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1) : 제1항~제3항
제1항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 규정은 한글 맞춤법의 대상과 기본적인 원리를 제시한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의 대상 : 표준어
한글 맞춤법은, 음성 언어인 국어(한국어)를 문자 언어인 한글로 적는 방법을 규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지역별로, 계층별로 매우 다양합니다. 쉽게 우리말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많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렇게 다양하게 다르고 많은 우리말을 그대로 적는다면 글을 통한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겠지요? 그래서 우리말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제정된 것이 바로 표준어입니다. 한글 맞춤법은 바로 이 표준어를 한글로 적는 방법을 정한 어문 규정입니다.
표준어는 <표준어 규정> 제1항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별도로 하겠습니다).
한글 맞춤법의 표기 원리 : '소리대로', '어법에 맞도록'
한글 맞춤법의 기본적인 원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리대로'라는 <음소주의 표기법>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형태주의 표기법>의 원리입니다.
소리대로
"소리대로 적"는다는 말은 국어를 그 발음대로 충실하게 적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글이 음소 문자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규정입니다.
아이 [아이], 오빠 [오빠], 지붕 [지붕]
'아이'는 그 형태와 발음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발음대로 적어도 다른 단어와 의미를 구별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한국어는 이와 같이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문제는 '오빠'와 '지붕'처럼 다른 형태로 적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입니다.
'오빠'는 '옵바'로 적을 수 있고, '지붕'은 '집웅'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빠'를 '옵바'로 적을 때 '옵'과 '바' 각각의 형태에 의미가 없어 구분하여 적을 필요가 없습니다. '옵'이나 '바'에 특별한 의미가 들어 있다면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구분해서 적을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깨(*엇개), 토끼(*톳기)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붕'은 '집'과 '-웅'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웅'이 쓰이는 말이 없으므로 굳이 각 형태를 밝혀 적지 않습니다. 부사 '너무'나 조사 '나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는 '넘다'와, '나마'는 '남다'와 의미적으로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상관성을 찾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음소주의는 음소와 문자 사이에 일대일 대응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배우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한글은 음소 문자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 맞춤법은 '소리대로'라는 규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규정을 제시하고 있을까요? 한국어는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형태가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발음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리대로'만 적어서는 여러 형태들이 동일한 뜻을 지니고 있음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규정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법에 맞도록
우리말은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과 조사, 어간과 어미가 결합할 때 그 발음이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소주의 표기만으로는 완전한 문자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넋 : 넋+이 → [넉시], 넋+도 → [넉또], 넋+만 → [넝만]
소리나는 대로만 쓰게 되면, 똑같은 '넋'을 '넉ㅅ', '넉', '넝'처럼 각기 다르게 표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문자만 보아서는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게 되어 문맥을 몇 번이고 읽어서야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졸이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생선을 조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여기에서 '졸이다'와 '조리다'는 똑같이 [조리다]로 발음됩니다. 만약 소리대로만 적는다면 두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장애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소리나는 대로 적어서 의미 파악에 문제가 없는 것은 발음 그대로 적기로 하고, 그렇게 적었을 때 문제가 되는 것들은 '어법에 맞게' 적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태주의 표기법은 본래의 형태를 밝혀 적기 때문에 음소주의 표기법보다 복잡한 문법 지식이 필요합니다. 언어의 규칙성에 따라 표기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읽기에 매우 불편합니다. 따라서 <한글 맞춤법>은 실제의 발음과 약간 다르더라도 소리와 형태에 관한 규칙을 정해 그에 맞게 적도록 한 것입니다.
언어는 화자와 청자 간의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효율적인 언어 사용을 위해서는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 두 가지 측면에 모두 고려된 맞춤법이 필요합니다. '소리대로 적'는다는 것과 '어법에 맞도록' 적는다는 것이 일견 상충되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한 편의 주장에만 얽매일 수는 없습니다.
<한글 맞춤법>은 지금도 생산적이어서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경우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원형을 찾을 수 없는 경우를 서로 구별하여 처리함으로써 문자 생활의 편의를 도모한 것입니다.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외국인뿐 아니라 우리말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맞춤법 규정에서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띄어쓰기이다. 이 어려운 띄어쓰기는 왜 필요한 것일까?
(1) 나물좀줄래? → 나 물 좀 줄래? → 나물(콩나물, 고사리나물) 좀 줄래?
(2) 돈이만원이들었다. → 돈이 만 원이 들었다. → 돈 이만 원이 들었다.
(3) 할머니가죽을잡수신다. → 할머니가 죽을 잡수신다. → 할머니 가죽을 잡수신다. (???)
(4) 장비가말탔다. → 장비가 말(을) 탔다. → 장비 가말(가마+ㄹ) 탔다. (???)
만약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1)과 (2)처럼 서로 다른 뜻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3)과 (4)처럼 정말 이상한 문장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띄어쓰기는 효과적으로 의미를 변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띄어쓰기를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말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을 별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과 (2)의 예에서 띄어 쓰지 않은 문장을 자신이 생각하는 뜻으로 읽어 보면 자연스럽게 띄어 써야 할 부분에서 순간적으로 멈추게 된다. 이것을 휴지(休止, pause)라고 하는데, 바로 그 멈추는 부분을 글로 쓸 때에는 띄어 쓰면 된다. 물론 이 멈춤이 늘 엄밀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글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글자 수를 기준으로 쉬거나 띄어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문장 속에서 서로 의미가 구별되는 ‘단어’를 기준으로 순간적으로 멈추게 된다. 실제로 띄어쓰기 원리는 간단하다. 단어별로 띄어 쓰는 것이다. 그런데 <한글 맞춤법>에서는 “모든 단어는 띄어 쓴다.”고 하지 않고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어 중에서도 띄어 쓰지 않는 것도 있다는 말이 되는가? 그렇다. 학교 문법에서 단어로 인정되는 것 중에서도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조사’이다. 조사는 단어로 인정되지만 자립성이 약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앞의 말에 붙여 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무엇이 단어인지 아는 일이다.
제3항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는다.
언론, 건축, 운동 경기, 의상 제작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외래어가 쓰인다. 지구촌 시대에 외래어를 전혀 사용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을 고유어로 바꾸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각 없이 우리말보다 외래어 사용을 선호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을 ‘외래어’라고 한다
(1) 주택 리모델링이 유행하면서 가구 판매도 늘고 있다.
(2) 아까 고속버스 *터미날에서 본 남자 정말 *핸썸하지 않니?
(1)의 ‘리모델링’과 (2)의 ‘핸썸하다’는 ‘구조 변경’, ‘잘생기다’라는 한국어 단어가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리모델링'과 '핸썸하다'를 우리말로 인식하는 사람은 아직 없을 것이다. 반면 (2)의 ‘터미날’은 ‘종점’, '정류장'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마치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쓰인다. 일반적으로 ‘터미날’은 외래어이고 ‘리모델링’과 ‘핸썸하다’는 외국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 속에 사용되는 외래어를 한글 자모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규정을 <외래어 표기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표기법에 따르면 (2)의 ‘터미날’은 ‘터미널’, ‘핸썸하다’는 ‘핸섬하다’로 표기해야 한다.
그런데 왜 외래어가 아닌 ‘핸섬하다’까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을까?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별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처음에 외국어이던 말도 많이 사용되다 보면 외래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은 본래 외래어를 한글 자모로 표기하는 규정이지만 외국어 표기까지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