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올해 제일 잘 쓴 2만 원

내게 2만 원 이란.

by 아빠 민구



아이들에게 2만 원을 썼다. 아이들은 며칠 동안 신이 났다. 즐거워했고 집중했다.

난 겨우 2만 원을 썼을َ뿐인데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 문득 "2만 원이면-"하고 생각에 잠겼다.



중고등학교는 버스를 타고 다녔었다. 정기적으로 버스 회수권을 사야 했었는데, 버스요금은 어릴 땐 130원이었다가 내 나이만큼 꾸준히 올라 240원, 350원도 넘어 계속 올랐다. 그때 당시 엄마가 회수권 사라고 2주에 한 번씩 주셨던 돈이 2만 원이었다. 회수권이 떨어질까 아슬아슬하다가, 한 번 버스 회수권 사면 며칠간 마음 편하게 등하교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일산에서 살 때 혼자 시간이 나면 혼술을 하곤 했는데, 옛날통닭 2마리에 수입맥주 4캔을 사면 2만 원이었다. 닭 두 마리에 맥주 세 캔 정도 먹으면 배도 부르고 알딸딸한 기분도 들었고, 맥주 한 캔은 세이브할 수 있었다. 뭐 별다른 음식이나 고급진 술도 필요 없다. 그냥 딱 2만 원이면 며칠간 묵은 스트레스와 피로를 그날 저녁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인지, 로봇 만화에 노출시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로봇 타령이었다. 알 수도 없는 수십 가지 로봇 이름을 줄줄 외고 변신이네 합체네 하면서 지들끼리 놀길래 "로봇을 하나 사줘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을 열어보니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로봇 하나에 3만 원은 기본이고 8만 원, 10만 원이 넘는 것들도 많았다. 또 보통의 경우에는 얘들이 단품으로 사면 합체를 할 수 없고 항상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데다가 우리 집 남자아이는 두 명이기 때문에 한 두 개 사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비용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입덧으로 누워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데도 나갈 수 없고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는 불쌍한 강아지들을 위해서, 장난감이라도 꼭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결국 당 X 마켓을 수색 정찰해서 장난감 로봇 네 개를 2만 원에 구할 수 있었다. 아이들 재울 겸 저녁시간에 먹이고 씻기고 잘 준비 다 시켜서 거래를 하러 차 타고 나갔는데, 아이들은 로봇을 갖는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흥분되어 기분이 올라와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날 밤 새벽 1시까지 로봇을 가지고 놀다가 끝내 각각 두 개씩 로봇을 옆에 끼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그리고 1주일이 넘게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물론 시간이야 지나면 질려서 시큰둥해지겠지만, 내가 2만 원을 써서 이렇게 누군가를 즐겁게 했던 적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카페 가서 커피 두세 잔만 시켜도 없어지는 돈인데, 이제는 그 돈도 아껴서 강아지들 장난감도 종종 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했다.


2만 원이 이렇게 잘 쓰이다니. 근 20년 내에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를 했다. 또 당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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