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민 Mar 14. 2019

미래의 미라이, 과거와 소통하는 법

4. 네 할아버지는 말야

사람을 떠나보내면 수수께끼만 늘어간다. 알 길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에 끝없이 생겨나는데, 속 시원히 답해줄 사람은 정작 곁에 없다.


얼마 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미래의 미라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소개를 찾아보니 장르가 판타지다. 아무래도 장르 구분이 잘못된 것 같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신혼이거나 결혼을 앞둔 싱글들을 대상으로 한 극사실주의, 즉 하이퍼 리얼리즘을 차용한 호러에 가깝다. 특히 '남들은 몰라도 나는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는 남자들에게는.



아이 둘 키우기를 소재로 한 리얼 다큐 호러는 중반부를 지나서야 비로소 판타지로 탈바꿈한다. 끝까지 보고 나서는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지라, 스포 방지를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련다. 다만 한 가지, 자전거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땐 꽤나 울컥했다. 아, 이건 너무 비슷하잖아.



스무 살 가깝도록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둘이서 교양수업 과제를 핑계로 강화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전날 비로소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먼저 친구에게 가자고 호기롭게 툭 던져놓고는, 혼자 여의도 공원에 나가 몇 시간을 구르고 넘어지고 고군분투한 끝에 겨우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체득했다.


그전까지 자전거는 남이 태워주는 탈것이었다. 아주 어릴 땐 할아버지 앞에, 조금 커서는 뒷안장에 탄 채 시골길을 내달렸다. 할아버지는 츤데레 같은 표정으로 "네 아비가 어렸을 때도 똑같은 자리에 태우고 똑같은 동요를 불러줬다"라고 하셨다. 


뉘엿뉘엿 저무는 해질녘 노을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할아버지가 불러주던, “선생님~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는 동요 한 가락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 장면이 <미래의 미라이>와 다른 점이라면 우리 할아버지는 다행히 태평양전쟁 당시 참전 군인이 되기엔 살짝 어렸던 재일교포 소년이었다는 것뿐.


엉, 그런데 아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가 타는 자전거를 얻어 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던 중 깨달았다. 심지어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조차 전혀 기억에 없다. 아버지는 과연 자전거를 탈 줄 알았을까?


돌이켜보면 당시는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댁이 있었던 한적한 시골 읍내는 자전거가 최적의 교통수단이었겠지만, 어릴 적 우리 집은 꽤나 통행량이 많던 역 앞이었다. 그 동네에서 어른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은 퍽 낯선 풍경이었다. 그래도 교외로 이사한 다음 동네 시장에 좋아하는 소주랑 삼겹살 사러 나갈 땐 자전거를 타고 갈 만했을 텐데... 답은 알 길이 없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하등 영향을 미칠 길 없는 사소한 수수께끼는 결국 영구 미제로 남는다. 생전에 내 눈으로 똑똑히 보지 못했으므로, 진실은 영원히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이든 수수께끼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그저 아쉬움의 또 다른 표현일 뿐.


아쉬움만 삼키고 있던 내게 <미래의 미라이>는 작은 조언 한 가지를 전해준다.


과거와 소통하고 싶다면
 지금 현재를 보라고.


영화는 판타지의 힘을 빌려 아이의 눈으로 보는 부모와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매일 밤늦게 들어와 영 낯설기만 한 아빠가 되어가는 내게, 지금보다 삶의 방향을 좀 더 아이들에게 맞출 것을 슬며시 제안한다. 아버지가 그리운 시간만큼 아이들과 눈을 맞춰보라면서. 


지난 주말 수현이가 할머니로부터 자전거를 선물받았다. 한껏 신이 난 아이는 공원에서 네 발 자전거를 타느라 여념이 없고, 오빠가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것을 마냥 부럽게 바라보던 둘째는 오빠가 자전거에서 내려오자마자 냉큼 안장에 올라탄다.



우연 같은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인생이 되고, 역사가 된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잘 탔는지 못 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과거가 궁금한 만큼이나 아이들의 미래도 궁금하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얼마나 자전거 혹은 또 다른 것들과 함께 울고 웃을지 모르겠지만, 그 곁에서 가능한 오래도록 머물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빠는 이랬어'라는 기억을 하나라도 더 많이 남겨주고 싶다.


평일에는 잠들 때까지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둘째의 찡그린 얼굴을 아침 출근길에 그만 봐야겠다. 아무래도 야근을 좀 줄여야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