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가 있거든 잘 보이는데 묻어주세요
백지에 한 획
아이들은 백지고 세상은 묵이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은 내가 사소하게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곧바로 투영된 다는 것이다. 나는 가장 가까운 묵이다.
1월인가, 추운 날 집 근처 산책로에 새가 죽어있었다. 푸른 깃털의 새는 나무에 부딪쳤는지 목이 부러진 것 같았다. 그냥 지나치는 게 더 쉬웠지만 아이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새가 죽었어, 불쌍해라."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새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유추한 뒤 애도했다.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산책로에 잘 보이는 곳에 약식으로나마 묻어주었다.
아이들은 그 산책로를 지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새가 죽었고, 불쌍하고, 날다가 부딪쳐서 죽었고, 불쌍하고, 우리가 묻어줬다고.
산책하는 거리 한 모퉁이에 아이들과 나의 이야기가 늘었고, 아이들 마음에 감정이 한 가지 추가되었고, 백지에 묵으로 일점 일획을 추가했다.
그렇게 우리 동네 이곳저곳에는 벌써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뒷산에는 목줄 풀린 무서운 개가 나오는 곳, 혹시 박쥐가 살지도 모르는 동굴, 낙엽 지는 가을이면 밤송이가 떨어질 고개, 봄과 함께 찾아온 두릅이 솟은 비탈길, 바쁜 고라니 가족이 싸 놓은 응가들, 흰개미 왕국이 있는 나무 더미들...
그렇게 그 뒷산을 가는 거의 매일은 우리에게 몇 권의 이야기 책을 읽는 것과 같은 대화의 시간이다.
죽은 새를 묻어준 것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백지를 하나하나 채워가는 부담감과 즐거움이 오늘도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