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용기

사람이 이렇게 크는구나

by 아빠 민구


태어나서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을지 모르겠다. 인지가 되어야 두려움이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지력이 발달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겁먹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야 있겠지만, 신생아에게 호랑이를 보여준들, 총을 보여준들 무서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할 수 있고 경험해 본 이후에는 말이 다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수도 없이 예방접종을 한다. (나도 이렇게 접종을 맞으면서 컸는지 모르겠다) 그 따가움의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주삿바늘을 무서워한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는 1월 말부터 우리 집의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 평소에도 위생개념이 있는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손도 자주 씻겨서 그런지 콧물을 달고 살던 아이들이 벌써 몇 개월째 아프지 않았다.


당연히 병원에 갈 일도 없어졌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병원에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예방접종을 맞고 했던 기회가 없어져 버리니 접종을 위해 날을 잡고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게 어제였다.


나도 바보 같은 것이, '어디 가냐'는 첫째 아이의 물음에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가'라고 무감각하게 대답해버렸다.


밖에 나가기를 언제나 소망하는 첫째 아이는 '신발 신기'에서부터 칭얼거렸다. 병원에 가기 싫단다. 주사 맞기가 싫단다. 울먹인다. 역시나 주사에 대한 '아픈'기억이 되살아 난 모양이다.


좋은 말로 타이르며 차에는 올랐으나, 내리기도 쉽지 않다. 카시트에 푹 파묻혀 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는다. 주사가 맞기 싫다고 울먹인다. 왜 내가 '주사 맞으러 간다'라고 말했는지 후회를 했다.

억지로 끌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아이는 이따금씩 용기를 내다가 울먹이다가를 반복한다. 아빠가 괜히 부여한 내적 갈등이 아닐는지 싶었다. 그래도 아이는 한 걸음씩 병원으로 향한다.


손도 잡고 콧노래도 부르지만 이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한다. 아직 접수도 안 했는데도 확실히 기억나는 그 고통으로부터 아이는 두려움을 집어삼켰다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결국엔 아프지 않기 위해서, 나쁜 병균들을 이기고 더 강력해지기 위해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는 설명을 이해를 하는지, 주사를 맞았다. 꾹 참고 앙 다물었지만 양쪽 팔에 3초짜리 고통 두 번에는 눈물이 찔끔 흘렀다.


그리곤 동생 일찍 본 형이 되어 다시 어른스러운 모습이 되어 "아빠, 주사를 잘 맞았어요"라며 자랑한다.


이 녀석도 충분히 아기인데, 한 살 어린 동생을 아기라고 부르며 씩씩한 척, 용감한 척 행동하는 첫째를 보니 왠지 마음이 대견하고 먹먹해졌다.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를 내는 첫째를 보며 또 먹먹하고 대견스러웠다.


사람이 이렇게 성장하나 보다 싶었다. 무지의 세계에서 두려움을 알게 되고 또 두려움을 넘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더 큰 겁의 산을 향해 다음 걸음을 옮겨가며 성장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주사를 넘어섰지만, 주사를 발판 삼아 조금 더 용감해질 아이를 칭찬해주었다.

'작은 언덕도 넘고 높은 고갯길도 건너 언젠가는 저기 높은 태준 산령도 넘어가겠구나' 생각하며 첫째 녀석의 어깨가 으쓱해지도록 흠뻑 칭찬을 해 주었다.


아기가 아이가 되었나 보다. 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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