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었던 가, 육군본부에서 공문이 하달되었다. 육아휴직이 가능했었는데, 앞으로는 장려할 것이고, 휴직수당도 어느 정도 더 지급된다고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육아휴직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도,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시,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육아휴직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당장만 생각해봐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100명이 넘는 부하들을 책임지는 중대장이었고, 하루도 바람 잘날 없었다. 크고 작은 훈련과 사고, 이슈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장 며칠만 휴가를 가더라도 휴가 내내 전화며 문자며 주고받기 바빴고, 잠자리에서도 머리맡에 휴대폰을 두고 자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라도 부대로 달려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 나날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그만한 선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방법과 구실을 찾고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을 수소문해보아도 육아휴직을 했다는 선배나 동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여군은 제외하고)
결국에는 관련된 규정을 충분히 읽고 나서 대대장님께 찾아갔다. 둘째를 임신 중인 아내가 많이 힘들 것을 걱정한다며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했다. 물론 규정상 육아휴직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는 아니었고, '신청'만 하면 누구든 쓸 수 있는 신청제였지만 그게 그렇다고 누구나/아무나/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일
특히나 군 조직과 같은 특수한 집단에서도 시대에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패러다임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첫 삽을 떠야 했다. 즉, '새로운 문화'를 쓴다는 것인데, 쉽지 않음은 두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었다.
대대장님도 같이 상의해보자고,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가장 좋을지 잘 생각해보자며 열린 답변을 주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대대장님으로부터 호출이 있었다.
방법에 관한 상의였는데,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할 경우에는 내 보직을 미완료 상태로 종료하고 새로운 중대장을 앉혀야 하는 게 규정이었기 때문에 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하기로 했다. 대신 내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기 때문에 후배 한 명을 임시로 내 자리에 보직해 놓기로 했다.
민간인들에게는 말이 좀 어려울 수 있는데, 쉽게 풀어말하면 잘 해결이 된 것이다.
육아휴직 전초전 "출산휴가"
아내의 출산 예정은 연말연시 즈음이었는데, 육아 휴직에 앞서서 출산휴가로 한 번 거하게 써보기로 했다. 군에서 나오는 둘째 자녀 출산휴가 5일(당시에는 5일이었으나, 현재는 10일)과 주말, 개인 연차(연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모두 합쳐 21.5일의 휴가를 계획한 것이다.
무슨 서양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라도 가는 것처럼 장기간으로 자리를 비워보았다. 내가 장기간 자리를 비워도 중대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그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실험하는 측면이었다.
휴가 간 이런저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제들은 시스템 안에서 꽤 괜찮게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휴직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둘째 출산 후 21.5일 간 집에 지내며 아내의 산바라지를 자처했고, 첫째 걱정에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은 아내와 아이들을 보살피며 3주를 보냈다. 그 이후에는 장모님이, 또 그 이후에는 출장 산후도우미가 각 2주씩 아내를 돌봐주었다.
드디어 육아휴직
그 한 달 동안 나는 마음 편히 혹한기 훈련이며 전술훈련이며 순탄하게 마치고, 드디어 석 달 간의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그렇게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육군 최초로, (이건 확실한데) 동기 최초로 '육아휴직'을 쓴 남자 군인이 되었다.
그게 정당하고 합법적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이게 나 스스로를 위한 일도 아니고 아내와 자식들을 위한 것인데, 이것 때문에 앞으로의 군생활이나 진로에 있어서 불이익이 생겨도 실행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선배 군인들이 "나 때는 자녀들 태어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군인이 출산휴가 같은 게 어디 있냐"라고 말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분명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말하고 있고 전쟁이 나도 맘 놓고 싸울 수 있게 '전시 군인가족 보호계획'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전쟁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을 돌보고 지킬 수 없도록 서로서로 견제하고 부담을 주는 것은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했다.
이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으로 훗날 아내와 자식들에게 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 육아와 가사에서 함께 공유하고 헤쳐나갔다는 사실 -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우러나왔다.
비록 남들은 손가락질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떳떳했다. 무엇보다, 내가 일 년 넘게 만들어 놓은 중대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고작 3개월 비운다고 흐트러질 것 같았으면 나도 손 떼지 못했을 것이다.
믿고 지원해주신 대대장님과 나 없이도 훌륭히 임무 수행할 수 있는 부하들, 그리고 나의 소신(깡)이 만들어 낸 첫걸음이었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그 숲 속 길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고 나뭇가지를 헤쳤으니 내 뒤로는 좀 더 수월하게 따라올 수 있게 되고, 결국에는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육아휴직 기간과, 그 이후 복직한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계속 이야기해보겠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