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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l 16. 2022

내 피자 토핑은 어쩌나

꿀벌의 실종과 우리의 미래


가을 산에 밤을 주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수풀 속에 숨어있는 벌집을 밟는 바람에 나와 첫째 아이가 벌에 된통 쏘여서 여기저기 퉁퉁 부었었다. 그 뒤로 우리 집 아이들은 붕붕거리며 들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몇 마리 꿀벌만 봐도 긴장을 하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벌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내가 군 생활하면서 겪었던 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아이들은 책장에 있는 '벌' 관련 책이라면 언제든지 가지고와 나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중에 베스트셀러는 <꿀벌이 사라진다면>이다.



내용이 대단한 책도 아니었지만 손이 잘 닿는 책장 가운데 꽂혀있어 아이들이랑 자주 보던 책이 있었다. 그저 어떤 미래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 같은 내용이었고, 전개는 이러하다. 만약 꿀벌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꿀벌과 연관된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결국 인간이 먹는 음식은 물론 동식물로부터 얻고 있는 대다수의 것들을 잃어 인간도 살아갈 수 없게 된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그러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다행히, 아직 꿀벌은 사라지지 않았어요"라며 행복한 웃음과 풍성한 과일들이 그려져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야기가 끝이 난다. 책을 읽어줄 때면 언제나 심각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마지막에는 극적인 반전으로 긴장을 해소시키는데,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맛이 있는 책이었다. 변함없이 행복한 결말이 정해져 있는 책이었다.



