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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an 13. 2018

길을 떠나다.

시작하는 글


 그곳은 언제나 건조하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곳이다. 언제 말라버릴지 모르는 물웅덩이에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목을 축이고 싶은 동물들로 하루 종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내일이 없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갈증을 해결할 수 만 있다면 아무 상관이 없을 것만 같아 보인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끊임없이 이 물웅덩이를 찾아오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갈 것이다. 물웅덩이가 말라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 물웅덩이 주변에는 항상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하이에나 무리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다. 비록 함께 하는 무리가 있지만, 그들이 노리고 있는 동물들에 비해 수가 월등히 적기에 만만해 보이는 먹잇감을 기다리며 항상 몸은 낮게 깔고 슬금슬금 돌아다닌다. 붉게 충혈된 눈에 잠시 무리에서 이탈한 약자가 띄기라도 하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물고 늘어진다. 그들은 언제나 약한 자, 어리석은 자, 외로운 자들만을 노린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은 항상 자신보다 약한 자를 찾는 길 뿐이다.


 한 뼘 남짓의 작은 그늘에 누워있는 사자는 늘 그렇듯이 무심한 표정으로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멀리 물웅덩이에는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물을 마시고 있는 동물들의 무리가 보이고, 그들 주변에서 약자를 노리면서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무리와 하늘을 맴돌고 있는 독수리들이 눈에 거슬린다. 그렇다고 그들의 향해 포효할 필요는 없다. 단지 못마땅할 뿐이다. 얼마 전에 사냥을 했던 터라 딱히 이 그늘에서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무엇도 그에게 위협이 될 수 없는이 세계가 그는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물결무늬 얼룩말은 동료들과 함께 물웅덩이를 찾아왔다. 고개를 숙여 물을 마시면서도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하이에나가 몹시 신경 쓰였다. 하지만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가장 약한 동물만을 노리니까. 이 물덩이에서 가장 약하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어느 날부터 인가 물웅덩이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곳을 찾는 동물들은 점점 많아지면서 물웅덩이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물결무늬 얼룩말은 어제 봐 둔 돌멩이보다 물 웅덩이 경계가 조금 더 줄어든 것을 알아챘다.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충분히 물을 마시고 다시 초원으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거리는 물결무늬 얼룩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일 이 물웅덩이를 찾아오는 일이 지겹기도 했지만, 내일은 이 물웅덩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두려움 마음이 생겨났다. 설령 그럴지라도 마땅히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자리를 옮기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황갈색 지평선 너머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를 헤치고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번에 그를 물웅덩이 밖으로 이끌었던 그 신기루가 다시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그 무엇이 오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지척에까지 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알아볼 수 있었다. 물결무늬 얼룩말은 매끈한 몸과 긴 주둥이, 동그란 눈을 가진 빨간 돌고래를 만났다. 돌고래는 얼룩말에게 말했다.


“바로 지금이야.”


 물결무늬 얼룩말은 순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물웅덩이를 등지고 초원이 아닌 황량한 지평선을 향해 섰다. 그리고 돌고래가 달려오던 그곳을 향해 한참을 바라보다 한 걸음을 옮겼다. 아주 한참만의 첫걸음이었지만 다음 걸음부터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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