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케인> 하나의 유령이 자본주의를 떠돌고 있다...

오이디푸스라는 유령이 [REVIEW] 5/5점

by JMJ

들어가며


영화 <시민케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평론가, 감독, 영화학도 등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추천하는 올타임 넘버스다. 1941년 개봉한 흑백영화가 지금까지 '위대한'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보지 않았던 <시민케인>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밀린 숙제 하듯 보고 영화평을 쓰게 되었다. 20대 호감을 느꼈지만 가까이하지 못했던 짝사랑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녀는 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찬사를 받을까? 지금은 어떤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말할까? 시민케인에 대한 평을 대략 살펴보았지만 구체적으로 왜 시민케인이 위대한 영화인가라는 설득력 있는 글은 없었다. 마치 위대해서 뛰어나고, 그래서 훌륭하고, 다시 대단하다는... 의미가 지연되고 반복되는 기이한 현상은 기표의 그물이 의미를 구성하는 묘한 상황을 경험하게 했다.


이런 상황이면 이제는 한번 써봐야겠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나는 어떻게 풀어갈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단평 A4 4장 정도 분량으로 처음 쓴 단평이고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리뷰를 썼기 때문에 지엽적인 부분들은 과감하게 가지를 쳤다. 또한 주제와 관련 있지만 모두 다 엮기에는 능력과 노력이 닿지 않아 가능한 선에서 선별해서 평론에 담았다. 평론은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절감는 글쓰기다. 그래서 '우리 다시 만나요' 언제나 유효한 예약이다.


CITIZEN KANE? CANE! 그리고 오이디푸스



영화 <시민 케인 Citizen Kane> 주인공 이름은 찰스(Charles)고 성은 케인(Kane)이다. 1868년 어머니 메리케인이 하숙비를 대신해 받은 땅에서 금광을 발견한다. 메리케인은 금광으로 얻은 재산을 은행에 위탁하며 케인의 양육(foster)을 은행가 대처에게 맡기고 25세 이후 재산을 양도할 수 있게 계약(contract)한다. 케인은 다른 사업에 손을 될 수 있었지만 신문사 인콰이어(Inquirer)를 인수하고 옐로페이퍼로 부를 축적한다. 이후 선거에 출마하지만 내연녀인 수잔과의 스캔들로 낙선하게 되고 수잔과 결혼한다. 25살 이후 케인의 삶은 산업혁명 시기 시민(citizen)계급이 걸었던 길과 동일하다. 산업혁명 시기에 자본을 축적한 시민 자산가들이 등장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참정권을 요구하는 부르주아 시민계급은 정치에 참여한다. 마찬가지로 케인도 자본을 획득하고, 신문사 Inquirer를 소유해서 자기 목소리(진실과는 무관한)를 내고, 이후 정치에 참여한다. 그래서 <시민 케인>의 시민은 자본주의 속 시민 계급으로 읽을 수 있다.


창문에 불이 켜지고 눈보라가 내리고 케인은 스노우볼을 손에 잡고 있다. 수염이 있는 남자의 입이 클로즈업되고 로즈버즈를 읊조린다. 케인은 손에 들고 있던 스노우볼을 놓치고 스노우볼은 아래로 떨어지며 깨진다. 그리스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며 장님이 되어 테바이에서 추방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영화 <시민 케인> 첫 장면은 오이디푸스에게 신탁이 내려지는 이야기와 닮아있다. 또한 케인(Kane)은 케인(Cane)과 발음이 같아 지팡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은 절룩거리는 사람이고 오이디푸스는 발에 상처가 나서 발이 부은 자라는 뜻이다. <시민 케인>은 제목과 시작에서 근대 자본주의 속 오이디푸스 이야기라는 걸 유추하게 하고, 로즈버드라는 알 수 없는 신탁은 <시민 케인>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조우한다.


