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수 없이 많은 저장된 배아 중에서 하나를 골라 인큐베이팅하고 곧, 아이가 태어난다.
제한된 공간 속, 로봇은 미리 준비된 기능과 방대한 자료들로 아이를 키워나간다.
그렇게 로봇이 아이의 유일한 대상이자 '엄마'가 된다.
자세한 스토리야 '보는 사람 고유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집어다 치우고, 내 감상 한 줄 더해본다.
드라마에서는 로봇이 우월한 지적능력과 피지컬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완벽한 엄마가 된다. 완벽한 존재가 통제된 환경에서 불완전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왠지 모를 섬뜩함에 뒷목이 오싹했다.
로봇이 무서운 것일까. 파괴되고 오염되어 멸망한 환경이 무서운 것일까. 단순히 침침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배경이 무서운 것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감상의 핵심은 '통제된 정보'가 무섭다는 것이다.
포스터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오각형 틀 안에서, 사람은 갇혀있다. 어깨에는 통제자의 두 손이 올라가 있고, 뒤에서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여 주인공은 로봇 엄마가 말하는 모든 것이 '진실'인 것으로 생각하며 자란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보는 통제되었고, 그 안에서 자란 사람은 통제된 정보가 전부이고 진리다.
이 드라마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빅브라더에 의한 통제사회가 떠올랐고. 폐쇄적이고 반목하는 우리 사회가 떠올랐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은 감시하에 있다. 데이터를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무서운 상황이다. 그리고 그렇게 통제된 데이터가 통제된 정보가 되어 재생산된다면 [그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통제된 정보의 위험성은 이미 우리 사회를 적시고 있다. 반복 재생산되는 지역감정과 언론에 의해 편협하게 전달되는 편집된 사실들, 정치적 편 가르기로 진영화 된 사회. 그렇게 우리는 진실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재단 된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우물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