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홀로 서는 그날까지

늑대아이

by 작중화자


한 아이가 장미를 건넨다. 뒤따르던 더 작은 아이는 두 송이를 건넨다. 장미를 받아 든 엄마의 얼굴은 순간, 꽃처럼 만개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두 팔을 벌린 엄마의 품으로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조막만 한 손으로 건네진 마음이 어여뻐 하마터면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승객들이 빠져나간 기내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과 가족의 훈기로 데워졌다. 명절에 방영하는 가족영화의 엔딩 같았다.


출산을 현실적으로 고민하게 된 나이에 접어든 내게, 엄마가 된다는 상상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비행기에서 만난 엄마와 아이들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았다면, 귀국과 함께 진행한 난자동결은 엄마로서의 삶과 역할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육아의 최종 목적은 자립’ 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아이>(2012)다.




늑대인간과의 짧은 사랑 뒤에 남은 건, 유키(雪)와 아메(雨).

평범한 대학생인 하나는 이제 조금은 특별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인간과 늑대,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평범한 육아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시도 때도 없이 귀와 꼬리가 튀어나오고, 흥분하면 하울링이 터져 나온다.

네 발로 뛰는 아이들을 위해 산책은 인적이 없는 새벽에만 하고, 정기검진과 예방접종은 포기해야 했다. 아픈 유키를 안은 채 소아과와 동물병원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습은 하나가 직면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아이들을 숨길수록 오히려 그 눈은 더 날카로워진다. 집주인은 애완동물을 키우지 말라며 호통을 치고, 아동보호기관은 방임과 학대를 의심하며 문을 두드린다.


결국 하나가 택한 것은 고립이다.

오로지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 대부분을 내려놓은 결단이었다.




시골로 내려간 하나가 뛰어든 농사는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작물을 키우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건강한 생육을 위해 토양을 다지고, 틈틈이 비료를 주며 애를 써도 병충해에 시들고, 쓰러지기 일쑤다.

하나가 실수를 거듭하며 농사를 배우는 과정은 아이를 키우는 일과 닮아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아이들은 부모의 바람대로만 자라지는 않는다.


작품은 농사를 지으며 기뻐하고 좌절하는 하나를 통해 육아란 통제가 아닌 인내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계절이 바뀌며 밭의 풍경이 달라지듯, 유키와 아메도 각자의 속도로 자라난다.

유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동안, 아메는 자연과 숲에 몸을 맡기며 야생늑대로서의 삶에 가까워진다.


같은 토양에서 자랐지만, 아이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부모의 역할은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는 일이다.


엄마가 만들어준 원피스가
내 어린 시절을 지켜 준거죠.

내가 좋아하는 장면 속 유키의 한 마디에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반짝이는 액세서리보다 도마뱀과 개구리를 좋아하는 자신이 또래의 소녀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키. 그렇게 풀이 죽은 어린 딸을 위해 하나가 만든 파란색 원피스는, 유키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순간에 건네는 엄마의 든든한 지지이자 격려다.




인간 할래, 늑대 할래?

늑대의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하나는 물었다.

<늑대아이>가 주는 울림은 결국 이 대목에 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선택을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유키는 아빠 늑대가 그랬던 것처럼 귀와 꼬리를 숨기고 사람들 틈으로 걸어간다.

반면 아메는 숲으로 향한다. 그는 늑대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연 속에서 살기를 택했다. 그리고 아메의 뒤를 쫓아 숲으로 향한 하나가 마주한 것은 혼자 설 준비를 마친 아들이었다.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는데’라며 자신의 부족함만을 탓하는 하나에게 아메는 어엿한 늑대의 모습으로 증명한다. 자신의 성장은 하나의 희생과 보살핌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비가 그친 하늘에서는 이제 환한 빛줄기가 떨어진다. 완전한 자립의 순간이다.




<늑대아이>는 가족의 연대와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다룬 전작 <썸머워즈>(2009)에서, 육아에 초점을 둔 <괴물의 아이>(2015), <미래의 미라이>(2018)로 이어지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가족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늑대아이>를 처음 봤던 20대 때는 인간과 늑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아이들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언젠가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앞에서 작품을 다시 본 지금, 나의 시선은 엄마인 하나에게 머물렀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늑대아이>를 통해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늑대 두 마리가 온 집안을 헤집고 다녀도 언성 한 번 높이지 않는 하나의 모습은 다소 현실감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모성이 얼마나 외롭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무력한 지 섬세하게 담아낸다. 울고 싶을 때조차 웃으며 견디는 하나의 강인함은 안쓰러우면서도 경이롭다.


그리고 긴 인내의 끝에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과정은 ‘부모 됨’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하나와 함께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 역시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아이를 지키는 일보다, 놓아주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또한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란, 혼자 설 수 있도록 곁에서 물러나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