CHARLES FOSTER, KANE DIES



<시민케인>에서 찰스가 ‘케인 부인의 여인숙(Mrs. Kane’s Boarding House)‘이라고 쓰인 간판에 ‘눈뭉치를 던지면’ 미세스 케인(Mrs. Kane) 단어 옆에 눈뭉치가 딱 하고 맞춰지고, 찰스는 혼자서 마당에서 눈싸움을 한다. 실내에서 어른들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장면은 <시민케인>을 이해하는 여러 단서를 제공한다. 영화 시작에 나오는 스노우볼 안에는 메리케인 여관을 닮은 집과 눈사람이 있다. 찰스는 혼자 낮은 언덕에서 즐겁게 썰매를 타고 창가에 있던 엄마에게 눈뭉치를 던지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는 이를 받아 창을 통해 실내로 들어온다. 화면은 ‘찰스의 아버지(중경) / 창문 밖 찰스(원경) / 은행가와 메리케인(근경)’으로 분할되고 그들은 계약을 끝내고 자연스럽게 찰스가 있는 밖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카메라워크는 스노우볼같은 둥근 모양으로 ‘찰스–집안–밖-찰스’ 형태로 원형을 그리고 있다. 즉 동그란 스노우볼처럼 카메라워크도 동그라미를 그린다.


찰스의 아버지는 금광 소유권이 없고, ‘아이는 때려서 키우면 된다’라는 무책임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은행원 대처와 계약 후 찰스 아버지가 창문을 닫을 때 창문에 십자가(신념)가 만들어지고, 이후 메리케인은 바로 창문을 열고(십자가를 없애고) 밖으로 나간다. 반면 메리케인은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책임감은 있지만 찰스에 대한 뚜렷한 애정은 없어 보인다. 계약 중 ‘은행가–메리제인’ 사이에서 케인의 아버지는 부양자로서의 권리를 말하지만 메리케인은 “그래서 대처씨에게 바로 부탁하는 거라고요.” 딱 잘라 말하며 계약을 한다. 이 장면에서 ‘찰스 아버지–창문 밖 찰스–은행가와 메리제인’으로 프레임은 분할되는데 이는 찰스 아버지가 부양자로서 자격과 권위가 상실되고 은행가 대처와 메리제인이 마치 부부처럼 계약을 담당하고 있다. 영화 첫 장면 케인의 죽음을 알리는 신문 헤드라인 문구 중 ‘찰스 포스터 케인은 죽었다(Charles Foster Kane Dies)’가 나오는데 이는 ‘찰스 (은행가에게) 부양되고(Charles Foster) 케인(의 아버지)은 죽다(Kane dies)’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이는 케인(Kane) 즉, 아버지의 죽음으로 읽을 수 있다. 찰스의 어린 시절 이후 아버지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이고 계약서 작성 후 금본위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한다. 또한 영화 초반 뉴스에서 메리케인의 광산 습득 장면에 브론즈 액자가 나오고, 그림 속에는 메리케인의 여관이 있고 옆에는 빛나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금–브론즈 액자–황금나무’는 프레이저가 『황금가지』에서 말하는 친부 살해와 유사하다. 자본에 의해 찰스의 아버지가 살해되고 아버지의 권위를 자본주의 체제가 대신한다. 그래서 ‘찰스는 부양되고(Charles Foster) 아버지는 죽다(Kane Dies)로 읽을 수 있다. 이는 오이디푸스가 자신도 모른 체 아버지를 살해한 것처럼 아버지를 살해한 자본주의 체제에 찰스는 편입되고, 찰스는 25살에 자본주의 체제가 획득했던 아버지의 왕권을 계승함으로써 오이디푸스 구조를 따르고 있다.


CONTRACTS


케인 아버지 / 찰스 / 은행가 대처 - 찰스의 어머니 사이에 찰스는 딥포커스 중앙에 놓여있다.


