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돋고 햇살이 비치니

한자의 자원(1): 春

by 광천선생

한자와 한자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가?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의 어휘 실력을 늘려야겠다.”라고 했을 때 탁 걸리는 게 한국어에 한자어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얼마나 많은가? 어떤 조사에 따르면 한국어에는 모두 50만 개가 넘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있는 공식적인 표제어 수는 424,828개). 그중에서 한자어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흔히들 70%가 훨씬 넘는다, 이런 말을 하지만 사실은 70%는 조금 안 되고, 조사해 보니까 69.1%였어요(김지형 2003:378). 이에 비해 순수 한국어, 곧 토박이말이라고 하는 고유어는 약 25% 정도라고 합니다. 여기에 서양 외래어 등이 합쳐져 한국어의 50만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하려면, 한국어 어휘를 많이 알려면 당연히 한자어를 많이 알아야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특히 한자어는 고급 지식을 형성하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경영학, 경제학, 무역학, 법학, 사회학, 철학 등 대학교의 주요 전공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교재를 대상으로 전공 용어의 어종별 조사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김지형 2010). 그랬더니 놀랍게도 한자어가 거의 모든 전공에서 90%가 넘었습니다. 이 정도로 매우 높은 비중으로 한자어가 각 학문 영역의 전공 용어를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어떤가 궁금해서 중학교의 과학 교과서를 조사해 보니 주요 용어의 약 85%가 한자어거나 한자가 들어가서 만들어진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전문 분야에 대해서 공부하거나 아니면 고급 지식과 관련된 것들을 익히려면 한자어를 모르면 안 된다, 이런 논리가 성립됩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잘하려면 한자어를 공부해라, 이런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한자어를 쉽게 안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을까요? 왜? 한자어라고 하면 어떻게든 한자가 들어가서 만들어진 말이니 기본적으로 한자를 알아야 합니다. 한자를 알면 보다 쉽게 한자어를 익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자어든 고유어든 외래어든 모두 그냥 똑같이 모르면 사전을 찾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자를 안다면 그 한자가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단어들을 보다 쉽게, 물론 그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익힐 수 있는 요건 하나를 갖추게 됩니다.


재미있게, 이야기로 익히는 한자 공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어도 배우기 어려워 죽겠는데 한자까지 공부하라고? 난 못 해! 이런다면 할 수 없지만,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좀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습득하고 싶다면 한자를 익히는 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자는 어떻게 익히는 것이 좋은가? 공부에 왕도(王道)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좀 남다른 방법은 없을까? 어려운 공부, 이왕 할 거라면 좀 재미있게, 좀 쉽게 했으면 싶습니다. 그래서 좀 색다르게 한자와 한자어 공부를 해보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자의 자원(字源, 뿌리)을 추적하고, 그 속에 담긴 세계를 파헤쳐 보자!

한자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사람들은 한국 민족의 조상들이 만들었다, 이런 주장을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한자(漢字)는 중국인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고 오랜 세월에 걸쳐 사용해 온 글자입니다.

한자는 뜻글자입니다. 그래서 한자 하나하나에는 소리도 들어있고, 뜻도 들어 있습니다. 한국어의 문자인 한글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고 소리를 나타낼 뿐인데, 한자는 소리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안에 의미까지 담고 있습니다. 글자에 뜻을 집어넣었어요. 그래서 표의 문자(表意文字)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자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가? 다시 바꿔 말하면, 특정 글자[漢字]가 어떤 의미를 표상하는가? 이것은 그 글자를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이 거기에 담고자 했던 의미, 즉, 사용자들이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 세상과 사물을 인식한 결과가 글자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자를 익힌다는 것은 단순히 그 한자의 발음과 뜻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던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눈까지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들의 세계관까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자에는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던 사람들의 인식과, 그들의 생활 방식과, 그들의 역사와, 이런 것들이 다 녹아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한자의 구성을 이해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다 보면 흥미롭게 한자를 익힐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한자 공부의 왕도는 아닐 테지만, 한자가 형성되고, 한자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곳에서 펼쳐 볼까 합니다.


