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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pr 29. 2022

파도를 넘는 배의 우선순위

보아야 할 곳을 보는 지혜



배가 흔들리는데 저녁식사를 걱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병에 담긴 꽃을 걱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노트를 주어서도 안된다.


파도를 넘어가는 배가 전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제반 조치들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좌초되면 모든 것이 . 끝이다.


인생이라는 너울이 끊임없이 몰려오는데, 깃발을 높이 올린 '민구호'는 오늘도 파도를 견디고 중심을 잡으며 간신히 나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아가는 것조차 이 배에는 사치일 수 있다. 배가 전복되지 않고 승조원 모두 생존하는 것이 최선이다.


컵이 깨지고, 식량고가 뒤집어지고, 이불과 옷이 다 젖는다고 할지라도. 정신줄 단단히 잡고 견디다 보면-


견디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선장은 그때를 기다리며 배가 뒤집어지지 않게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우선순위만을 고려하며 실용과 실제에 집중을 하며 흘러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로맨스도, 유머도 점점 사라져 가고


사라져 가고 또 희미해져 가고, 뼈만 앙상하게 남고 다크서클 짙은 선원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 어려운 일이다.


아직 너무 어린 막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매우 잔인하고 안쓰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배의 생존과 순항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수 차례 강권했고.


다행히, 집 근처에 괜찮은 어린이집을 찾았다. 파도는 계속되겠지만, 저 멀리에서- 저 수평선 끝에서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아내는 정상적인 시간, 스스로를 돌보고- 집을 돌보고-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찾을 것이고. 나는 그렇게 조금 더 안정된 집으로 퇴근해 더 나은 생활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애들 어린이집 보낸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걱정들이 따라붙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간곡하게 기다리던 아내의 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고 있다.


요지는 '어린이집'이 아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보아야 할 곳을 보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고, 위급할 땐 가장 위급하고 긴급한 그 사항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아마, 아마 다음 달 정도에는 이런 무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호- 승조원 전원 생존. 순항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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