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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n 20. 2022

인생 초절전 모드

다시 일상, 다시 브런치.




방전이 될까 걱정됐다. 마지막 심지까지 다 타서 바스러질까 두려웠다. 그렇다고 멈출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머릿속 회로에서 긴급하게 특정 부분으로 가는 전력을 차단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과업들은 잠을 줄여도 소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몇 주간 글도 끊고, 책도 끊고, 술도 끊고, 업무를 위한 필수적인 카톡을 제외하곤 지인들과의 대화나 SNS도 끊었다. 인생의 초절전 모드로 돌입했다.


우선순위에 따라 나의 처리 목록에 올라온 과업은 육아, 가사, 대학원 공부, 살기 위해 간간히 했던 체력단련뿐이었다.


끝이 없는 육아와 가사 속에서 혹시. 혹시 내가 번아웃이 되어버린다면 그땐 정말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절대로 심각해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약 두 달간의 초절전 모드로 가정을 지켰고, 번아웃으로부터 나를 지켰고, 대학원 성적을 지켰다. 어제부로 끝난 대학원 기말고사에서 기대만큼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초절전 모드를 종료했다.


사람들과 다시 카톡이나 전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고, 읽고 싶은 책도 빌려다 놨다. 술은 이참에 아예 끊어 시간과 정신의 고정지출을 줄였고, 마지막으로 브런치를 켰다.


글이 없던 터라 새로운 알림 메시지도 없었다.


오랜 훈련에서 복귀해서 막사의 창문을 열고 먼지를 터는 마음으로 '글쓰기'버튼을 눌렀다. 무슨 글을 지어야 할지- 고민하다. 왜 지금까지 글이 없었는지를 먼저 정리해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컸고, 살은 한 10킬로 빠졌고, 사람들은 걸러졌다. 앞으론 한 결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시작된 글쓰기에 벌써 눈썹이 들썩거린다.


살 빠지기 전입니다. 90킬로도 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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