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면 늘 집안에 모든 등을 켠다. 조금이라도 더 밝은 게 좋다. 아내는 이런 나에게 타박을 한다. 해도 충분히 들어오는데, 무슨 집안에 등을 이렇게 열심히 쫓아다니며 켜냐고.
아마 지하와 반지하를 오가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 몸에 밴 습관인 것 같다. 어두운 게 싫었다. 게다가 이사 오기 전 남양주 집은 정북향 집이라 해가 하루에 1분도 들지 않았었는데. (어찌 그런 집을 지었을까) 그나마 좀 희미해져 가던 습관이 남양주에서 다시 도졌다.
이게 우리집은 아닙니다. 우리집은 군인 관사랍니다. 하하.
다행히 여기 대전 집에서는 해가 든다. 해가 드니 참 좋다. 아침이면 커튼을 촤락 걷고 쏟아지는 태양을 맞이하며 집안에 화분들을 베란다 쪽으로 모아 온다. 식물들도 햇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해는 그렇게 늘 반가운 존재니까 말이다.
아침에 화분을 모아놓고 잠시 따듯한 햇볕이 다리에 스륵 감기는 틈을 즐기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늘 이대로 해가 따듯하게 내리쬐는 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철없던 시절이 떠올랐다.
철이 없던 시절에 나는 공상처럼 이런 얘기를 포스트잇에 써 책상머리에 붙여놨었다.
"자전 속도만큼 빠르게 서쪽으로 달려가겠다. 해가 지지 않게"
그때는 어두운 게 싫었다. 반지하나 지하를 전전하던 삶도 싫었고, 뭔가 나만 안 풀리고 나만 억울하고 나만 힘든 것 같은 세상도 미웠다. 그래서 세상에 도전하고 싶었다. 내 능력으로 그렇게 발악으로 하면 언제나 밝은 곳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 비뚤어진 생각으로 열심히도 살았었다.
태양만큼 빠르게 서쪽으로 뛰겠다는 어이없는 생각. 그렇게 해서라도 늘 '밝음'에 머무르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반대되는 콘셉의[어둠 속으로]라는 드라마를 만나게 되었다. 태양을 피해서 서쪽으로 도망간다는 예고편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태양을 쫓아서가 아니고, 태양을 피해서.
어느 날, 태양이 뜨는 모든 곳의 사람들이 죽는다. 주인공들은 비행기를 타고 태양을 피해 무조건 서쪽으로. 또 서쪽으로 날아가며 드라마가 전개된다. 자세한 내용이야, 보는 사람이 즐길거리이기 때문에 집어다 치운다. 내가 즐겼던 감상의 포인트를 하나 꼬집어 보는 게 그보다야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드라마가 무척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그 중심에는 선명한 대비와 대조가 있었다.
[태양]의 [밝은 속성]과 [밤]의 [어두운 속성]이 계속대비되며 전개된다. 그리고 기존의 태양=생명 / 어둠=죽음이라는 이미지를 역전시켜서 나타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제목처럼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는 조건이다.
그 [빛]과 [어둠] 속에서 [멈춤]과 [움직임]을 통해 [삶]과 [죽음]이 교차된다.
[땅]에 있는 사람들은 죽어가고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동쪽]은 죽음의 [시작]이고 [서쪽]은 삶의 [종착역]이다.
[하늘]을 끝없이 [넓은] 무대로 전개되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비행기]라는 [협소한] 공간 안에서 활동하며 [영화]지만 [연극] 같은 제한된 공간을 사용하며 스토리를 전개한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개인의 [이기]와 역시나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는 [이타]가 공존하며 [악한] 사람을 통해서 [구원] 받고 [선한] 사람이 [죽는] 상황이 묘하게 교차된다.
이런 이미지와 스토리들이 잘 짜인 각본 속에서 끊임없이 교차한다. 거기에 더해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제한된 숫자의 캐릭터들이 있다. 그 주인공들의 이름이 각각 총 6편의 제목이 되어있는데,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면서도 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 같은 효과를 가져간다.
각 편의 인트로에 나오는 인물들의 배경을 통해, 그 인물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이유를 찾아간다. 쉽게 말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려주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이런 '단서'의 제공은, 비단 인물뿐 아니라 사건을 전개하고 실마리를 제공하는 단초로서 톱니바퀴처럼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감상을 요약하자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조와 대비의 이미지를 잘 맞물리게 배치해 놓고 여러 가지 극적인 요소를 통해 긴장감을 높여가며 순식간에 여섯 편을 끌고 가는 [계획]과 [호흡]이 정말 마음에 든 작품이었다.
한 참 전에 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감상을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렇게 선명한 대조를 활용해서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