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존재한다.

[REVIEW] 4.3/5점

by JMJ

질문과 소통 그리고 언어의 자의성


영화 <컨택트> 원제는 'ARRIVAL'이다. 'ARRIVAL'은 항구나 육지에 닿다 또는 도착이라는 의미이고, 그렇게 외계인은 지구에 도착한다. 루이스는 칠판에 쓰인 수학 공식들을 지우고 'what is your purpose on earth?'라고 쓴다. 루이스는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단어를 주고받고, 그들이 질문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을 알아야 의도를 파악하고 목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의 가장 작은 단위인 단어에서 질문은 시작하고 소통은 가능해진다.


7개 다리를 가진 외계인 헵타포드는 루이스에게 "무기를 사용하라 use weapon"고 집게손으로 보여준다. 군대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공격태세에 들어간다. 헵타포드가 말한 'weapon'을 군대는 무기라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루이스는 도구라는 뜻(기의) 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유를 묻자 루이스는 캥거루 'kangaroo'라고 대답한다. 문명인이 대륙에 도착했을 때 토착민에게 저 동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토착민은 캥거루, 즉 우리도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문명인들은 '모른다'를 '캥거루'라는 '동물 이름'으로 이해한다. '캥거루'라는 표현(기표)에는 '모른다'와 '동물 이름'이라는 두 가지 의미(기의)가 있다. 하나의 기표에 여러 개의 기의들이 있고 이는 대화 중 임의로 결정되는데 이를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한다. 루이스는 'weapon'의 두 가지 기의를 말하기 위해 캥거루 예를 든 것이다. 문명인과 토착민의 소통이 미흡한 것처럼 헵타포드와 지구인도 소통이 불완전한 하기 때문에 캥거루에 관한 언어의 자의성이 발생한 것이다.



두 개의 시퀀스를 연결하는 대사


"But now I'm not so sure I believe in beginnings and endings. / there are days that define your story beyond your life, like the day they arrived."


영화 오프닝에서는 한나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시퀀스를 진행된다. 루이스는 눈물을 흘리며 어둡고 긴 병원 복도를 힘 없이 걸어다. 어두운 복도를 걷는 루이스 머리 위로는 네모난 흰빛 전등이 켜져 있다(이하 '한나 시퀀스'). 검은 화면으로 디졸브 되고 다음 시퀀스에서 루이스는 어두운 학교 건물 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루이스는 떠들썩하게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소란에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없이 지나간다(이하 '학교 시퀀스')


검은 화면이 디졸브 되고 루이스는 "그런데 지금은 그 시작과 끝에 대한 확신이 없구나"라고 말한다. 다음 '학교 시퀀스'에서 루이스는 "네가 살았던 삶을 넘어 네 이야기를 정의해 주는 날들이 있어. 그들이 도착했던 날처럼 말이야"라고 말한다. 검은 화면에서 '확신이 없다'지만, '학교 시퀀스'에는 그들이 그날 왔음을 확인하는 의미를 전달한다. '한나 시퀀스'와 '학교 시퀀스'는 위에서 기술한 "그런데 지금은... 확신이 없다... 정의해 주는 날들... 그들이 도착했던..." 대사로 인다. 그래서 '한나 시퀀스'와 '학교 시퀀스'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연결된다.



오프닝의 자의성과 기의적 혼란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 '한나 시퀀스'가 미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디졸브 된 검은 화면을 중심으로 '확신이 없다'와 '그날이라는 확인'으로 대사는 두 개로 나누어진다. '한나 시퀀스'와 '학교 시퀀스'를 하나로 연결하던 "... 확신이 없구나 네가 살았던 삶을..." 대사는 마지막 반전으로 대사는 나누어지고 "... 확신이 없구나 / 네가 살았던 삶을..."로 각각의 시퀀스는 독립한다. 루이스 지금을 말하지만 '한나 시퀀스'는 미래고, '학교 시퀀스'는 과거인 것이다. 스포일을 하자면 루이스는 이미 헵타포드 언어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기억으로 flat 하게 사고하고 모든 내레이션은 현재형이다. "한나 시퀀스"'학교 시퀀스'를 보는 관객은 인과관계로 연결된 내러티브로 이해하지만 두 시퀀스는 미래와 과거라는 각각의 이야기이다. 결국 관객들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캥거루라는 기표처럼 과거와 미래라는 기의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루이스는 왜 무관심하고 무덤덤한가?


