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간실격의 변주곡

오드 택시

by 작중화자

바다코끼리가 택시를 운전한다.

커다란 몸집에 딱히 좋은 인상도 아닌데 눈곱만큼의 친절마저 기대할 수 없다.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으니 차라리 편할지도 모르겠다.

탑승객은 고양이부터 알파카, 멧돼지, 하마.

이건 뭐 ‘주토피아’가 따로 없다.

하지만, 바다코끼리의 세상은 결코 발랄하지 않다.




브런치에 애니메이션 리뷰를 쓰면서 ‘스포일러’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 글을 읽고 호기심에 작품을 찾아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분명 그러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에 결말을 공개하는 데 큰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오드 택시>(2021) 만큼은 ‘스포’ 할 수 없다. 이 작품의 끝은, 직접 확인해야 한다.


• 하드보일드 세상을 달리는 택시

시신을 감싼 게 틀림없는 방수포가 벽돌을 매단 채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이어지는 여고생 실종 뉴스와 함께, 택시 운전사인 오도카와의 야간운행이 시작된다.

택시에 타는 승객들은 직업도, 나이도, 과거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도카와가 실종된 여고생을 태운 적이 있다는 이유로 용의 선상에 오르면서, 승객들과의 짧은 동행은 기묘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오드 택시>는 언뜻 귀여운 수인(獸人) 극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이자 21세기 인간 군상의 암담한 민낯을 드러내는 하드보일드다.


SNS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대학생은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는 사이버렉커가 되는가 하면, 야쿠자와 결탁한 경찰은 사건의 증거를 빼돌린다. 게다가 오도카와의 친구는 미인계에 낚여 고리사채까지 끌어 쓴다.


이렇듯 등장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욕망을 품고 있으며,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비윤리적이다. 돈과 야망을 위해서라면 진실은 아무렇지 않게 날조되고, 인간성은 손쉽게 배제된다.


문제는 이 세계에서 누구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하지 않는 오도카와 역시, 사회의 연결망 안에 존재하는 이상 사건의 중심에서 비켜설 수 없다.

선량함은 방패가 되지 못하고, 그는 의도치 않게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서늘한 사실을.

• 떡밥 회수의 정석

다만, 오도카와는 사건에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택시에서 오간 대화와 사소한 단서를 기억해 인물들 간의 연결고리를 파악한다. 모두가 무시하는 캐릭터를 끌어들여 판을 흔들기도 한다.

사건의 흐름을 꿰면서 개입의 순간을 선택하는 오도카와의 통찰력은 예리하게 빛난다.


그의 추리만큼이나 돋보이는 작품의 백미는, 사방에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합쳐지는 과정이다.

접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사건으로 수렴되는 연출은 감탄을 자아낸다. 탄탄한 스토리라인 곳곳에 매설된 복선을 찾아 퍼즐을 맞추는 재미는 <오드 택시>가 선사하는 최고의 묘미다.


아이돌 멤버들이 가면을 쓰는 이유, 위협적인 추격자의 정체, 평범한 소품의 의미까지, 앞에서 던져진 떡밥들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완벽하게 회수된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장 큰 반전은 항상 가장 가까운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오도카와가 쥐고 있다.


• 택시기사는 어쩌다 바다코끼리가 되었나

오도카와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독한 현대인이다.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그의 냉소적인 현재는 암울한 과거에서 기인했다.

주치의인 고릴라가 오도카와의 과거를 되짚어가며 드러나는 사실은 <오드 택시>의 등장인물들이 왜, 모두 ‘동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씁쓸한 대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다. 작품은 우리의 인식과 편견이 마주하지 못하는 진실을 볼 줄 아는 통찰과, 그 진실을 감당할 용기의 필요를 역설한다.




<오드 택시>는 빈틈없는 구성과 사회 풍자, 전율이 돋는 반전 엔딩까지 고루 갖춘 웰메이드 작품이다.


귀여운 외양과 달리 현대사회의 폐부를 파헤치는 서사의 이질성은 오싹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또한 택시라는 폐쇄된 공간이 부여하는 긴장감은 독보적이다. 멈추지 않는 택시 안, 등 뒤에 앉은 인물의 악의를 우리는 바로 옆에서 목격하게 된다.


13부작 TV판을 편집한 극장판 <오드 택시 인 더 우즈>(2022)에서는 후일담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인터뷰 형식의 장면들이 추가되면서 긴박감이 떨어진 점은 아쉽다.


택시가 달린다.

도쿄의 밤거리로 옮겨진 21세기 인간실격의 세계에서, 전조등은 털가죽 뒤에 가려진 뒤틀린 욕망을 비춘다.


미터기가 멈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내린 곳이 안전한 집일지 또 다른 심연일지는 오직 주행을 끝까지 마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