어느 날은 책을 읽은 후 둘째가 물었다. "아빠, 벌이 없어지면 아빠 좋아하는 피자도 못 먹겠네요?" 나는, "피자가? 왜? 그건 상관없겠지" 라며 쉽게 대답했으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엔 벌이 수분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식물들이 없어질 테고, 그 식물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다른 식물과 곤충과 동물들이 사라질 것이다. 또 그와 공존하고 상생하던 다른 생명들도 없어질 테니 결국엔 내 피자 위로 올라올 수 있는 토핑들이 없었다. 피자가 문제가 아니고 당장에 냉장고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음식들이며 동식물로부터 얻는 가구, 옷, 신발까지 꿀벌 하나 없어질 뿐이었는데 당장에 못쓰게 될 것들 천지였다. 피자를. 특히 꿀을 찍어먹는 피자를 먹기는 확실히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올해 봄 어느 날. 책에서만 봤던 그 내용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꿀벌 실종'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제대로 추산도 되지 않는지 50억 마리라고 했다가 60억이라고 했다가 나중엔 78억 마리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 수는 우리나라의 양봉 벌 중 16%에 해당하는 큰 숫자였다. 78억이라는 숫자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많은 벌이 어느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당장에 벌을 잃은 당사자인 양봉농가들은 물론, 본격적인 수분 철을 맞은 과수농가들도 차례로 피해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과수원에서는 수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과실이 맺히지 못했고, 어떤 농부들은 붓을 들고 꽃을 하나하나를 수분시키거나 살아남은 벌통을 과수원에 빌려다 놓기도 한다고 했다. 책에서 읽었던 일들이 현실에서 발생하자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가 양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과수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꿀벌에 대한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내 일인 것 마냥 빠지지 않고 읽어나갔다. 기사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이나 다큐멘터리들도 아이들과 함께 보며 꿀벌 실종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학자들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가 멸망한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꿀벌의 실종에 따른 인류의 소멸은 '상식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인류 멸망이 운석 충돌이나 핵전쟁, 전염병이 아니고 '벌의 실종'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헛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선행작업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원인을 분석하며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농약이 문제다. 아니다 기생충이 문제다. 아니다 전자파 때문이다. 아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핵심이다. 등등. 학자들은 벌의 실종에 대한 갖가지 이유들을 가져다 붙였다.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텐데,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어제오늘 사이에 꿀벌이 78억 마리나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없었다. 그래도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니, 내 생각에 '기후 변화'에서 원인을 찾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어쩌면 다른 원인들보다 더 근본적이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약은 안으면, 전자파는 차단하면 그만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기후는 이야기가 달랐다. 기후와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급변하는 현상들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벌들이 사라졌다는 지난 한 해의 날씨를 돌이켜보았다. 한 여름 늘어나는 폭염일수와 길어지는 장마, 가을철 이상 저온현상과 겨울철 이상 고온현상. 따지고 보니 인간이야 에어컨을 켜거나 옷 한 겹 더 껴입으면 되는 '불편한' 수준의 것들이었는데, 꿀벌에게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었겠다고 생각했다. 40도 이상을 견디지 못하는 꿀벌들은 빽빽이 모여 군집생활을 하는 가운데 더 뜨겁고 길어진 폭염 속에 죽어나갔고, 평소보다 두 배는 길어진 장마 통에 꿀을 구하러 다니지 못해 굶어야 했을 것이다. 한창 곳간을 채워야 할 가을에는 이상 저온으로 몸을 움츠려 충분히 일하지 못했고, 그래서 영양을 제대로 보충하지 못한 벌들이 이상하게 따듯한 겨울에 활동을 하다가 또 얼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16%의 꿀벌들이 한 번에 사라진 것이 놀랄만한 기사가 아니라, 84%의 꿀벌들이 살아남은 것이 어쩌면 더 대단한 기삿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기후변화와 관련된 '위기'의 시간들은 꿀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빙하와 만년설이 녹고 북극곰과 펭귄들이 살 곳을 잃어간다는 이야기는 기후와 관련된 분야에서는 유명하다 못해 이제는 다소 식상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물에 잠겨간다는, 그래서 몇 년 뒤엔 사라진다는 어떤 섬나라들의 이야기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트기류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기습적인 폭설이나 폭우가 잦아지고, 그로 인해 도시가 고립되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한다. 폭염과 이상 건조 현상으로 산불이 장기화되면서 삶의 터전을 빼앗고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냈다는 이야기도 일 년에 몇 차례씩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난 한두 달 사이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기후와 환경에 관련된 뉴스들만 봐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울진에서 난 산불이 10일 가까이 지속되면서 서울 면적의 1/3을 태웠고, 강릉에서는 수십 미터의 모래사장이 침식되어 도로와 건물들이 기울어졌다. 최근에는 관측 이래 가장 심한 열대야 현상으로 에어컨 없이는 잠에 들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와 환경의 문제는 그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발생한 아주 이례적이고 의아한 사건들이 아니라 당장 우리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지구는 가장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고 그에 따른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지구의 자기 복원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인위적이고 전폭적인 노력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푸른 별 지구의 존립과 지구에서의 생존이 불투명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계획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꿀벌이 없어지면서 인류 멸망에 4년쯤 걸릴지 한 30년쯤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멸망을 기다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공룡처럼 인간도 지구를 '한때' 지배했던 존재로서 기억될 수도 있다. 아니 누군가가 기억이라도 해준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다행인 것은 아직 꿀벌이 사라지지 않았고, 빙하가 모두 녹지 않았고, 해수면이 올라 우리 집이 잠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있다. 생각 없이 쓰고 있는 자원들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는데 모두가 노력을 기울인다면 꿀벌 78억 마리쯤 다시 태어나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모두의 관심과 노력을 이끌어내는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것이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통해 유명해진 '사회적 증거의 법칙', 일명 '3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세 명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동참을 이끌어 낸다는 것으로, 심리학에서는 '동조'라는 현상으로 풀이한다. 나와 내 아이들만이라도 기후와 환경을 지키기 위한 어떤 행동을 시작한다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동조를 이끌어내어 관심을 끌고 행동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주변에 세 가정이, 그리고 또 세 마을이 바뀐다면 지역도 나라도 그렇게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부터, 우리 아이들부터 노력한다면 <꿀벌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모두 웃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당장 환경을 위한 무엇이라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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