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싫어하는 소주를 채웠다
이젠 소주말고 다른 거
며칠 전 둘째와 한 판 붙었던 날 저녁이었다.
분노와 인내와 슬픔과 무력감이 뒤섞인 소주를 따랐다. 소주를 좋아하지도- 평소 마시지도 않기 때문에 집에는 소주잔이 없었다. 아이들 물컵에 따른 소주가 찰랑거렸다.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잔 따라 마셨다. 쓴 기운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 느껴졌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내는 내 술잔을 막지 않았다. 적당히 마시라고 하며 안주를 내어줬다. 다시 아이들 컵에 반을 채웠다.
"여보, 나 힘들어"
나약한 모습이지만, 아내에게 힘들다고 말했다. 평소에 소주를 먹지 않는 내가 소주를 꺼낸 것만으로도 내 상태를 알았을 것이겠지만- 힘들다는 말이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내는 조용히 내 말을 들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안주로 내어주었다. 소주병은 점점 비어졌다. 피곤해서인지 술기운이 눈썹까지 올라왔다.
할 일도, 할 공부도 많았지만 일찍 하루를 마무리했다. 자정과 함께 이불을 덮었다. 임신한 아내가 술 냄새를 참고 있을 거란 생각에 새벽 한시 즈음해서 거실 소파에 다시 몸을 뉘었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깨지 않고 자나- 했는데 두시엔 첫째가 물을 달라며 깼고, 네시엔 둘째가 악몽을 꾸는지 울면서 깼다. 꼭 싸우고 난 다음엔 이렇게 되곤 했다. 물을 먹여 재웠고- 한참을 토닥여서 재웠다.
그렇게 연휴 끝에 찾아온 화요일을 맞이했다. 마음을 먹어서인지- 둘째를 대할 때 한 번 더 참게 되었다. 여전히 떼쓰고 칭얼거리는 둘째였지만 최대한 차분히 가라 앉히고 말을 이었다.
이번 주는 날씨가 맑았다. 비가 왔지만 맑았다. 둘째와 투닥거리지도 않았고 둘째 아이도 투정이 적었다. 가슴팍에 턱 막혀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서 사라지고 있었다.
한 주간 아내는 나의 힘들다는 말에 공명하며 둘째에 더 신경을 써줬다. 부른 배로 거동조차 힘든 상황에서 둘째와 시간을 더 보내고 사랑도 더 부어줬다. 둘째의 잔에 사랑이 찰랑거렸다.
사랑이 차니 흘러넘쳤다. 투정 대신 애교가 묻어났고 장난도 식사도 잠도 수월해졌다. 첫째를 목욕시키는데 옷을 벗고 들어와 양치를 하기도 했다. 목욕도 하겠다고 했다.
내가 부을 건 소주가 아니라 사랑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 흔들리고 또 한 번 배웠다.
청춘만 흔들리는 것은 아니구나- 흔들리지 않고 피는 부모의 사랑도 없고 익어가는 자식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퇴근하면 또 하루 종일 붙어 지낼 주말인데, 이번 주말도 맑은 날씨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따라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