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말뿌리 찾기 (1)
우리 동네 골목에는 40년이 넘게 동네를 지키는 곱창집이 있다. 이 집은 아버지의 추억이 살짝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가 재개발되기 전, 우리집으로 통하는 골목 어귀에 이 곱창집이 있었다. 허름한 양철 지붕에 때가 낀 환풍기가 돌아가던 그 집.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곱창의 향기(?)를 내뿜으며 그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돼지곱창 한 그릇을 안주 삼아 소주 한 잔 하는 것이 살아가는 작은 즐거움이었을 터.
저녁나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아주 가끔 그 집에 들러 돼지곱창 한 봉지를 포장해서 사 오곤 하셨다.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는 분이셨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돼지곱창을 손수 끓여 아들들이랑 같이 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술도 좀 사 오시지!
무료한 어느 일요일, 집에는 무뚝뚝한 둘째만 있고, 밥 때는 되고 해서 둘째를 꼬드겨(?) 밖에 나가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뭘 먹을까 두리번거리다 그 집을 보게 되었다. 실로 30년도 훨씬 지나 그 집 곱창 맛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버지께는 받아 먹어보지 못한 소주 몇 잔을 아들 녀석과 주고받으며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몇 년 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곱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말뿌리를 설명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민간 어원’에 가까웠다. 그래서 ‘곱창’의 어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곱’을 ‘구부러지다(曲)’의 의미로 파악하고, ‘곱슬머리’의 ‘곱’과 비교하였는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라고 본다.
곱창의 맛은 바로 ‘곱’에 있다. ‘곱’은 명사이고, 그 의미는 ‘기름(脂)’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기름’은 식용유나 참기름과 같은 기름(油)은 아니고, ‘돼지기름’이라고 할 때의 ‘기름’이다. 한자로는 ‘膏(고)’나 ‘脂(지)’로 쓰는 바로 그 기름이다.
곱창을 전골로 요리하든, 구이로 요리하든, 아니면 볶아서 먹든 맛있는 곱창집에서 사용하는 곱창의 특징은 ‘곱’이 많다는 점이다. 대개 음식점에서는 ‘곱’이 없는 부분은 잘라서 전골로 끓여 팔고, ‘곱’이 많은 부분은 구이로 요리해 판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곱이 있다’, ‘곱이 없다’라는 말을 확인하게 되는데, 만약 ‘곱’이, ‘구부러지다, 구불구불하다’의 의미라면 ‘있다, 없다’라는 이런 표현은 도저히 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물론, ‘구부러지다, 구불구불하다’의 의미로 설명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곱’의 옛말은 지금과 다름없이 ‘곱’으로 표기하는데, 그 의미는 앞서 제시한 한자 그대로 ‘膏(고)’나 ‘脂(지)’로 나타난다.
‘곱창’은 ‘곱’과 ‘창’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곱’은 동물성 기름(굳으면 하얗게 되는 그것)을 말하고, ‘창’은 ‘창자’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곱창’은 ‘기름이 있는 창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곱이 많은 곱창’이라고 했을 때의 ‘곱’은, 드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구이로 요리할 때 곱창이 익기 시작할 즈음 나오기 시작하는 하얀 그것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곱’은 또 ‘눈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눈에 끼는 노폐물, 즉 눈에 끼는 기름’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갖는 말이 곧 눈곱인 것이다.
‘곱창’이 ‘창자에 든 기름’이든, ‘구부러진 창자’든 무슨 상관이리요? 곱창을 안주로 아빠와 나눈 몇 잔의 소주 맛이 아들 녀석에게는 훗날 그 어느 때, 이 아빠를 추억하는 기억의 한 자락에 남으면 그것으로 족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