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누이들
작은애가 큰애를 또 못살게 군다. 같이 놀고 싶은 건데, 오빠가 제 맘을 몰라주는 거다. 안 놀아주고 혼자 제 할 것 하는 오빠에게 심술이 난 동생은 장난감이든 뭐든 흐트러뜨리고, 몸을 쿡쿡 찔러대기 일쑤다. 그러다 투닥투닥 투다닥... 그렇게 싸우며 크는 중이다.
"없으면 이상한가 봐. 태어날 때부터 오빠가 있어서 그런가."
오빠 없이 혼자 있는 것을 못 견뎌하는 둘째에 대한 아내의 평이다.
막내 삼촌 회갑이니 와서 밥 한 술 뜨고 가라 기별이 왔다. 삼촌이 벌써 예순이구나.
삼촌댁에 가서 친척들 얼굴을 마주 본다. 다들 나이가 꽤 드셨다. 임영웅과 영탁과 이찬원의 흐드러진 노랫가락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눈빛들을 보며 여전히 청춘이시구나 하고 있는데, 누군가 한 마디를 보탠다.
"... 큰오빠 생각나."
"... 나도 그래."
"... 나도."
아버지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팬들은 여전히 그의 노래를 잊지 못한다. 삼촌들은, 고모들은 요즈음 명멸하는 수많은 트로트 프로그램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는가.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형제자매 많은 것이 이런 축복을 가져다 줄 줄은 아마 미처 모르셨을 거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흘러간다. 언제 뭘 같이 먹었다는 둥, 그게 아니고 사실은 이랬다는 둥... 나로서는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다. 아들도 미처 모르는 그의 삶 이야기들. 그래, 생각해보면 자식이 부모에 대해 뭘 얼마나 많이 알겠는가 말이다. 삶에서 가장 푸릇했던 시절은 그저 내가 태어나기 전 일어난 먼 과거일 뿐인데.
아버지는 둘째였다. 누나가 있다. 동생들도 잘 챙겼지만 손위 누이에게 특히 살가운 동생이었다 한다. 당신들 이야기에 의하면 어릴 때 특히 그랬다고. 생전을 떠올려보면 어릴 적에도 그러셨을 법 하다. 장남으로서 가족모임에서는 다소 무게를 잡는 기색이 있었지만, 큰고모에게는 가끔씩이나마 어리광에 가까운 모습도 보이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항상 옆에 있었던 존재라서였을까.
한강의 소설 <흰>은 태어나자마자 흰 강보에 싸인 채 세상을 떠난 아기 이야기를 한다. 한강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자, 에세이다. 여백 많은 소설을 찬찬히 읽다 떠올랐다. 그래... 아버지에게도 하나가 아니었다. 한 분 더 있다. 지금 고모 말고, 큰누이가 한 분 더.
돌이 안되어 세상을 떴다던가.
가끔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지금 네 큰고모 말고 한 분이 더 계셨다고.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이름은 불러본 적 없지만, 그러니까 우리 형제는 오 남매가 아니라 육 남매라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생전엔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먼저 떠난 첫 아이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을 두 분을 다시 떠올리다 차마 더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가. 유난히 누나를 잘 따르는 아버지인데, 누나가 둘이다. 하늘에 가니 큰누이가 있다. 상봉은 잘 하셨으려나. 여기에서처럼 누나 말이라면 껌뻑 하고 계시려나.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떼쓰고 하는 동생은 아니셨으면 좋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무심코 카톡을 보니, '생일인 친구' 자리에 큰고모 이름이 있다. 뭐야 이거? 아빠, 설마 지켜보고 계신 거예요? 소스라치다라는 동사는 이럴 때 쓰는 건가보다.
그러니까, 생전 처음 조카가 큰고모에게 선물한 생일 케이크는 실은 아버지가 보낸 것과 다름없겠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외롭지 않았고, 외롭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