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난 안 먹을 거야"
아이가 말한다. 되게 먹고 싶은데, 무엇 때문에 삐졌다는 이야기이다.
아이의 언어는, 여자의 언어만큼이나 어렵다. 사실 어렵다고 하기에는 수가 훤히 보이지만, 속이 콱콱 들어 막힘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를 들어주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이 어렵다.
알고 있다.
"하준이는 뭐가 속상했어? 하준이가 딸기맛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동생한테 딸기맛 사탕 줘서 기분이 나빴어?" 이렇게 말해주고, 안아주고, 다음번에는 '너의 의견을 먼저 물어봐줄게'라고 말하면 해결될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이의 언어를 해석하는 것도 쉽고, 이해하는 것도 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사소한 일 들에 속상해하고 삐지고 하니까 알면서도 들어주기 싫을 때가 있다.
이 점은 확실히 '여자들의 언어'와는 다른 부분이다. 여자들의 언어는 정말이지 들어도 못 이해하겠는 것들이 많은데 '아이의 언어'는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의 태도를 보며 마냥 혼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무한정받아주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사실 답은 잘 모르겠다.
가끔은 '아이의 언어'를 듣고 괜히 정말 인격대 인격으로 내가 기분이 상해 버리면, 사람대 사람으로서 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아내는 그런 나에게 '잘못됨'을 경고하지만, 내 딴에는 아이도 그렇게 행동했을 때 다른 사람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유치한 맞받아치기이다.
과연 아이의 언어는 왜 그런 것일까. 아니, 나도 어릴 때는 그런 것인가. 아니 아니 그럼 둘째도 조금 더 크면 저렇게 말한단 말인가. 아니 아니 둘째 성격상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이 삐져버리는 첫째 아이의 태도와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난관에 봉착했다.
과연 저 이쁜 아이의 못난 말을 어떻게 듣고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 말을 듣고 부모는 어떻게 행동해야 맞는 것일까.
분명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랄 나의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자랄지는 무서우면서도 궁금한 면이 있다.
따지고 보니까 나도 엄청 잘 삐지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아내도 나를 보고 가끔씩 [삐구]라고 부른다. 잘 삐진다고 그렇게 부르는데, 반박하려다가도 틀린 말은 또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듣고 있곤 한다.
"그래, 저 모습도 다 내가 물려준 것들인데 이해해 보자." 이렇게 생각이 닿으면 아이의 언어는 사랑스럽다. 옥수수 알갱이 같은 발가락을 보는 것과 같은 사랑의 마음이 샘솟는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보드란 볼을 만지는 것 만치 사랑스럽다.
"저 어린놈이 뭘 어디서 얼마나 배웠다고 또 저렇게 삐지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나지"
아이는 말한다. 나처럼 말한다. 분명 나의 부모님도 나의 저런 말투 때문에 화 깨나 나셨을 거라는 생각에 '피식'하고 웃음이 샜다.
아이의 언어를 찬차-안히 들으면서 내가 기억 못 하고 내가 보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이나 곱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