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즈 큐레이션 (20)
1년 전 커리어리 코멘트
한 집에 옷이 몇 벌쯤 있을까? 1인당 100벌? 200벌? 500벌? 1,000벌?
1972년 주택건설 촉진법 제정 이래 대략적인 집 크기가 국민주택규모(전용면적 85㎡, 약 25.7평) 전후로 맞춰져 있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의류가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결코 적지 않다. 가구 구성원의 수가 많을수록 옷장에서 잠자는 옷들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사계절이 고루 존재하는 기후 특성상 다양한 옷들을 구비해야 한다. 예컨대 계절별로 입는 옷이 정해져 있다면 약 4분의 3, 봄가을에 같은 옷을 입는다고 가정해도 3분의 2 가량의 옷은 늘 옷장 안에서 잠자고 있는 셈.
그런 측면에서 의류 공유 플랫폼 사업은 '옷장에 입을 옷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에게 '대여'라는 개념을 통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줄뿐더러, 의류라는 자원의 사용률을 높임으로써 환경에도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기대해볼 수 있다. 가뜩이나 주거비용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 뼘이나마 공간이 늘어나는 효과는 덤이다.
그러나 아이디어 자체와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 유사한 개념으로 출발했던 SK플래닛의 의류 렌털 서비스 '프로젝트앤'은 2016년 출시 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윙클로젯, 원투웨어 등 다른 경쟁 스타트업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차례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기사에서 자세히 다뤄지진 않았으나 '클로젯셰어'도 설립 이후 지난 4년간 사업을 안정화하는데 꽤나 지난한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개인 간 의류 공유 플랫폼' 형태로 사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전환하며 지난 9월 44억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한 클로젯셰어가 해당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며 꾸준히 성장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래도록 생존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인용한 기사
"당신의 옷장을 공유하라"… 잠자는 옷으로 수익 내고, 환경 보호하고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2020년 1월 14일)
2021년 3월 새롭게 드는 생각들
모든 것을 구독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구독 담론이 간과하는 것은 인간의 소유욕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소유냐 존재냐>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인간이 가지는 소장 욕구는 재화와 서비스를 온전히 사용가치로만 환원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공유경제를 촉발시킨 것은 개인이 소유하는 가장 큰 자산인 집과 자동차였지만, 수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해당 영역에서 드라마틱하게 소유 개념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팬데믹에 의한 양적완화와 화폐가치 하락으로 오히려 더 증가한 것 같기도 하다. 강남 아파트는 오늘이 제일 싸다니 ㅠㅠ)
개인이 가진 자산들 중 가장 파편화되어 있지만, 가치의 총합으로 본다면 의식주 중 의, 즉 옷이 아닐까. 식, 음식물도 냉장고 속에 저장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상품화 가능한 자산으로까지 가기에는 거쳐야 할 단계가 좀 더 많다. 결국 옷장 속에 파킹되어 있는 옷들이 다음 타깃인데, 이 영역을 노리고 들어온 플레이어들이 생각보다 시장이 커지지 않고 있어 애를 먹는 것 같은 느낌.
오히려 이 시장을 바탕으로 쑥쑥 성장하는 건 당근마켓. 의류 렌털보다는 중고거래가 옷이라는 상품의 성격에 더 맞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현대차가 구독형 상품을 출시하고 시장 반응을 보는 것처럼, 랄프로렌 등 의류 메이커들도 점차 구독 모델로의 전환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10여 년 후에는 막 사서 입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일정기간 구독해 입고 돌려주는 어중간한 중간 브랜드, 소유욕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명품 브랜드 형태로 재편되지 않을지.
뭐야, 그 옛날 동네 세탁소가 하던 모델이잖아!
참고하면 좋을 후속기사
美 랄프로렌, 구독형서비스로 '패션계 공유경제' 앞장설까
(비즈트리뷴, 2021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