'한나 시퀀스'와 '학교 시퀀스'가 독립된 미래와 과거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발생한다. 왜 루이스는 '학교 시퀀스'에서 그토록 무관심하고 무덤덤하게 보일까?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과 상실감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한나 시퀀스'가 과거와 미래라는 기의적 혼란을 일으켰다면, '학교 시퀀스'에서도 두 번째 캥거루가 등장한다. 루이스는 어두운 공간을 지나 강의실로 들어가고 바로 강의를 시작하는데 이때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멈칫하며 "뱅스 교수님, 뉴스 좀 켜 주시겠어요?"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우주선이 각 나라 12개 도시에 나타난 뉴스를 멍하니 쳐다본다. 이후 비상벨이 울리고 루이스는 "이제 휴강해야겠구나"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루이스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차분히 밖으로 걸어 나가고 사람들은 그녀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다닌다. '학교 시퀀스'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무관심과 무덤덤함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루이스가 강의할 때 "포르투갈어는 갈리시아 왕국에서 유래가 되고 다른 로맨스어와 소리가 다르고 중세시대에는 언어가 예술로 표현되었다."라고 말한다. 루이스를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은 그림자가 지고 배경은 어둡다. 그늘지고 어두운 화면은 1인칭 루이스 관점을 보여주고, 사람과 세계에 관한 루이스의 관심을 보여준다. 루이스는 세상과 사람보다 언어 속에 사는 사람이다. 외계인 도착 뉴스가 나오고, 사람들이 복도를 뛰어다녀도 사람과 외계인 그리고 사건에 대한 그녀는 무관심하고 무덤덤함을 알 수 있다. 신기할 만큼 그녀는 외계인 출현과 사건에 대해 관심이 없다. 루이스 대사에 언급된 '갈리시아 왕국'은 갈리시아 포르투갈어, 라틴어, 아스투리아스레온어, 카스티야어를 사용했었고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라틴어를 사용하고 1833년 멸망한다. '갈리시아 왕국'은 4가지 서로 다른 언어 사용으로 기표들과 기의들은 뒤섞여서 언어의 자의성이 발생한다. 루이스는 세계와 사람들 속에서 의미를 느끼기보다는 언어 체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 아닐까? 루이스는 외계인보다는 외계어인 헵타포드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는 사실에서 루이스의 무관심과 이유를 알 수 있다.



구조주의적 주체와 타자를 기억하는 주체


사피어-워프 가설은 영화 <컨택트>에서 언급된다. 사피어 워프는 소쉬르 이후 구조주의 언어 이론가이다. 초기 구조주의는 언어의 자의성과 언어적 체계(랑그)에 의해 인간이 규정된다. 행위하는 실존적 주체 이후 구조주의로 넘어가면서 주체는 언어로 환원되고 언어체계에 종속된다. 하지만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사피어 워프는 언어가 인간의 세계관과 인식 방식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실존주의부터 구조주의까지 주체는 언어체계로 환원되는 듯 하지만 후기 구조주의 철학에서 주체는 언어에서 미끄러지고 분열되고 새로운 담론이 요구된다.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언어 체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루이스의 삶은 구조주의적 주체와 중첩된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와 접촉하고, 비선형적 언어를 습득하고, 완전한 기억을 가진 주체로 복원한다. 인간의 자아는 의식을 가지고 의식은 기억에 의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불완전해진다. 이성적 주체는 흔들리지 않는 합리적 통일성을 가지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흔적들의 집합에 가깝다. 베르그송은 기억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지만 기억에 한정된 연구이기 때문에 근대 이후 주체가 가야 할 길로 제시되기에는 요원하다. 그러나 루이스가 헵타포드 언어를 습득하고 flat한 완전한 기억을 가진 주체로 복원된다는 설정은 이론적 쾌감과 영화적 재미를 준다. 언어와 운명이라는 키워드는 <컨택트>를 영리하고 매력인 영화로 어필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존재한다.


<컨택트>가 가진 진정한 매력은 인간을 완전한 기억을 가진 주체로 복원시키는 것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는 점이다. 완전한 기억을 가진 초능력자가 전쟁을 막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컨택트>는 휴머니즘을 갖춘 슈퍼 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컨택트>의 미덕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생성되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루이스가 기억하는 사람들, 이안이 기억하는 루이스 그리고 한나가 기억하는 가족의 기억을 따라가면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루이스는 헵타포드가 자신에게 언어를 전달하듯 한나에게 손가락으로 장난치며 "내 집게총이 널 잡으러 간다. 잡히고 싶어? 도망가는 게 좋을 걸."이라고 말한다. 한나는 보안관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있는데, 한나의 다리 2개, 인형 다리 4개 그리고 말 얼굴 1개까지 총 7개 다리이며, 이는 헵타포드와 닮아있다. 한나는 웃으며 재미있게 들판을 뛰어다닌다. 루이스가 집게총 모양으로 손짓하는 장면과 영화 중간 헵타포드가 "무기를 사용해라"라고 손 뻗는 장면이 중첩된다. 헵타포드가 루이스에게 '무기'를 말하고, 헵타포드 모습으로 보안관 옷을 입은 한나에게 루이스는 '권총'을 말하는데, 여기서 무기는 무기가 아니라 서로를 끌어당기는 '선물'이다. 다음 장면에서 화면 중앙에 루이스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잡히고 한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지른다. 한나가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루이스는 한나가 운명으로부터 도망가길 바라는 동시에 자기 옆에 있길 바란다. 루이스가 영화 오프닝에 한나에게 'you better run'과 'come back to me'라고 말하고 한나의 죽음 시퀀스에 반복되어 나타나고 루이스의 뒷모습은 희미하다. 루이스는 운명에 순응해야 할지 벗어나야 할지 확신할 수 없다. 루이스는 자신의 마음(기의)을 모른 채 한나(기표)를 따라다닌다. 막 태어난 한나를 안을 때 루이스의 왼손 약지에는 금반지가 반짝인다. 루이스와 한나는 처음과 끝이 이어진 변하지 않는 금 같은 관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헵타포드는 루이스에게 비선형적 동그라미 형태의 언어를 선물한다. 헵타포드와 루이스 그리고 한나는 서로가 동그랗게 묶여 있다.


