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아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

하이바네 연맹

by 작중화자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누군가 위로해 준다 한들, 나의 슬픔은 오로지 나의 것이지 그 사람의 것이 될 수 없다. 내 걱정과 불안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구원할 사람은 결국 나뿐이다.

이것은 내 알량한 자존심의 발로이거나 타인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하지만, 마치 그런 나를 책망하기라도 하듯이 누군가는 손을 내밀고, 산산이 조각날 것 같은 나는 저항 없이 그 손을 잡게 될 때가 있다.


<하이바네 연맹>(2002)은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고 발버둥 치는 이들을 위한,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커다란 구형의 고치가 방 한가운데 자라 있다. 이윽고 고치에 균열이 생기며 양수가 터져 나온다. 라카(落下)는 그렇게 태어났다. 다 큰 소녀의 모습으로.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한 구석, 올드홈에는 ‘하이바네(잿빛깃털)’라고 불리는 신비한 존재들이 모여 산다. 등에는 작은 날개가, 머리 위에는 빛고리가 있는 그들은 고치 안에서 꾼 꿈을 이름으로 부여받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산다.

이제 막 태어난 라카는 레키(礫), 쿠우(空), 네무(眠), 카나(河魚), 히카리(光)의 도움을 받아 하이바네로서 마을에 적응해 간다.


이 방벽의 마을이 어떤 곳인지, 인간도 신도 아닌 하이바네의 정체는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추측건대, 불의의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환생 또는 해탈을 위해 잠시 머물며 전생의 업을 해소하는 세계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세계관의 단서는 하이바네의 ‘홀로서기’를 통해 드러난다.


짧은 인사만 남긴 채 올드홈을 나선 쿠우는 서쪽 숲, 장벽 근처에서 빛이 되어 사라진다. 성숙한 하이바네가 벽을 넘는 ‘홀로서기’를 한 것이다.


불교에서 서쪽은 아미타의 극락정토가 있는 곳으로, 수행과 선행을 통해 번뇌와 업에서 벗어난 이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하이바네가 서쪽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깨달음에 도달하여 해탈했거나, 환생의 자격을 얻었음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쿠우가 사라진 뒤, 실의에 빠진 라카는 날개가 검게 물드는 츠미츠키(죄인)가 돼버린다.

위태롭게 방황하던 그녀는 어는 날 까마귀들에 이끌려 숲 속에 버려진 우물에서 죽은 새를 발견한다.


라카는 죽은 새를 통해 고치 속에서 꾼 꿈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던 자신을 까마귀(소중한 존재)가 구하려 했지만, 그 도움을 외면했던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혼자 죄에 사로잡혀 있으면 벗어날 수 없지만, 누군가가 뻗은 손을 잡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통해 라카는 츠미츠키에서 벗어나고, ‘떨어지다(落下)’가 아닌 ‘인연의 결실(絡果)’이라는 진짜 이름을 받는다.


하이바네의 홀로서기는 개인의 영적인 수행에 가깝다. 또한, 그들의 깨달음이 전생에서의 죽음, 해소되지 못한 고통의 근원과 관련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이렇듯 상당 부분 불교적 깨달음에 닿아있다.


하이바네 연맹의 수장인 와시가 라카에게 던진 ‘죄를 아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 그렇다면 너는 죄인인가?’라는 화두가 바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죄를 아는 자에게는 죄가 없다’는 문장은 자기 인식의 역설을 뜻한다.

자기 부정과 회피 등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순간, 그는 이미 변화의 출발점에 있으므로 죄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죄인인가?’라는 이어지는 물음은 자기 인식의 여부를 시험한다.

‘나는 죄인이다’라고 답한다면, 자신의 죄를 인식한 ‘죄가 없는 자’가 되고, ‘나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답한다면, 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로 진정한 ‘죄인’이 된다. 이는 곧 스스로에게 묻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결국 구원은 자기 자신의 상처와 죄를 직면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 선문답은 우리에게 ‘너는 자신을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제 이 질문에 담긴 주제의식은 라카 개인을 넘어, 작품의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레키의 서사를 통해 분명해진다.


레키의 구원은 더 지난하고 처절하다.


날 때부터 검은 날개를 갖고 태어난 레키는 ‘축복받지 못한 존재’라는 번뇌에 휩싸여 있다. 그녀는 조약돌이 깔린 어두운 길을 홀로 걷는 꿈을 저주라고 여기며, 오직 착한 하이바네가 되기 위해 아이들을 돌봤다.


하지만 자신보다 어린 쿠우가 홀로서기를 하고 라카가 스스로 츠미츠키에서 벗어나자,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 휩싸여 ‘잊힌 채 사라지기’를 택한다.


레키는 죄악감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면서도 타인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도와줘’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에서야 힘겹게 내뱉은 그녀의 한 마디는,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자신을 비로소 대면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https://blog.naver.com/amon666 원작 아베 요시토시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으며, 주어진 일을 하며 협동해야 한다. 이는 곧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언제든 기꺼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타인에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며 구원의 조건임을 레키는 배운 것이다.


하이바네 연맹은 결국 ‘자기 구원’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존재들의 깨달음의 여정이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곁에 있는 존재가 나의 슬픔을 이해하고 헤아려준다면, 적어도 고통에서 벗어날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을 구하려 했던 새의 마음을 알아챈 라카가 레키를 구하는 새가 되기로 한 것처럼 말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결국 ‘자신’ 임을 깨닫고, 타인의 지지를 양분 삼는다면 구원은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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