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민 Jun 10. 2022

우리는 보물들과 이별하며 커간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3) | 장난감들도 슬퍼하진 않을 것이다

썬데이파더스클럽 다른 멤버들과 함께 GQ 5월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잡지 기고는 처음이어서, 첫 장난감을 받아들 때마냥 원고 의뢰를 받을 때의 살짝 설레던 그 마음이 꽤 오래 기억될 듯 하다.

뉴스레터 상으로는 5월 8일, 어버이날에 발송되었다. 지나고 보니 이 또한 공교로운 일이다.




열 살 무렵 책상 맨 아래 고이 간직하던 과일 상자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느 명절날 제 소임을 다하고 사라질 운명이었던 그 노란색 상자는 아버지의 신들린 테이핑을 거쳐 몇 해는 두고 써도 될 법한, 튼튼한 나만의 수납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그 상자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보물창고였다. 동그란 딱지와 구슬, 당시 최고 인기였던 골라이온 로봇 장난감과 레고 기사단 피규어, 그리고 자잘한 프라모델 장난감들이 들어 있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모았던 보물들이었던지라 꺼내 놀다 집어넣을 때가 되면 부서질세라 조심조심 차곡차곡 정돈해 넣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영화 <토이 스토리 3>를 보러 갔을 때, 그 과일 상자가 퍼뜩 떠올랐다. 대학생이 된 앤디가 상자 속에 간직해 온 장난감들을 보니에게 물려주는 장면을 보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상자 속 보물들이 생각났다. 행여나 고장 날까 애지중지하며 갖고 놀던 감정이 여전히 생생한데, 정작 그 상자와 어떻게 이별을 고했는지는 깨끗하게 백지로 남아 있었다. 영화 속 앤디처럼 쿨한 모습으로 다른 아이에게 전해주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릴 수가 있지?’ 영화관을 나서며 나 자신을 잠시나마 책망했던 기억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정신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 방은 갓난아이 시절부터 모아온 장난감으로 점차 뒤덮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주말, 더 이상 내버려뒀다가는 발 디딜 공간조차 없겠다 싶어 장난감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하나씩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극렬히 저항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날렸다.


“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들은 다 나눠주거나 버려야 해.”
“응? 그래.”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애면글면 모아뒀던 장난감들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준다는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순순히 응하다니, 내가 잘못 들었나? 처음엔 못 사서 그렇게 안달했으면서? 잘 때도 늘 꼭 껴안고 자던 인형들도 있는데? 몇 번을 재차 물어도 아이들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처분해도 좋다고 승낙한 장난감들을 쓸어 담으니 큰 자루로 몇 포대가 나왔다. 10여 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장난감들을 그렇게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줄 것, 재활용 센터로 보낼 것, 분리수거함에 넣어 버릴 것으로 따로따로 정리했다. 여전히 티는 별로 안 나지만 그래도 느낌상 조금은 널찍해진 것 같은 아이들 방을 쓸고 닦다 보니, 그제야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빠인 나는 매일같이 부대끼느라 잘 몰랐지만, 이 녀석들, 어느새 한 뼘 자랐다. 예전에는 죽고 못살던 장난감 친구들과 이제는 제법 쿨하게 이별 인사를 나눠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인생의 다음 단계를 향해 조금씩,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다.


그제야 어릴 적 소중히 간직했던 그 과일 상자가 다시 떠올랐다. 한때 애정하던 장난감과의 이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커가는 과정에서 겪는 인생의 통과의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 나는 오랫동안 묵혀왔던 내 보물들에 대한 마음속 미안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장난감들도 슬퍼하진 않을 것이다. 로보카 폴리는 함께 놀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들을 도와야 함을 가르쳐줬고, 슈퍼윙스 호기는 대한민국 말고도 이 세상엔 수많은 나라가 있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멋진 장난감 친구들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데 도움을 줬기에 아이들은 함께 노는 동안 한껏 즐겁고 행복했으며, 그 덕택에 한 발 더 세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장난감들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하고도 남았다. 비록 아이들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함께 빛내준 장난감들과의 이별을 또렷이 기억하진 못한다 해도, 장난감들도 더 이상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 너희들, 그래도 그동안 잘 놀아준 장난감 친구들에게 고마웠다고, 잘 가라고 인사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이별의 순간, 아니 인생의 통과의례를 먼저 겪은 아빠로서, 적어도 나중에 아이들이 이 순간을 조금은 더 생생하게 기억하길 바라며 한마디 거들었다. 아이들은 짐짓 부끄러운 듯 쭈뼛쭈뼛 걸어 나와 제 장난감들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멋지게 이별해놓고 설마 이번 어린이날에 새 장난감 또 사달라 하진 않겠지?’ 생활인 아빠로서의 소심한 바람이 가슴 속에서 올라오지만, 들킬까 지그시 눌러본다. 아이들보다 못난 아빠가 되진 말자며.
그간 아이들의 동반자로서 훌륭히 제 몫을 다해 준 장난감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상상력을 한껏 고양시켜줬던 그 시절 내 장난감들에게도 이제서나마 경의를 표한다.


배정민(<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 저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GQ, 2022년 5월호)


이전글



썬데이 파더스 클럽 구독 링크


*Photo by Chris Hardy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의 미라이, 과거와 소통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