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쓰는 글인지 모르겠지만, 습관적으로 첫 줄은 띄우고)
글을 쓸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들과 위대한 글들을 보면서 내가 풀어내는 것이 그저 그런 온라인 쓰레기만 늘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글을 접었다. 폈다. 접었다. 바쁘기도 바빴고 피곤하기도 피곤했다. 글을 멈출만한 공식적인 핑계들 몇 개는 언제나 손에 잡혔다.
글을 쓰는 즐거움을 잊은 지 2-3년이 되어간다 (물론 중간에 한 두 편의 글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매일 글을 쓰면서 잠시 멈춰 세상을 바라보고, 자판에 손을 얹고 잠깐 묵상하고, 샤워하듯 솨솨 편하게 써 내려가던 시절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는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고 쩔쩔매는 사이 가정에 충실하지도 못했다. 그 사이 나 자신을 돌보지도 못했다. 아빠들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겠거니- 하면서 입을 닫고 고갤 숙이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내 남은 30대가 2년뿐이었다.
같이 일하는 5년, 10년, 15년 선배들을 보더라도 큰 영감과 감동이 떠오르지 않았다. 야근- 야근- 밤샘- 그 반복 속에서, 그 반복적이고 뻣뻣한 업무에서 어떤 성취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시건방진 생각이. 사실 매일매일 나를 따라다녔다.
평일엔 야근, 저녁엔 한 잔, 주말엔 골프를 치며 가족과는 떨어져 지내는 중견 군인들의 삶이 마을 어귀에 있는 장승처럼 묵직해 보였다. 이런 시절 또 전방에선 거친 시절, 저런 시절, 별별시절 다 견디며 저 자리에 올라간 장군들의 인내심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 인내심이 뛰어난 - 부류의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저런 고민들 속에 장기간 휴가를 냈다. 카페에 가서 책도 읽고, 아이들하고 갯벌도 다녀오고, 집에서 하염없이 미련한 시간도 보내고, 그러다 아내에게 뾰족한 말이 튀어나갔다. 당장에 분위기가 냉랭해졌고, 아내는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혼자 남겨진 집은 생각보다 더 미련한 시간을 초래했다. 그 초대된 미련 속에서 미련을 떨고 있으니 아내가 돌아왔다. 압력밥솥 추가 취취- 도는 소리가 멈추자 아내가 밥을 먹으라며 차려놓은 삼겹살과 두릅 무침이 참 정성스럽게 올라와있었다.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삼겹살 먹고 싶다는 말을 주어 담아 차려놓은 아내의 마음과, 나의 뾰족했던 말과, 미련한 시간과, 향긋한 두릅과, 쫄깃한 삼겹살이 어우러져 아주 초라한 내가 보였다. 아주 부끄러운 삼겹살이었다.
내가 이런 바보 같은 소리를 어디에다가 쓰겠나 생각하다가 브런치 어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래서 또 오랜만에 주머니에 있던 쓰레기를 비우듯 글을 쓴다. 쓰다 보니 더 바보 같고 나약하다. 피곤하고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는 아주 덜 된 인간이다.
그러니 이제 다시 말린 어깨를 피고, 부스스한 수염을 깎고, 침침한 눈을 쨍하게 뜨고 한심해 보이지 않은 척하며 용기 내서 살아보아야 하는 것이 나의 그 어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