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자존심

킥보드만큼은 일등이어야 하는 첫째

by 아빠 민구


아이들 마다 더 발달된 부분과 덜 발달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내는 나보고 아이들을 비교하지 말라고 늘 '훈육'한다.


첫째 아들의 경우에는 언어능력과 신체능력이 탁월한 편인데,

특히 킥보드를 타거나 달리기를 할 때에는 정말 또래에 비해 압도적인 운동신경을 보여준다.


근력은 물론이고 순발력, 균형감각, 근 지구력까지. 이 애를 어떤 스포츠 팀에 데려다 놓아도 코치들이 탐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좋아하는 달리기 시합이나, 킥보드 경주, 자전거 경주를 할 때면 세상 그렇게 신난 표정을 볼 수 없다. 열 번을 해도 스무 번을 해도 땀으로 머리가 흠뻑 젖어도 신이 나서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러면서 연신 "내가 일등이다 일등!"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뒤따라 들어오는 나를 보며 "아빠는 꼴등이다"라는 말도 자주 한다.


그렇다. 필드 위에서는 첫째 녀석이 늘 일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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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태어나서부터도 그랬다.

신생아 때부터도 발을 어찌나 구르고 흔들고 차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5살이 되어 들판을 뛰어다니는 저 녀석을 보면, 신생아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러던 첫째 놈이 어제 넘어졌다.

비 온 뒤 생긴 물 웅덩이 위로 킥보드를 질주하며 멋진 장면을 연출하던 도중에, 물 웅덩이 가운데 생긴 더 패인 포트홀에 킥보드가 걸려 넘어져 흠-뻑 젖어버린 것이다.


아이는 어느 때보다 더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넘어지거나 다치거나 경주에서 질 수도 있다고, 아빠도 어렸을 때 많이 그랬었다고 많이 가르쳐줬지만 서러운 첫째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 데려가 따듯한 물로 씻기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내가 출근을 위해 부산을 떠는 사이 첫째가 오열을 하며 잠에서 깼다.


엄마는 "잘 자다가 이유도 없이 왜 우나"라고 생각하며 접근을 했던 것 같다.

첫째는 울고 또 울었다.


출근으로 바빴지만, 첫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사실, 내 성격과 똑같다) 출근 준비를 멈추고 아이를 안아 들었다. 진정시키고 왜 우는지 물어보니, 어제 킥보드를 타다 물웅덩이에서 넘어져 흠뻑 젖었던 게 억울하고 서러웠다고 한다. 속상하다고 한다.


이 동네에서는 자신이 [킥보드 일등]이었는데, 물웅덩이에 넘어졌던 게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보다.

이 쪼그마한 놈이 벌써부터 부리는 승부욕과 자존심에 신기함과 남모를 대견함을 느끼며,

또 한편으로는 나랑 똑같은 성격의 이 녀석에 대한, 상한 자존심에 대한 애잔함을 느끼며 안아주었다.


"그럴 수도 있어, 아빠도 어렸을 때 맨날 넘어지고 다쳤어. 이것 봐. 아빠 이거 어렸을 때 다쳐서 생긴 상처야. 많이 속상했어?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하준이는 아빠 어렸을 때보다 훨씬 킥보드 잘 타는 거야. 다음번에는 물 웅덩이 조심해서 타자~! 아빠 일하러 가야 하니까, 다시 좀 자고 있어."


아이를 눕혀 재우고, 출근하는 길에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들의 자존심도 잘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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