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발레의 인연을 말하고자 하면 아주 옛날 20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집은 내가 하고 싶은 거를 다 해줄 만큼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 많은 걸 배우고 알고 싶어 하는 엄마 덕분에 많은 체험을 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친구와 어떤 학원을 가보라고 했다. 거기는 발레, 한국무용, 장구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가서 그 3가지를 다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는 엄마의 질문이 있었다. 나는 나한테 그런 게 맞는 옷인지 그 당시부터 약간 낯 섬을 느꼈지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무척 컸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직접 본 건지 아니면 내 머릿속 상상 속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룻바닥에 나는 앉아있었고 내 또래의 친구들이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마음을 감추며 바라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쨌든 발레를 배우지도 않았고 발레슈즈 한번 신어보지도 못한 첫 번째 발레와의 만남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초등학교 내내 난 발레 배울 ‘뻔’했었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발레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는데 30대가 된 지금 친구가 발레에 푹 빠져있는 게 아닌가! 그 친구는 나를 비롯한 우리 무리 친구들에게 매번 발레 전도를 했다. 그리고 나는 못 이기는 척 두 번째 발레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의욕적으로 가게 된 발레학원에선 수강생들이 내가 원하는 모습(발레복을 차려입고)이 아닌 그냥 레깅스에 반팔티를 입고 유치원생들은 오전에 수업하고 저녁에 한 타임만 성인반이라서 1년을 한 사람과 1개월을 한 사람이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시간과 물리적인 거리를 다 고려한 선택이라 감수하고 2달 정도 다녔다. 처음 갈 때는 음악과 몸을 늘려주는 동작들이 정말 재미있었지만 1년 이상 한 사람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게 문제였다. 비교가 되었고 나 스스로 못하니까 재미가 없어졌다. 선생님도 비교를 하면서 가르쳤다. 나를 위한 배려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고 내가 이러면서까지 이걸 배워야 하나 하는 아주 어른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그만뒀다. 또 1년의 시간이 흘렀고, 코로나 19로 인해서 걷기 운동만 열심히 하던 차에 인스타에서 우연히 동네 발레학원을 알게 되었다. 계속 인스타에서 올라오는 피드를 보면서 ‘할까 말까, 다시 해볼까?’’아니야. 나랑 안 맞았잖아’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다시 시작하기엔 용기도 필요했다. 작년에 발레를 배운다고 할 때 주변 사람에게 발레 한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어느샌가 조용히 발레 하지 않는 모습을 봤을 그들이 내심 신경 쓰였다. 그리고 ‘이제 발 레안 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발레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너무 어렵고, 나는 너무 뻣뻣해서 발레 못하겠어’라고 구구절절 핑계 아닌 핑계, 합리화를 하면서 말했던 순간들도 떠올랐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그래도 가장 젊은 지금 하지 않으면 정말 평생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조용히, 슬그머니 다시 새로운 발레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새롭게 다니는 발레학원은 전이랑 비교하면 훨씬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있었다. 왜 작년에는 여기를 못 봤을까?’ 내가 원하는 단계별 수업이었고 비기너들이지만 발레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나도 처음으로 레오타드, 스커트, 스타킹, 슈즈를 장만했다. 집에서 입어보고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에 자신감이 떨어졌지만 학원 가서 보니 다들 비슷했다. ㅎㅎ
라운드 숄더에 거북목이면서 키도 작은 내 마음속의 나는 발레가 무척이나 하고 싶었나 보다. 첫 수업을 마치고 ‘지금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너무 재밌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 낸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온몸은 알이 배겨서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움을 느끼지만 발레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참 다행이다. 앞으로 나의 발레 인생에 어떤 굴곡이 올 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