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민구 왈왈

모래의 성

쌓기도, 부수기도 불가능한

by 아빠 민구


요즘 중동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현재 중동의 정치외교적 역학관계가 궁금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수니와 시아의 대립구도 말고 더 깊이 알고 싶었다. 나름 중동 전문가인척 하고 다니는 바람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중동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나 깊이가 없었다. 그래서 파기 시작했다. 뉴스 기사부터 역사책, 중동의 국제정치 관련 서적, 다큐멘터리, 유튜브 가리지 않고 중동에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지 수집했다.


그리고 공부를 거듭할수록 현재의 모습과 상태보다 중요한 것들이 모래 속에 묻혀 있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문명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는 그 열사의 땅속에, 사실은 모든 인류의 기원이 담겨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현재 국경선을 그어놓고 중동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 이전에,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가 있었고, 그 전에는 오스만튀르크, 우마이야, 로마,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바빌론, 앗수르, 수메르, 이집트, 심지어 몽골 등 거쳐가지 않은 제국이 없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비롯하여 넓게 보면 가톨릭, 그리스 정교, 조로아스터교, 콥트교 등등 지구인의 대부분이 믿고 있는 종교들이 탄생한 곳이기도 했다.


중동을 알면 알 수록, 내가 평생 파고 또 파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론이 좀 길었는데. 이런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직업 군인으로서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언제나 전쟁영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리고 지금의 관심사인 '중동'과 연관 지어서, 요즘엔 특별히 중동지역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들에 계속 눈이 간다. 다만 지긋하게 두 시간씩 앉아서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던 중, 오늘 아내와 아이들이 일찍 잠들어 맥주캔을 따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크- 얼마만인가.




샌드캐슬


"전쟁에 영웅이 있을까?"


나는 전쟁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히어로물은 싫어한다. 마블 시리즈를 보지 않는 것도 지나친 영웅주의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영화 중에서도 과도하게 영웅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영화들은 흥미가 급격히 떨어져 버리곤 한다. 당장 떠오르는 그런 영화들로는 '론 서바이버', '장사리', '미드웨이' 등이 있었다. 물론 대단하지만- 글쎄-.



전장에서 과연 애국심이며 명예며 하는 것들이 얼마나 눈에 들어올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의 시작과 끝은 항상 그런 포장지로 멋지게 포장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전쟁의 본질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영웅, 애국, 명예, 승리 같은 것들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총성이 울리는 순간, 모든 작전계획은 사라지기 마련이고, 공포심 앞에 애국심의 자리는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마치 전쟁 몇 번 겪어본 것 마냥)


전쟁을 경험해보지는 않았으나- 다양한 간접경험을 통해 배워가고 있는 전쟁은 '인간적'요소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전쟁영화를 보며 감동이나 전율을 느낄 때는 그런 때였다. 인간적 요소를 건드렸을 때.


오히려 다 때려 부수고 폭발하고, 또 그 속에서 아무리 총알이 빗발쳐도 절대로 죽지 않는 영웅적 모습을 보았을 때보다, 사소하고 소박한 전투씬 속에서 인간의 '인간성'을 보았을 때 더 완성도 높은 전쟁영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덩케르크', '1917',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월' 같은 영화들은 정말 길이남을 명작들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된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한다)



이 영화 '샌드캐슬'은 이라크 전쟁이 배경이다. 제목이 샌드캐슬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어디에도 모래로 지은 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모래로 지은 성이 등장하는 게 더 웃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생각을 정리해보니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에 막대한 전투력을 투사한다. 미국에 일방적인 승리인 것 같았던 이라크 전쟁은 무려 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얼마 동안의 전투 후 이어진 '안정화 작전'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끝없이 사상자가 발생했고, 결국엔 미국은 이라크에서 2011년 완전 철수를 하게 되었다.


미국은 이라크의 성을 파괴하려고 했으나 그 성은 형체가 없는 모래 그 자체였다. 모래에 아무리 주먹질을 하고 총을 쏘더라도 모래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다 부서진 것 같아 보여도 흩어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잡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 버리고, 한바탕 뒹굴고 나면 모래를 씻거나 털어버리려 해도 온몸 구석구석 파고들어와 쉽게 떨어낼 수 없다.


동시에,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 실체가 있는 '성'을 쌓으려고 노력했고, 실패했다. 그런 상징들로 표현된 것들이 '모래주머니'였다. 미군들은 주둔하거나 활동하는 모든 공간을 모래주머니를 쌓아 방호벽을 만들고 성곽화 한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창문도 모래사대로 빼곡히 쌓아 막았고, 경계를 할 때면 언제나 그 모래사대방벽 뒤에 몸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미국의 모래성은 적들의 폭탄테러 한 방이면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마치 모래로 쌓은 성이 바람이나 파도에 무너져 버리듯, 미국이 이라크에 성을 쌓으려 했던 시도들은 허무한 실패만을 반복하게 된다. 미국인들은 해답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영화의 주인공이 그 해답에 가장 접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오커'는 세계 최고의 강철부대인 미군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지극히 인간적이었고 나약했다. 다른 동료들처럼 근력운동도 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자해하며 전투에서 열외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인간적인 시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해답에 가장 근접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초반부와 말미에 주인공의 시선이 멈추는 '다리가 부러진 피아노'는 주인공이 몇 주간의 작전을 마치고 돌아왔는대도 방치된 그대로였다. 후방에 미군들은 후세인궁에 머물며 그곳을 지휘소 겸 휴양소로 사용했다. 그곳의 모든 것을 개조하고 수리해서 활용하고 또 즐기지만, 다리가 부러진 피아노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사도 아니었다. 인간적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던 그것이 미군이 이라크에서의 안정화 작전에 실패를 거듭하고 결국엔 모래의 성을 부술 수도, 세울 수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였다.



주인공 오커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애국심과 명예가 아니라 학자금을 위해 전쟁에 지원하고, 전투가 무서워 자해를 하고, 총격이 무서워 항상 찜통 같은 카고에만 탑승한다. 뿐만 아니라 오커를 포함해 이 영화에서 영웅은 아무도 없다. 그저 총을 쏘면 맞고, 맞으면 죽고, 죽기 싫어 숨는 인간들이 각자 삶의 목적을 위해 충돌하는 것뿐이다. 다만, 어쩌면 그 갈등의 해결책을 찾아낼 수도 있었던 오커 이병은 결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오커는 미국 대통령이나 국방장관도 아니고, 부대장도 아니다. 최소한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소대장은커녕 군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이등병이었다. 동료들을 잃고 휴식을 위해 휴양소로 돌아왔으나 상관의 명령 한 마디에 당일 비행기로 귀국해야 하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전쟁의 수준이 아니라 한 인간의 수준으로 내려와서 보더라도, 자신의 모래성조차 쌓거나 부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영화가 그런 인간의 나약함과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영웅주의에 심취되어있는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영화의 현실성과 메시지가 더 강하게 투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전쟁영화가 진짜 전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나는 오늘도 간접 경험으로 전투 경력 1회를 추가하였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을 지원받아 작품을 감상하고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활동이 오늘까지이니 공식적인 리뷰는 이 번이 마지막이겠네요. 하지만 앞으로도 함께 즐기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면 공유하겠습니다. 볼 시간이 있다면요...(쌍둥이 출산 한 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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