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지만 즐겁고 유익했던 대학원 첫 학기가 끝났다. 잠을 줄이고 점심시간을 투자해가며 강의와 과제, 시험에 진심을 다했고 모든 과목에서 기대했던 좋은 성적이 나왔다.
깨알자랑
직장생활에 육아를 하면서도 일주일에 최소한 7~8시간은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정신적 압박 끝에 맞이한 방학은 발리에 가지 않아도 휴가를 보내고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방학이 끝나면 또 수백만 원의 학비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뒷골을 조여오던 어느 날. 대학원에서 장학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신청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2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한 학기 학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다.
그저 어떤 사람의 한 쪽짜리 자기소개서지만, 성장배경이나 장단점을 고작 서너 줄에 요약해서 적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었다. 어떻게 그 길고 굴곡 있는 삶을 그 몇 줄에 녹일 수 있을까. 그렇다 보니 정말 하얀 페이지를 띄워놓고 지나간 36년을 하나하나 돌이켜보고,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지금의 내가 진짜 잘하거나 정말 부족한 부분은 무엇 일지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되었다.
고작 한쪽, 자소서를 쓰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삶에 대한 반추를 공유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제출하면 그만인 자소서를 브런치에 올려보기로 했다.
[자기소개서]
성장배경
어려서는 IMF로 아버지 사업은 부도 처리되었고 집에는 차압 딱지가 붙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모두 학비를 지원받으며 다녔고, 학원은 한 번도 다녀본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독학했고, 틈틈이 체력단련을 했습니다. 중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성적은 매 시험마다 단 1점이라도 끊임없이 올랐고, 결국엔 목표했던 육사에 입학했습니다. 언제나 남들보다 옷은 허름했지만 나라를 지키고 가정을 다시 세우겠다는 꿈은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여유 있었던 적 없었던 36년의 삶 속에서 결핍이 익숙했고, 결핍 속에서 도전과 노력을 통해 성취의 기쁨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돈도, 백도 없이 살았던 제가 무언가 이뤄내기 위해서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실행능력이라도 필요했습니다. 좋은 운동화가 없어도 일단은 뛰었고, 문제집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풀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데 어쩌면 제가 그렇습니다. 늘 실력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생각보다 행동이 앞섭니다. 그래서 실수와 실패가 잦은 편입니다. 아내는 늘 현실성 없는 저를 걱정해줍니다. 하지만 이상적이지 않으면 영영 발이 묶일 것 같아 항상 꿈꾸고 도전합니다. 그렇다 보니 공무원 월급에 사랑 만으로 네 아이를 키우고 있고, 열정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장래희망
중학교 2학년에 군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을 준비해 장교로 임관했고, 군인인 지금은 어떻게 하면 군에 헌신하고 국가에 기여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관심 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인 국제정치와 외국어에 집중해서 '군 외교관(무관)'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총 쏘지 않고 이기고, 말 한마디로 국토를 수호할 수 있는 외교관이 되기 위해 MBA 과정에 지원했고 '협상'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후회 없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준비된 무관이 되고 싶습니다.
학업계획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의 한 학기를 마쳤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것이 기쁨과 보람이 될 정도로 너무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주대에서 최고경영자과정까지 마치고 싶고, 이후에는 학부시절 전공(국제관계학)을 살려 정치외교학 박사까지 취득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중급 수준인 영어와 아랍어를 갈고닦아 고급 수준으로 향상해 장래희망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싶습니다.
기타
육군 소령으로, 12년 차 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 7년 차에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취미는 글쓰기이며 올해 2월에는 공동집필로 '부모 익힘책'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군생활과 육아, 학업이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