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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l 24. 2022

잠자리 같은 것

글쓰기 말입니다.



마른 가을 하늘에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잠자리 같다. 나 같은 건 관심도 없다는 듯 유유히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글감 말이다.



낮에는 그렇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들을 보며, "저거 이따 잡아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다. 벌써 며칠째 글을 못썼는지 모르겠다. 브런치팀에서는 글을 쓰라며 계속 알림이 뜬다. 나도 브런치팀에 알림을 보내고 싶어 진다. 


"애 넷 키워본 사람?"


퇴근 후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머릿속에선 이미 절전모드를 키라는 알림이 울린다. 꺼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야식으로 긴급 충전을 하고 다시 하늘올려다본다.


좋다. 아직 잠자리들이 날아다닌다.


설거지와 빨래만 정리하고 잠자리채를 들어보기로 한다. 피곤하지만, 글을 못 쓴 지 한참이다. 아이들이 깰까 조심스럽게 한다고 하지만 손에서 그릇이 미끄러졌다. 달그락 소리에 곧장 아이가 깼다.


누구 닮아 이렇게 얕게 자는지, 던 일을 멈추고 른 아이와 아내가 깨기 전에 우는 아이를 안고 둥가 둥가. 둥가 둥가. 둥가 둥가가 얼마나 지났을까. 피곤이 몰려든다.


이제 잠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에너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성급하게 아이를 내려놓으면 이대로 오늘이 끝날지 모른다. 아, 아니다. 벌써 내일이 오늘이 되었다.


맨손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잠자리를 잡듯, 침착하게 아이를 내려놓는다. 초절전모드 경고를 무시하고 집안일을 마저 한다. 두 시를 넘어 세 시를 바라본다. 비로소 집안일이 끝나고 주변을 돌아보니 잠자리 같은 글감들 몇 개가 차분히 내려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아니다, 잠깐만 쉴까. 아침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쉬지 못했다. 잠-깐만 쉬자. 아주 잠깐.


소파에 누워 네이버를 들어간다. 세상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나. 얼굴 위로 핸드폰이 몇 번 떨어지고는 기억을 잃었다.


잠이 들었나 보다. 그러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깼나 보다. 벌써 창으로 어슴푸레한 빛이 들어온다. 핸드폰 충전도 못해놨다. 밤사이 돌아간 식기세척기가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잠자리는 오간데 없다. 오늘도 글쓰기는 실패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괜한 좌절감이 아침부터 꿀밤을 한 대 때리고 간다.

 

내일은 글을 꼭 쓰기로 한다. 내일은 하루만큼 더 큰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날이니까 가능성이 있다. 내 사정은 봐주지 않는 브런치팀의 알림 메시지가 보기 싫어 브런치의 알람을 꺼버린다. 글보단 삶이 먼저니까.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오면 마른하늘에 잠자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그것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책으로 엮을 것. 그때까지 조금만 더 버티며 정신 차리고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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