사실 영화 중간까지 이안과 루이스는 특별한 로맨스가 없다. 하지만 외계인이 떠나고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이안이 루이스를, 루이스가 이안을 서로 어떻게 기억하는지 알 수 있다.


이안 : "괜찮아요? 뭐겠어요? 별에 관한 얘기예요."

루이스 : "만약 당신 인생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게 된다면 뭔가를 바꾸겠어요?"

이안 : "아마도... 느끼는 걸 더 자주 말하려 하겠죠. 모르겠네요... 내가 기억하기에 내 머리엔 온통 별에 대한 생각뿐이었어요. 그랬던 내가 가장 놀란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요? 그들을 만났을 때가 아니에요. 당신을 만났을 때에요." (이안과 한나는 서로 포옹을 한다.)

루이스 : "당신을 안았을 때 얼마나 좋았었는지 잊고 있었네요."


위 대사에서 이안은 지금 느끼는 게 중요하고 하늘의 별보다 아름다운 별이 루이스라고 말한다. 이안은 지금을 느끼며 루이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반면 루이스는 이미 이안을 알았고, 이안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잊고 있었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이안을 포옹하고, 앞으로 서로가 어떻게 사랑할지 알고 있으며, 어떻게 서로 헤어질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한나가 태어나고 죽을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이안과 루이스는 서로를 기억한다.


마지막 미래를 회상하는 시퀀스에서 한나가 그린 그림에는 이안, 루이스 그리고 새장이 있다. 엄마, 아빠, 새장이 그려진 그림은 한나의 기억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새장이 있는 공간은 헵타포드 우주선 내부이다. 영화 초반 우주선에 진입하는 장면에서 루이스, 이안 등은 신생아가 태어날 때와 같은 피부톤인 주황색 우주복을 입고 어두운 우주선 통로를 따라간다. 그들의 머리는 아래로 향해 있고 우조선 내부 끝에서 밝게 빛나는 헵타포드를 바라보고 있다. 밝은 빛과 어두운 통로는 대조를 이룬다. 루이스는 새장이 있던 우주선 내부에서 헵타포드와 컨택하고 완전한 기억을 가진다. 루이스, 이안 그리고 새장을 그린 그림은 헵타포드도 있는 우주선 내부이고, 한나의 그림은 우주선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사실 헵타포드는 모든 걸 알고 지구에 왔다. 3,000년 후 지구인이 자신들을 도울 것이고 루이스를 만나고 그녀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알고 있다. 3,000년 후 루이스가 없는 지구에서 지구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헵타포드를 도울까를 생각하면 결국 비선형적 언어를 습득한 루이스가 출판회를 통해 외계 언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헵타포드를 돕는 시작이 아닐까 추측한다. 선형적 사고를 하는 인간은 헵타포드에게 목적을 묻지만 비선형적 사고를 하는 헵타포드는 인간에게 기록을 요청한다. 인간이 불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록한다. 만약 인간이 망각하지 않는다면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도 죽고 이 모든 사실이 3,000년까지 전달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하다. 루이스가 출판한 <우주의 언어>가 후대까지 지속된다면 헵타포드가 기억하는 타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전달되고 헵타포드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다.

외계어를 궁금해하고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루이스는 완전한 기억을 얻고 전쟁을 막는다. "의사소통 사이의 함정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 전에는 의사소통도 이해할 수 없다"라고 이안은 말한다. 결국 소통은 타인과 함께 하는 서로를 기억하는 행위이다. 루이스가 회상하는 기억 속 한나는 "슬퍼하지 않아요. 이건 그냥 대본이에요. 실제가 아니고요."라고 말한다. 루이스는 유한한 인간이고 완전한 기억은 앎이다. 그녀에게 앎은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루이스는 지금 자신이 아는 미래를 선택하고 모든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