케인 아버지가 자신의 권리를 말하지만 대처는 1년에 5만 달러 지급을 말하며 케인 아버지의 말을 끊는다. 아버지의 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자본과 법이 대체한다. 계약 사항을 읽은 메리케인은 계약서에 서명하고 계약(contract) 한다. 계약(contract)은 1.(법률적인) 계약 2.살인청부 3.전염시키다라는 의미가 있다. 찰스는 엄마(상상계)와 아버지의 법(폭력적인)에 살지만 계약(contract)을 통해 찰스는 어머니와 분리되고 은행가 대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체제 속 법과 원칙에 편입된다. 이는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편입되는 과정이며 시민케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상징계로 진입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찰스 자신과 엄마가 사는 공간이 상상계라면 타자인 아버지는 상징계 질서를 말한다. 계약을 통해 찰스는 엄마와 분리되고(상상계가 파괴되고) 자본주의 원리가 새로운 상징계로 대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살인청부(contract)는 자본주의가 가하는 찰스 아버지의 살해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계약을 통해 찰스는 자본에 전염(contract)되고 이는 찰스가 자신의 욕구를 모른 체 욕망에 지배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전능한 힘을 가진 어떤 사물과 접촉한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가 미치는 것을 말하는데 전염(contract)은 찰스가 자본에 전염되고 자본에 잠식되는 삶을 사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사들이는 케인에게 로즈버드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결과라고 추측하게 한다.


눈 쌓인 마당에 ‘대처-메리케인 / 찰스 / 아버지’가 있다. 대처는 찰스에게 뉴욕으로 갈 것을 말한다. 하지만 찰스는 썰매를 들고 대처에게 거세게 저항을 하고 대처는 넘어진다. 다음 장면에서 썰매는 버려지고 썰매에는 눈이 쌓인다. 영화 첫 장면 뉴스에서 1925년 의회 조사위원회에 출석한 대처는 “우리 회사는 미세스 케인으로부터 신탁자로서 선임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녀의 재산 신탁자로서 아들 케인을 맡아 달라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습니다.” “그때 그(찰스)가 썰매로 당신의 복부를 가격한 다음 직접 공격했다는 것이...?” “찰스 포스터 케인은 평상시 위험한 태도와 사상으로 미국의 전통과 사유재산을 약탈했으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습니다.”라고 진술한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와 분리를 경험할 때 저항의 기제로 사용되었던 썰매가 찰스에게 콤플렉스(썰매는 즐거운 놀이이자 분리에 대한 저항)로 남고 이후 케인의 폭력적이고 방황하는 삶의 단초로 작용한다. 거세된 썰매는 케인이 끝없는 자본주의 욕망에 종속되어 가는 삶을 보여준다. 라캉은 상상계 욕구가 상징계 언어로 다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은 결여라고 말하는데 또는 라캉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자기 욕구를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욕망한다는 맥락으로 이해해도될 것 같다. 뉴욕 생활 첫 장면에서 대처는 케인에게 새로운 썰매를 보여주지만 케인은 새로운 썰매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버려진 썰매와 새로운 썰매는 욕망의 차이를 드러내며 버려진 썰매는 찰스에게 거세된 콤플렉스로 각인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세되고 거부된 썰매에게 새로운 썰매는 저항이 될 뿐이다. 뉴욕으로 간 찰리는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고 찰리는 케인으로 불려진다.



여성과 스노우볼은 거울과 같다


케인의 왼쪽 주머니에는 스노우볼이 있다


메리케인은 케인 아버지를 무시하고 찰스를 은행가 대처에게 위탁하기로 계약하는데 이는 오이디푸스에서 이오카스테가 신탁으로 자신의 아들을 궁 밖으로 내보내고 친아버지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성(왕비와 스핑크스)은 문제를 일으키는 동시에 문제를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영화 <시민케인>에서 메리제인, 수잔은 문제를 일으키는 동시에 문제를 푸는 여성이다. 케인은 많은 재력으로 여성 편력을 보여줄 것 같지만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고 수잔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를 욕구하지만 자기 욕구를 알지 못한 채 어머니를 대체할 다른 대상을 찾을 뿐이다. 두 명의 여성을 만났고 두 명 다 결혼을 했다는 건 그 여성들이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측하게 한다.