, 고대로부터 중국 사람들은 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봄은 한자로 춘(春)입니다. 현재 봄을 표현하는 글자는 춘(春)자이지만, 처음부터 이 글자가 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둔(屯)이 봄을 의미하는 글자였습니다. 이 글자는 진칠 둔(屯)자입니다. ‘군대가 주둔하다’라고 할 때의 ‘둔(屯)’입니다. 둔(屯), 원래는 이것이 봄을 나타내는 글자였습니다. 이 글자는 ‘둔’ 말고도 ‘준’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이럴 때에는 ‘어렵다’, ‘고생하다’, ‘험난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둔(屯)자의 갑골문과 금문 형태

이것은 ‘둔(屯)’자의 갑골문금문의 형태입니다. 이 글자를 보면 가로로 짧은 획이 있고, 그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는 세로획이 있고, 그 위쪽에서 물방울처럼 맺히는 모양입니다. 가로로 그어진 획은 땅거죽, 아래쪽에서 위로 뻗어 올라가는 세로획은 뿌리에서 새싹이 땅거죽을 뚫고 올라가는 모양이고, 그리고 위에서 풀잎으로 맺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자는 땅을 뚫고 올라오는 풀이나 나무, 즉 초목의 모습입니다. 모양을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이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봄을 나타내는 글자로 쓰이다가 어느 시기에 이 ‘둔(屯)’자가 ‘진치다’, ‘군대가 주둔하다’, 이런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글자를 대신해서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춘(春)’자입니다.

春13.png 춘(春)자의 다양한 갑골문 형태

‘춘(春)’자의 갑골문 형태를 자세히 보면, 풀[屮]이나 나무[木]가 있고, 둔(屯)자가 있습니다. ‘풀’이나 '나무'는 의미 요소이고, ‘둔(屯)’자는 의미와 함께 발음을 나타내는 요소로 보입니다. 여기에 어떤 형태는 ‘해[日]’를 추가해서 봄의 의미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햇살을 받아서 땅거죽을 뚫고 새싹이 나와서 풀과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룬다, 이런 뜻이겠죠?

이 글자는 시간이 흘러 다음과 같은 금문의 형태로 바뀌면서 다소 간략해집니다.

春14.png 춘(春)자의 금문 형태

그림을 보면 풀과 땅거죽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 그리고 해가 보입니다.

금문의 시기를 지나 진(秦)나라 때 문자 통일을 위해 정비된 공식 서체가 소전(小篆)입니다. 이것을 한나라 때 허신(許愼)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저술하여 집대성합니다. 이 책은 모두 9,353자(파생자까지 포함하면 11,520자)를 수록하고 있는, 중국 최초의 한자 자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전에 이르러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의 한자로 정착하게 됩니다.

春15.png 춘(春)자의 소전과 해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춘(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春:蠢,動也。从艸從日從屯。屯,難也。春者,萬物出難而生也。
춘: 꿈틀거림, 움직임이다. 풀과 해와 둔(屯)으로 구성된다. 둔은 어려움이다. 봄은 만물이 어려움을 뚫고 나오는 것이다.

봄은 초목이 해[태양]의 기운을 받아 움트는 모습을 그린 것이며, 어려움을 뚫고 생명이 나오는 때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갑골문(甲骨文)에서부터 금문(金文), 소전(小篆), 해서(楷書)에 이르는 춘(春)자의 대표적인 자형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春16.png 춘(春)의 자형 변천

춘(春)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한자어는 많습니다. 그중에서 비교적 자주 쓰이는 단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어보겠습니다.

이렇게 한자를 익히는 것이 재미있는 일일까요? 아니면 너무 어려워 골치 아픈 일일까요?^^


유튜브 채널, 김지형의 한국어마을 : 春에 숨은 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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