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로는 1인 가구
휴지를 준비하지 않은 탓이다.
코믹한 일상물인 줄 알았는데 옷소매가 축축하게 젖었다. 10화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매 회마다 울 줄 누가 알았을까.
[눈물주의] 경고가 필요한 이 작품, 츠무라 마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코타로는 1인 가구>(2022)다.
허름한 시미즈 빌라에 이사 온 꼬마가 이웃들에게 고급 티슈를 선물한다.
부모는 없다. 네 살짜리 코타로는 혼자 산다.
사극말투를 쓰는, 지나치게 의젓한 이 꼬마에게 빌라의 이웃들은 자연스레 마음이 쓰인다.
무명만화가 카리노, 호스티스 미즈키, 야쿠자 타마루. 서로 얼굴도 모르던 이웃들은 어느새 코타로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공동육아에 들어간다.
장난감 칼을 허리춤에 차고, 좋아하는 만화의 주제곡을 따라 부르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다. 하지만 평범한 네 살짜리 아이가 매일 목욕탕에 가고, 강해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윗몸일으키기를 하지는 않는다.
좀처럼 웃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면서, 때론 어른들의 속사정까지 꿰뚫어 보는 코타로는 확실히 평범하지 않다.
옴니버스로 이어지는 잔잔한 일상 속에서, 그 행동들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이유를 드러낸다.
강박적인 목욕은 미움받지 않기 위함이었고, 강해지려는 집착은 맞지 않기 위해서였다.
부모의 이혼 후, 엄마는 코타로를 두고 집을 나갔고, 가정폭력으로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아빠는 보육시설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코타로가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보다 안타까운 건, 학대받는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이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타로는 자신이 약하고 쓸모없기 때문에 아빠가 '나쁜 사람'이 된 거라고 여기며, 경찰에 신고한 일을 후회하기까지 한다.
장갑을 끼지 않고는 아들을 만지지도 않던 엄마, 자신을 때리던 아빠.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다시 나를 좋아해 줄 거라는, 그래서 다 함께 살 수 있을 거라는 그 연약한 믿음이 코타로를 버티게 한다.
코타로가 좋아하는 만화 속 주인공 토노사마맨은 어린아이들을 지켜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한다’는 주인공의 대사는 코타로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유치원 친구들이 반찬투정이나 하는 철없는 장난꾸러기인 데 반해, 코타로는 겨우 네 살에 모든 걸 혼자 해내려는 외로운 어른이 되어버렸다.
혼자 밥을 먹는 적적함을 달래려 반찬을 많이 만들고,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은 쓸쓸한 마음에 이웃집 초인종을 누른다.
다행히도, 코타로가 누른 초인종에 응답해 준 어른들이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듯, 빌라에 사는 이웃들과 동네 어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코타로를 보살핀다.
특히 옆집에 사는 무명만화가 카리노는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코타로의 곁을 지킨다. 유치원 등하교 길에도, 목욕탕으로 향하는 밤길에도 그는 늘 코타로와 함께한다.
너는 이제 티슈를 먹을 필요가 없잖아.
코타로는 유독 고급티슈를 좋아한다. 성분까지 따지면서 비싼 티슈를 고르는 이유가 ‘달콤해서’라고 말하자, 카리노는 그저 향이 좋은 제품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머지않아 깨닫는다. 혼자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코타로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티슈를 먹었다는 사실을.
마트에서 또다시 비싼 티슈를 집어드는 코타로에게 카리노는 대신 싸구려 티슈를 건넨다.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였다.
하지만, 위안을 받는 건 코타로뿐만이 아니다.
엉망진창인 집에서 제대로 씻지도 않고 생활하던 카리노는 코타로를 돌보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자신의 부족한 그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소중히 간직하는 옆집 아이 덕분에 만화를 그리는 일에 더 정진하게 된다.
코타로는 그렇게, 주변 어른들의 삶까지 조심스럽게 변화시킨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이 작품은 그러나 아동학대와 방임을 고발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그보다는 관심과 보호가 서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은 이야기다.
특별할 거 없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무명만화가와 술집 호스티스, 야쿠자가 네 살짜리 독거 아동을 만나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보호자가 된 어른들은 아이를 지키고, 아이는 또 그 어른들의 고된 하루를 붙잡아 준다.
이는 고발이 아니라 성장의 서사에 가깝다.
작품 속 카리노의 대사가 오래 남는다.
보통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은
부모가 기억해 주잖아.
나는 그 기억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저 녀석의 하루하루를
기억해 주기로 다짐했어.
한 때 몸담았던 프로그램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다. 참혹한 사건에 분노와 슬픔은 사회를 흔들었지만, 사건은 곧 잊혔다.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방치되고 유기되며, 보호받아야 할 곳에서 가장 먼저 상처 입었다.
그 아이들을 외면하지 않은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다시 오지 않을 유년기를 기억해 줄 사람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코타로는 1인 가구>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에게 문을 열어주고, 밤길을 혼자 걷는 아이 옆에서 함께 걸어주고, 배고픈 아이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주는 일. 그 사소한 다정함이 적어도 누군가의 하루를 외롭지 않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기댈 곳이 없어 스스로 기둥이 되어버린 수많은 코타로들의 삶이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