018) 순이다. 2019년에는 덤보, 알라딘, 라이온 킹 세 작품을 잇달아 개봉하며 완전히 이 프로젝트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켰고, 올해는 유역비 주연의 '뮬란', 내년에는 101마리 달마시안의 스핀오프인 엠마 스톤 주연의 '크루엘라'가 확정되어 있다.
매년 놀라움을 안겨주는 디즈니지만, 뮬란 후에도 아직 남아있는 지적재산권이 어마어마하다. 50여 편에 달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백설공주', '피노키오', '밤비', '인어공주' 같은 캐릭터들이 아직 창고에 잠자며 출격 시점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디즈니의 저력이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가장 최근에 개봉한 58번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성공을 통해 콘텐츠의 힘을 보여준 디즈니가 스트리밍의 시대에 어떻게 실사화 프로젝트 등을 활용해 미디어 왕국을 수성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겨울왕국 실사는 언제쯤?)
② 디즈니가 보여줄 새 여성 히어로 상은?
뮬란의 주인공인 화목란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기 중 북위 효문제 시대(471-499)의 인물로 추정되는 여성이다. 실존인물이 아닌 <목란사>라는 짧은 시의 주인공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춘향'이나 '심청' 같은 문학작품 속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완전히 허구의 인물로 보기보다는 <홍길동전>의 홍길동처럼 그 당시 시대상 속에서 모델이 된 사람이 존재하고 그를 바탕으로 작품이 지어졌을 것이라는 학계의 일반적인 추정이다. (북위 왕조는 북방 유목민족 중 하나인 선비족이 세운 왕조이고, 유목민 세계에서는 농경민족에서보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 정치 권력자나 전쟁을 이끄는 여성 지도자들도 종종 나왔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디즈니가 콘텐츠로 한 번 재탄생시킨 '목란'을 2020년으로 다시 소환해낼 사람이 뉴질랜드 출신 여성인 니키 카로 감독과 중국 출신 배우 유역비라는 사실 역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원더우먼>, <블랙위도우> 등 여성 감독과 배우가 만나 빚어내는 여성 영웅의 모습을 다양한 형태로 만나게 될 2020년, 디즈니가 ‘뮬란’을 통해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 제시할 인물상은 과연 어떻게 다를지?
'겨울왕국'에서도 이미 보여준 바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게 콘텐츠를 가공하는 디즈니 특유의 내공이 잘 발현된다면 원작을 넘는 작품도 조심스레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용한 기사
원더우먼, 뮬란, 할리퀸까지...2020 할리우드는 '여인천하'
(조선일보, 2019년 12월 30일)
2021년 3월 새롭게 드는 생각들
지난해 3월 개봉 예정이었던 뮬란은 코로나19 여파로 결국 반년 후에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9월 개봉 역시 극장을 통해서가 아닌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를 통한 방식이었다. 극장가에는 악재였지만, 디즈니에게 있어서 <뮬란>의 개봉 연기는 결과적으로 그리 나쁜 상황만은 아닌 결과로 이어졌다.
<뮬란>은 실사영화 자체보다는 디즈니의 OTT 확장을 위한 좋은 테스트베드가 되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2019년 말 디즈니플러스가 론칭한 직후 디즈니는 자사의 핵심 IP를 활용한 독점 콘텐츠를 공급, 잠재 고객들을 극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유인해낼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케이스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에서 고객들이 독점 개봉작인 <뮬란>을 보고 싶을 경우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형태로 가격정책을 짰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뮬란>은 코로나19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스트리밍 콘텐츠 중 하나가 되었고, 가입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의 디즈니플러스에 고객들을 유인하는 미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디즈니플러스 구독자의 약 30%가 <뮬란>을 시청했다.)
과거 영화 유통의 중간 단계에 존재했던 유통사와 극장을 거치지 않고 디즈니가 OTT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직거래 방식(D2C, Direct to Consumer)의 가치사슬이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 의구심이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디즈니는 <뮬란> 정도의 콘텐츠라면 장기적으로 극장 상영을 통한 매출을 대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백신 접종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코로나19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극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점차 비관적인 의견이 우세해지고 있다. 물론 이 역시 1년 후에는 또 오판이었음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십여 년간 내려온 극장 개봉 후 VOD 등 2차 판권 시장으로 넘어가는 모델에 OTT 산업이 새로운 콘텐츠 유통구조를 제시한 것만은 틀림없다.
어느새 줌 미팅이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해진 것처럼, 영화를 보는 방식 역시 팬데믹 이후에도 과거와 같은 형태로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번 바뀐 습관을 다시 고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참고하면 좋을 후속기사
디즈니의 <뮬란> OTT 직행, 영화 개봉 시스템 바꿀까?
(영화진흥위원회, 2020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