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 때 이미 우는 아이에 대한 대처법을 어느 정도 습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또 다른 종류의 아이였다.
아직 첫째도 두 돌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둘째까지 보게 되었다. 아내는 나의 휴직과 동시에 필라테스와 요가를 다니게 되었고, 그렇게 오전 시간은 나에게 오롯이 남겨진 육아 각개전투의 시간이었다.
"잘 (빨리) 다녀와..."
아내가 집을 나가면 아이들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떠안게 된다. '아내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당장에 떠오른다.
첫째가 컵을 깨고 둘째가 울기 시작한다. 둘째를 달래려 유축해 둔 모유를 먹이는 사이 첫째가 응가를 한다. 젖병을 물리다 말고 응가를 치우러 가니 둘째가 운다. 급히 응가를 치우고 나니 첫째가 밖에 나가자고 떼를 쓴다.
아기띠에 둘째를, 유모차에 첫째를 태워 데리고 나가니 둘째가 응가를 했다. 첫째는 놀이터에서 모래를 가지고 놀다 눈을 비벼 울고불고 난리다. 간신히 가지고 나갔던 물로 첫째 눈을 씻겨 줬더니 둘째는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듯 울기 시작하고 첫째는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란다.
오래된 아파트, 가뜩이나 느린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마침 방금 전에 올라갔다. 9층에서 돌아 내려왔다. 조급히 타고 우리 집이 있는 탑층(15층)까지 느릿느릿 올라간다.
간신히 기저귀를 갈고 물을 먹이고 기도를 한다. "제발 좀 자라"
간절 한 기도가 접수되었는지 둘째가 잠들기 시작했다. 엉망이 된 집을 좀 치우고자 첫째에게 유튜브를 틀어준다. 아기띠에서 잠든 둘째를 잠시 내려놓으려고 허리를 천천히 숙인 지 1초 만에 둘째는 깨어나고, 난 울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운동 중인 아내가 전화를 받을 리는 만무하다.
한-참이 지나 전화를 받은 아내, "별 일 없지?"
내 눈에선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휴직기간, 나만의 힐링 타임
물론 휴직 기간인데, 나에게도 자유시간은 있었다. 뭔가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서 '헬스장과 스피닝'을 끊었다. 뭐 근력운동이야 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아내가 돌아오면,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문제는 '스피닝'이었는데, 낮시간에, 더군다나 '스피닝'이라는 운동 특성상 아줌마들로 스피닝실이 가득 찼다. 스피닝 머신 위에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좀 민망하긴 했지만, 그보다도 자리를 차지하는 것 자체가 치열한 싸움이었다.
수업 시작 10분 전에 가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미 내가 등록하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멤버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때문에 내가 일찍 가서 자리를 잡으면 수업을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거리다가 눈치를 주고 가시는 아주머니들이 생겼다.
내가 돈 내고 수업을 듣는데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수업 참석 경쟁은 치열해져서 나중에는 30-40분 전에 가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고, 이젠 음악에 맞춰 정신없이 엉덩이를 씰룩거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아주머니들과 스피닝 머신 자리 경쟁을 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그만두게 되었다.
육아의 현장도, 스피닝 룸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육아와 운동에서 다시 한번 '여자들은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
새로운 국면, 90일 된 아이와 태국 한 달 살기
그렇게 육아휴직의 한 달이 지나고, 약간은 지루한 일상에 아내와 여행을 결심했다.
[태국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후다닥 계획해서 별생각 없이 떠나게 되었다.
나중에 별도의 시리즈로 다룰 예정이지만, 이 태국여행은 결론적으로 '인생 최고로 힘든 여행'이 되었다. 사실 '태국 여행'도 아니다.
일산에서의 미세먼지를 피해 무작정 떠난 동남아 한 달 살기였는데, 사전조사가 부족했다. 태국 치앙마이는 분지 지형과 화전으로 우리가 갔던 4월~5월 세계 최악의 공기질을 자랑했다.
우리는 맑은 공기를 찾아 남진했다. 치앙마이에서 끄라비로, 그리고 태국 남부 도시들을 몇 개 거쳐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페낭에서 쿠알라룸프르로, 그리고 싱가포르로.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서 아이들을 하나씩 들도, 케리어를 끌고, 기저귀 보따리를 들고, 위켄더 메고 수천 키로를 남진했다.
정말, 많은 훈련을 해봤지만. 태어나서 가장 힘든 한 달이었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져서 싱가포르에서 한국 행 비행기를 탔다. 당시 공항 출국장에서 찍었던 동영상이 생각난다. 약 10분간의 영상이었는데, 나는 술에라도 취한 듯 "아이들과 여행하지 말아라"라는 내용을 스스로에 대한 욕을 섞어 반복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훈련은 아니 여행은 마무리되었고 다시 마지막 육아휴직 한 달이 남았다. 이번에도 육아와 여행의 격전을 겪은 느낌이었다.
마지막 한 달.
'이제 한 달 남았다'라고 생각하니 시간이 야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힘들지 않았다. 할 만했다.
매일매일 복닥거리는 우리의 시간은 익숙해졌고, 서로에 대한 유대감과 신뢰는 쌓여가고 있었다. 석 달간의 육아휴직이 끝난다고 육아가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목표로 한 어떤 성과가 나오는 것 같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벼를 심고 농사를 지어 가을 녘에 노랗게 물든 들판을 보는 것 만 같았다.
아내도 만족스러워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책상이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5분 정도 해봤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랐고, 시간은 더 빠르게 흘렀다. 이제 곧 복귀해야 하는 시간이 임박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