수잔은 직소퍼즐을 맞추고 케인은 옆에서 보고 있다. 직소퍼즐은 정확한 자리에 퍼즐 조각을 놓아야 하고, 퍼즐 조각을 정확한 자리에 놓지 못하면 퍼즐 조각들은 어지러이 섞이고 헤매게 된다. 퍼즐을 시작한 수잔은 퍼즐을 다 맞추고 케인을 떠난다. 그러나 케인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퍼즐 한 조각을 찾지 못해 욕망하게 되고, 수잔의 방에서 퍼즐 한 조각에 해당하는 스노우볼을 보게 된다. 케인은 수잔의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부수다 스노우볼을 발견하고 스노우볼을 챙겨 거울이 있는 복도를 지난다. 여러 명의 케인의 모습이 나오는 원경, 이후 따라 나오는 중경의 케인, 그리고 근경에서 뒤늦게 따라 나오는 모습은 ‘욕망들–과거의 케인–자기 모습을 인식한 케인’으로 결국 케인의 욕망, 좌절 그리고 결여된 모습을 한 쇼트에서 스펙트럼처럼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를 떠도는 오이디푸스라는 유령



<시민 케인>은 케인의 욕망과 돈이 넘쳐나는 것을 보여주지만 결국 남는 건 로즈버드라고 쓰인 초라한 썰매 하나뿐이며, 그 썰매마저 불타서 연기가 된다. 영화 <시민 케인>은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 구조와 유사하다. 첫 장면에서 출입금지(no trespassing)라고 써진 그물망이 나오고, 마지막 장면에서 썰매는 불에 타 연기가 되고 이후 출입금지(no trespassing)라고 쓰인 그물망이 다시 나온다. 보통 상징계를 언어의 그물망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인간이 언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만들고 이는 한 사람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언어의 그물망 속에 개인이 운명처럼 놓였다는 사실을 말한다. 결국 처음과 끝에 보여주는 출입금지는 케인 자신만이 존재하는 언어의 그물망이며 이는 찰리 케인의 상상계와 상징계를 말한다. 또한 첫 장면에서 음성으로 전달되는 로드버즈를 마지막 장면에서 글자로 보여준다. 말과 눈은 권력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신탁이 가진 무게감을 보여준다. 스노우볼에 머물다 현실에서 불타고 연기가 되는 썰매는 결여된 욕망으로 작용하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물건을 욕망하는 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욕망은 로즈버드에서 시작하고, 결여된 로즈버드로 인해 케인은 욕망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로즈버드는 연기로 사라진다.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자인 오이디푸스가 오만으로 운명적 비극을 맞이했다면, 세상에서 제일 돈이 많은 케인은 욕망으로 자본주의식 비극을 맞이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창고에는 수많은 보물들과 함께 메리케인의 2달러짜리 스토브와 로즈버드가 새겨진 썰매가 같이 쌓여있다. 케인에게 창고 속 물건들은 소중한 정도와 가격과 상관없는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케인의 죽음은 근경으로 보면 영화 도입부 뉴스처럼 모든 걸 가진 사람의 찬란한 죽음으로 도배가 된다. 중경에서는 케인과 파국으로 치닫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케인의 외로운 삶을 보여준다. 케인의 이야기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순탄치 않은 삶이고 연민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고 케인의 인생이 비극적이라 말하기에는 자신의 현실을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위치와 재력을 가졌다는 사실에서 케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원경에서 생각하면 <시민 케인>은 자본주의 속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 누구보다 돈이 많았던 케인은 선택의 자유가 있지만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는 돈에 관해 자유로울 수 없고 선택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누구나 비극적 주인공이 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로즈버드에 관해 ‘수수께끼다’, ‘무의미하다’, ‘맥거핀이다’, ‘추억이다’ 등 의견이 분분하고 심지어는 로즈버드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읊조리(말)는 로즈버드와 로즈버드 글씨(눈)는 우리를 지배하는 강력한 신탁을 보여준다. 로즈버드 신탁은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욕망에 지배당하고 결핍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고. 지금도 로즈버드 신탁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로즈버즈가 말하는 의미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영화 <시민케인> 속 오이디푸스는 자본주의를 떠도는 외로운 유령으로 남는다.


2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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